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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에 피망

식탁 위에 피망



평범한 가정집에 흔한 식탁이지만 우리 집에 꽃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나의 기분은 제법 차이가 있다. 센터피스라는 거한 이름이 아니라 그저 꽃 한 송이, 심지어 피망 한 알이 주는 생기를 이탈리아에 가서야 깨닫다니 참으로 감각도 무디다.



1 라 스칼라 극장 근처의 카페 라르테의 피망 한 알.
2 의자와 컬러를 맞춰 꽃을 꽂은 베네치아의 노천 카페.
3 유리컵 4개에 작약 한 송이를 꽂은 보테가베네타 홈.
4 오스트리아 가구 브랜드 비트 만의 팝업 북 센터피스.
5 종이 봉투에 화초를 담은 주방 브랜드 로싸나.




고 또래 여고생들과 마찬가지로 학창 시절부터 창밖을 완상하는 취미가 있었다. 나를 기분 좋게 했던 것은 양옥 옥상에서 흩날리던 햇빛 냄새 나는 빨래였다. 그런데 우리도 외국처럼 창가와 테라스에 꽃을 널어두는 일상이었더라면 꽃 보느라 빨래 정도는 가벼이 지나쳤을 것이다. 지난달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구경하며 행사장만큼이나 눈길을 끌었던 것은 노란 미모사를 척척 내걸어둔 낭만적인 가정집 창가였으니 하는 말이다. 심지어 잠시 빌려 머물렀던 독신남의 집도 테라스에 싱싱한 화초가 알록달록 반짝거렸다.



대단한 멋쟁이들의 도시 밀라노는 가구박람회장과 거리의 카페, 브랜드 쇼룸의 테이블 위, 가게의 창틀까지 식물이 흔하디흔했다. 창가에 내건 꽃들은 가꾸는 재미와 함께 행인들을 배려한 수고라지만 테이블 위 그것들은 거창하게 계획한 ‘플라워 어레인지먼트’가 아니라 꽃 한 송이, 작은 선인장, 과일과 채소를 툭 올려둔 편안함이 그저 즐거웠다. 그들의 식물 일상이 부러웠고, 이런 사소한 것이 여행자에게 생기를 선사하는 것도 신기했다.



돌아와 사진 파일을 정리하며 보니 과연 현장에서 느낀 대로, 가구만큼 식탁 위 풍경 사진이 많았다. 밀라노 중에서도 요란한 명품 거리인 몬테 나폴레오네의 보테가베네타 홈 쇼룸에는 시시하리만큼 유리컵 몇 개에 흰 작약 한 송이를 꽂아두었고, 이탈리아의 하이엔드 주방 브랜드 로싸나(ROSSANA)도 꽃도 없는 화분을 종이 봉투에 담아 아일랜드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오스트리아 가구 브랜드 비트 만(WITT MANN)은 꽃 대신 꽃이 툭 튀어나오는 팝업 북을 펼쳐두는 위트 만발한 장면을 보여주었고, 라 스칼라 극장 옆의 카페 라르테(LARTE)의 사과 한 알, 피망 한 알을 올려두는 깜찍함도 좋았다. 박람회장에서 마주친 선인장과 향초를 작은 쟁반에 담아둔 것이나 의자와 컬러를 맞춰 오렌지색 꽃을 꽂은 베네치아의 노천 카페는 꽤 신경 쓴 편에 속했다.



과일과 꽃을 그린 서양의 정물화가 뜬금없이 나온 것이 아닌 게다. 그런데 우리의 책가도, 민화에도 모란, 석류 등 식물들이 등장하지 않았나. 아니 그런 것들은 다산, 장수, 복을 기원하는 상징물, 즉 생각하며 놓거나 상상해 그린 것이다. 우리의 뿌리는 이렇게 생각이 많지만 오늘 우리 집 식탁에 아무 생각 없이 카페 라르테의 멋진 이탈리아 청년이 했듯이 피망 한 알을 올려보리라. 셔터를 누르며 생기 있는 일상을 누리리라는 살뜰한 계획 실천!









기획_이나래

레몬트리 2015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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