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아무리 단순한 디자인도 1년은 걸려야 제모습”

오는 10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는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84)의 대규모 회고전(10월 8일~2016년 2월 28일)이 열린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열리는 전시다.

디자이너 최경원이 만난 거장 알레산드로 멘디니

밀라노에서 태어나 밀라노 폴리테크니코 건축학부를 졸업한 그는 1970년부터 건축·디자인 전문지 ‘카사벨라’ ‘모도’ ‘도무스’에서 도합 17년간 편집장을 지냈다. 그는 이탈리아의 아방가르드 디자인 그룹 ‘알키미아(Alchymia)’의 정예 멤버였다. 또한 이 시절 그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발굴한 재주꾼이 프랭크 게리(미국), 필립 스탁(프랑스), 론 아라드(영국), 한스 홀라인(오스트리아), 자하 하디드(영국)다.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와 이번에 인연을 맺게 된 것도 흥미롭다.

본격적인 디자이너가 된 것은 58세였던 1989년이다. 환갑을 앞둔 나이에 동생과 함께 밀라노에 ‘아틀리에 멘디니’를 연 것이다. 그리고 에르메스·까르띠에·스와로브스키·알레시·스와치 등과 협업했다. 단발머리 여성처럼 생긴 와인따개 ‘안나G’와 LED조명인 라문의 아물레토가 대표적인 디자인 작품이다. 서울 전시의 기획위원이자 『알레산드로 멘디니-일 벨 디자인』(2013)의 저자인 디자이너 최경원이 얼마전 밀라노 가구박람회를 참관하러 갔다가 스튜디오 멘디니를 찾았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아틀리에 멘디니

허름한 아파트에 자리한 세계적 디자이너의 작업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사무실이라면 시내에 있는 으리으리한 빌딩에 있거나 멋진 단독 건물에 자리잡았을 것 같지만, 밀라노에 있는 그의 아틀리에는 밖에서부터 그런 기대를 접게 만든다. 명성에 걸맞지 않게 한적한 동네의 허름한 아파트 건물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원래 철도청 건물이었는데 나중에 아파트가 되었다”는게 나중에 들은 멘디니의 설명이었다.

뿐만 아니다. 아틀리에 출입문은 나무로 만들어진데다 보안키 같은 것도 없다. 사진에 나와 있는, 89년 아틀리에를 처음 열 때의 모습 그대로다. 트렌드 변화나 첨단 기술에 호들갑 떠는 우리 디자인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런데도 이런 누추한 곳을 카림 라시드나 안도 다다오 같은 세계적인 거장들이 수시로 찾아온다고 하니, 들어가기도 전에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겸손함과 정신적인 격이 새삼 옷매무새를 가다듬게 만든다.

안으로 들어가니 공간이 높고 넓다. 철도청 창고였다는 얘기로 보아 아마 열차를 넣어둔 곳이었던 것 같다. 커다란 실내 공간 안에 2층 사무실이 가건물처럼 들어서 있다. 허례허식도 없이 오직 기능적으로, 경제적으로만 만들어져 있다. 멘디니의 디자인이 아름다우면서도 꼭 필요한 기능만 갖추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환경에서 만들어지기 때문 아닐까.

그의 자리는 2층에 있었다. 집무실 옆 회의실에서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그의 옆에는 통역을 맡은 차영희 실장이 같이 있었다. 15년이 넘도록 이곳에서 정규 스태프로 활동하고 있는 유일한 한국인이다. 멘디니의 최측근에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베테랑이기도 하다.

아틀리에에서 만난 멘디니는 세계적인 거장이라기보다 정다운 이웃집 할아버지에 더 가까웠다. 바쁜 스케줄에도 찾아온 젊은이들의 노고를 먼저 걱정해주는 친절함이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자까지 손수 챙겨주는 배려심을 발휘했다. 오랜 세월 몸에 밴 그의 우아한 품위는 대화 내내 소박한 회의실을 밝게 만들었다.

1 인형극 극장 2 LED램프 ‘라문 아물레토’ 3 조각상 ‘거인의 두상’
4 와인따개 안나G
“기업과 디자이너는 동반자”
실내 공간은 편안하고 쾌적했다. 멘디니는 “이곳에서는 정규 직원과 비정규 직원을 합쳐 총 18명이 일하고 있다”라며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세계 여러 곳에서 찾아온 디자이너들”이라고 소개했다. 차영희 실장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멤버들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면서 최적의 안을 만들어나간다”며 “심지어 출퇴근도 각자의 일에 따라 자율적으로 한다”고 덧붙였다.

세계적인 디자인은 첨단 시설이나 과학적인 조사가 아니라 이런 분위기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차 실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가장 기발하고 새로운 안을 내는 건 멘디니 선생님이에요. 항상 많은 잡지나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정보를 얻고, 항상 골똘하게 아이디어를 구상하시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그 감각을 못 따라 갑니다.”

