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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人 과학in] 산학연 협력이 공염불 되지 않으려면

미래창조과학부가 지난 15일 정부 연구개발(R&D) 혁신 방안의 세부 실행계획을 발표했다.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임무를 원천기술 개발에 집중하되, 대신 연구과제중심제도(PBS) 예산 비중을 축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출연연이 기업의 기술 애로를 해결해 주도록 중소·중견기업의 연구를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부는 기업의 참여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한다. 그래서 독일의 프라운호퍼 지원 방식을 도입하고, 투자의 무게중심을 대기업에서 중소·중견기업으로 옮긴다. 중복 투자에 의한 비효율을 극복하기 위해 R&D 수행 주체들의 역할을 재조정한다.

 정부 R&D 효율이 급격하게 떨어진 것도 사실이고, 상용화 연구에서 기업의 역할이 중요한 것도 사실이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중소·중견기업의 기술 애로를 해결해 줘야 하는 것도 맞다. 모두가 과학기술계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럼에도 정부가 지난달 국가재정전략회의를 통해 내놓은 혁신 방안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눈길은 싸늘하다. 선뜻 나서서 혁신 방안에 동참하기가 어려운 형편이기 때문이다. 중소·중견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는 일에 신경쓰느라 정작 주역인 과학자의 입장은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기업의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산학연 협력은 지난 30여 년간 우리 과학기술 정책의 핵심 과제였다. 전국의 모든 대학에 ‘산학협력단’이 만들어진 것도 그런 노력의 결과였다. 그런데도 산학연 협력 연구의 비중은 17.6%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대학·출연연이 산학연 협력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을 외면했던 것도 아니고, 기업을 상대로 못된 ‘갑질’을 했던 것도 아니다. 산학연 협력을 저해하는 중요한 구조적 문제를 아무도 인식하지 못한 게 크다.

 사회적 투명성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기업은 과학자가 섣부르게 다가서기 어려운 위협적인 정글이다. 사주(社主)에게 브레이크 없는 절대권력이 보장되는 중소·중견기업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자칫하다가는 협력의 성과에 대한 공정한 보상은커녕 가지고 있던 모든 기술을 빼앗기고 패가망신을 당하게 된다. 괜한 걱정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과학기술계에서 분명하게 확인되는 사실이다.

 물론 모든 기업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기업의 진정성·윤리성·투명성을 확인할 수 있는 현실적 수단이 없는 과학자는 최악의 상황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출연연·대학에 중소·중견기업의 연구소 역할을 맡긴다는 실행계획은 그런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기술·인력·노하우를 집중 투입해 육성할 ‘패밀리 기업’을 선택하는 일부터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 애써 선택한 기업이 강소기업으로 성장한 후에 ‘먹튀’ 기업으로 돌변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처음부터 정부 R&D 지원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막가파’ 기업의 경우에는 상황이 정말 심각해진다. 기업 협력에 참여한 과학자가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결국 성실하게 노력한 대학·출연연과 과학자를 적극적으로 지켜줄 제도가 필요하다. 그때까지 산학연 협력은 실속 없는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출연연 PBS 개선 내용도 어설프다. 비중을 줄여주겠다면서 민간 수탁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은 결국 출연연 과학자에게 기업을 상대로 시주(施主)를 구걸해 연명하라는 뜻이다. 연구 역량이 턱없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에 상용화 연구의 주도권을 빼앗겨버린 출연연이 프라운호퍼 방식으로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도 크지 않다. 자칫하면 상용화 연구가 통째로 무너져버릴 수도 있다. 연구 환경이 열악한 중소·중견기업에서 파견 직원으로 살아가야 할 출연연 과학자의 신세도 처량해진다.

 과학기술 정책 과잉도 경계해야 한다. 과학기술 정책이 부족한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짝퉁’ 수준의 어설픈 정책이 넘쳐난다.

 현대 과학기술의 진정한 가치도 이해하지 못하고, 연구 현장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도 갖추지 못했으면서 오로지 근시안적인 효율만 따지는 문과 출신의 정책 전문가로 가득 채워질 과학기술전략본부와 과학기술정책원이 어떤 일을 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진정한 혁신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리 과학기술계의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고, 기초·원천을 튼튼하게 해주는 우리만의 독창적인 R&D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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