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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챌린저 & 체인저] 아이들 20만이 우리 손님 … 큰 기업을 이겼습니다

다담교육의 남해원 대표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교육비 부담없이 교재를 사용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담은 3000여 가지의 교재를 전국 1만여 곳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20만 명 어린이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교재를 공급하는 다담교육의 남해원(59) 대표에게 ‘창고’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전남 무안에 있는 물류창고가 그의 집이자 일터였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창고 한 켠에서 생활하며 일했다. 유학을 준비 중이던 남 대표의 두 딸도 창고에서 제품 포장일을 거들었다.

 회사 형편이 좋아지면서 서울 가산디지털밸리에 본사를 만들었지만 지금도 1주일에 사나흘은 무안의 창고에서 일한다. 창고 인근에 집도 지었다.

 남 대표는 “전국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차질없이 교재를 발송하려면 창고 관리가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회사 주요 업무도 창고에서 해결하는 게 편하다”고 말했다.

 남대표는 1982년 대구의 건설회사에서 첫 직장생활을 했다. 당시 한국은 고도 성장기였고 전국에 건설현장이 많아 토목·건설회사들은 특히 일감이 넘치던 때였다. 그런 ‘유망 직장’을 남대표는 2년 만에 그만뒀다. 오지에서 댐을 만들고 도로를 놓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이후 남대표는 건강식품 유통업체에 영업직 사원으로 들어가 일을 하다 일본 건강식품 업체의 한국지사를 맡아 운영했다. 사업은 안정적이었지만 심심했다. 열정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 그러던 차에 교육 관련 사업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지인의 권유를 받았다.


중국 공장과 신뢰 … ‘외상’ 덕 금융위기 넘겨

 그는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유난히 높아 자녀 교육에는 돈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사업성이 좋고 회사가 성장하더라도 대기업이 진출하기 어려운 틈새시장일 것 같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판단이 서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성격이어서 미국의 교육교재로 유아들을 가르치는 업체의 부산지사를 맡았다. 이 역시 돈벌이는 괜찮았으나 일인당 1000만원 안팎의 고가 교재여서 극히 일부의 아이들만 교육 받을 수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교재 단가를 낮추 필요가 있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직접 만드는 것이다.

 남대표는 2004년 6월부터 1년 동안 중국의 교재 제작 공장을 수없이 다니며 조사를 했다. 기존 업체에 비해 많게는 10분의 1까지 교재 가격을 낮출 수 있었고, 그 가격대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 섰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지인의 사무실 한 켠을 빌어 사업을 시작했다. 사장과 디자이너 2명이 창업 멤버의 전부였다. 남 대표 혼자서 기획도 하고 영업도 했다. 처음에는 미술교재를 공급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물량이 늘면서 급히 중국 제조 공장에 주문량을 늘렸다. 그러나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 중국에 물건을 발주하려면 계약금을 줘야하고, 물건값을 다 지불한 다음에야 물건을 받아올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돈을 받는 건 한참 후에나 가능했다.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데 시차가 많았던 것이다. 부산의 아파트를 팔아도 돈이 부족했다. 전국의 지사장들을 만나 사정을 얘기하고 도움을 구했다. 어렵사리 돈을 빌려주겠다는 지사장들을 구했다. 사업은 잘 되고 있는데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위기를 벗어나고 한숨을 돌리는가 했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환율이 급등하면서 중국 제조업체에 줘야 할 돈이 크게 늘어났다. 예를 들어 개당 1000원을 주고 사오던 물건을 1600원을 줘야 받아올 수 있었던 것. 당시 환율을 이유로 물건값을 올리는 국내 제조업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남 대표는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교재는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 데 중간에 가격을 올리는 건 약속을 어기는 것이라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신뢰는 지켰지만 자금난은 엄습했다. 남 대표의 무안 창고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뜻밖에도 중국 제조업체들의 도움 덕분이다. 여간해선 외상거래를 안 하는 중국 업체들이 남 대표를 돕겠다고 나섰다. 남 대표가 거래하는 제조업체들은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 이우(義烏)에 있는데 그곳에서 남대표는 ‘남다른 사장’으로 불린다. 단 한 번도 중국업체로부터 술접대를 받지 않는 것도 남다르고, 사업을 시작한 이후 매달 어김없이 공장을 찾아와 꼼꼼하고 깐깐하게 품질 검사를 하는 것도 유별난데, 그런 남 대표를 중국업체들이 믿은 것이다.

 남 대표는 출장갈 때 저가항공을 이용하는 것은 물론 가장 빨리 도착하는 길보다 세시간 가량 더 걸리는 노선으로 간다. 여비를 십만원 가량 아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저렴한 가격에 교재를 공급하기 위해선 사장인 나부터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비 한푼 아끼기 위해 몸고생도 마다 않는 그이지만 좋은 교재를 개발하는 데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영유아용 음악교재를 전자음악이 아닌 바이올린 등 각 악기 연주자가 직접 연주하는 방식으로 제작하는데 3억원을 투자한 게 대표적이다. 남대표는 “영유아들에게 오감 중에서 청각자극이 가장 중요한데 선진국과 달리 국내 유아 동요 음반의 99%가 신디사이저 등을 이용한 전자음으로 제작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전자음으로 만들었는지 실제 악기를 써서 제작했는지 바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정말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교제를 만들기 위해 망설이지 않고 투자를 결정했다”고 했다.


3억 들여 전자음 대신 실제 악기 교재 제작

 그가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건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라는 것이다. 누리야·해빛(Habit)·놀이미술 등 다담교육이 공급하는 교육 콘텐트들은 모두 독자적인 것이다. 한 해에 공급하는 교재의 종류만도 3000개가 넘는다. 이렇게 다양한 콘텐트를 기반으로 다담교육은 고속 성장 중이다. 2011년 130억원이던 매출액이 지난해 200억으로 늘었다. ‘박리다매’를 하기 때문에 이익률은 10%정도다. 다담교육의 교재는 전국의 유치원과 어린이집 1만여 곳에서 20만 명의 어린이가 이용하고 있다.

 다담교육이 있는 유아교재 공급업계는 대기업들이 유독 힘을 쓰지 못하는 분야다. 가격과 품질면에서 경쟁이 안 되기 때문이다. 남대표는 "한 달에 3박 4일 이상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직원들과 중국 공장을 가는 이유가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주문하고 주문한 제품의 품질을 검수하기 위해서다”라면서 “대기업들은 도저히 따라올 수 분야”라고 자신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창업을 하거나 지금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직장을 옮길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지 회사를 떠나라고 말한다. 단 다담에 있을 때는 자기 회사라는 생각을 갖고 일할 것을 당부한다. 어떤 자세로 일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경쟁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그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담을 떠나는 직원은 거의 없다. 금융위기 때는 많게는 다섯달까지 월급을 못 받는 직원이 있었지만 그만두는 직원은 없었다. 월급이 다른 회사에 비해 특별히 많은 건 아니지만 다담의 비전을 믿고 무엇보다 남대표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남 대표는 요즘 중국에 영유아 교재를 공급하는 사업을 구상 중이다. 그는 “앞으로 중국에 유아교육 한류를 일으키겠다”고 말했다. 한국에서처럼 저렴하고 품질 좋은 제품으로 승부하면 통할 것이라고 믿는 까닭이다.

글=함종선 기자 jsham@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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