내친 김에 평소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한국에서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에게 자기 디자인을 프리젠테이션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선생님도 그렇게 합니까?” 돌아온 답은 좀 놀라웠다. “나는 가급적 디자인을 존중해주는 기업과 일을 합니다. 기업과 디자이너는 좋은 디자인을 서로 협조해서 만드는 동반자이기 때문에 누가 누구 앞에서 발표하는 일은 하지 않아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세계적인 수준에서는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가 갑을관계가 아닌 동반자였다. 디자인에 대한 논의만 많지 빼어난 결과물이 없는 한국의 상황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한국 기업들과 콜라보레이션만 하면 왜 그렇게 평균 수준 이하의 디자인만 만들 수 밖에 없는지도 이해가 됐다. 그러고 보니 아틀리에 곳곳에서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가 더 크게 느껴졌다.

아틀리에에는 디자인 작업에 대한 흔적들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책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멘디니의 책상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디자인이 탄탄한 인문학적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대표작인 ‘안나G’에서 보듯, 멘디니의 디자인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 조형성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이는 단지 유머러스하다거나 감성 디자인이라는 말 정도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그의 디자인은 인간의 깊은 보편적 본질을 건드리는 특징이 있다. 그가 유머러스하다거나 이런 방향의 디자인 재능이 뛰어나서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건축·디자인 잡지의 편집장을 했던 경험과 수많은 책들을 통한 격조 높은 교양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5 비블로스 호텔의 의자 6 프루스트 의자
“한국 어린이가 좋아할 전시 준비해요”
의뢰받은 세계적인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는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이야말로 아틀리에 방문에서만 얻을 수 있는 묘미 아닐까. 멘디니는 현재 아틀리에서 이뤄지고 있는 작업에 대해 “한국에서 의뢰받은 여러 디자인 프로젝트 뿐 아니라 파리 마레지구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인테리어 디자인, 데보라 화장품 회사와의 프로젝트,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 인형무대를 비롯한 여러 전시 디자인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아틀리에에는 비슷한 모양의 디자인 모델들이 많이 만들어져 있었다. 맨 눈으로 보기에는 그게 그거 같았지만, 그 약간의 차이를 파고들면서, 거의 1년 가까이 깎고 또 깎으며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멘디니의 디자인이 그냥 봐서는 단순하고 유머러스해 보이지만 그냥 쉽사리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그것은 완성된 디자인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디자인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는. 차 실장은 “하나의 디자인이 구체화되는 데에는, 아무리 단순한 형태의 디자인이라도 형태가 완전히 디자인되는 데에는 약 1년 가량의 시간이 걸린다”고 부연설명했다.

마침 밀라노 엑스포 기념으로 막 디자인된 알레산드로 M도 만날 수 있었다. 밀라노 대성당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 유머러스하면서도 밀라노의 이미지가 쉽고 단순명확하게 다가왔다.

그의 대표작 프루스트 의자도 볼 수 있었다. 이 의자는 원래 1978년에 기능주의 디자인을 비판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었다. 일부러 새로운 디자인을 하지 않고, 구입한 고가구 위에 점묘파 회화처럼 다양한 색깔의 점을 찍어 전시에 내놓았다. 그런데 원래 의도와 달리 대중적으로 너무나 인기가 많아져서 지금은 그의 대표작이 되어 버렸다. 지금까지 여러 버전으로 리디자인 되고 있는데, 오리지널 디자인은 멘디니 아틀리에 한쪽에서 지금도 여전히 제작되고 있었다.

이번 서울 전시의 총감독답게, 그의 기대와 열정은 대단했다. 전시장 구성은 물론 안내 도록이나 팜플릿의 문구 하나까지 일일이 신경쓰고 있었다. 홈페이지도 직접 만들겠다는 의욕을 보일 정도였다.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할만한 전시를 만들고 싶습니다. 전시장은 전부 12개 섹션으로 구성했는데, 도입부를 지나 가장 먼저 만나는 코너가 ‘차일드후드’입니다. 또 ‘래디컬 디자인’ ‘뿌리’ ‘건축’ ‘투 빅 투 스몰’ 등에서는 제 예술세계를 전체적으로 보여주도록 했죠. 특히 ‘벨 디자인’ 코너는 독일식 기능주의 ‘굿 디자인’에 대한 저의 대답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한국적 디자인 개념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또 ‘오브젝트 오브 퍼슨스’에서는 안나G처럼 인격화된 디자인을, 마지막 ‘아이콘’에서는 숭고하고 성스러운 디자인의 핵심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속살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오는 10월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가 새삼 궁금해졌다. ●


밀라노 글·사진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ckw8691@hanmail.net

선데이 배너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