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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의 오늘 미술관] 어른을 위한 그림책





집에서 나가자는 인형에게 소녀가 답한다. “난 여기가 좋아. 이곳은 따뜻하고 아늑해.” 옆방 화장대 앞 여자도 “난 지금 못 가. 매일 매일 거울을 보며 준비하지만, 뭔가 부족해 보여. 그걸 찾고 완벽해지면, 그때 나갈 거야”라고 말한다. 부엌의 여자는 “난 아직 가진 게 부족해. 좀 더 쌓고 풍족해지면 그때, 나갈 거야. 지금 내가 움직이면 모든 게 무너질지도 몰라”라고 했다. 거실의 남자는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라고 겁을 줬지만, 그 두려움은 사실 자신의 것이기도 했다.

114쪽에 달하는 이 연필 그림책은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인형 상자 속 인형이 두려움을 떨치고 세상에 나가는 모습을 통해, 아이들뿐 아니라 여전히 세상이 무서운 우리네 어른들을 위로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 안에서는 성장할 수 없다. 밖으로 나가 다른 이들과 만나야 한다. 올해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의 라가치상 픽션 부문 관심작(special mention)에 꼽힌 정유미(34)의 『내 작은 인형 상자』(컬쳐플랫폼)다. 2006년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제작된 이 책은 해외에서 출간된 뒤 국내에 나왔다. 책과 그림 카드, 애니메이션 CD로 구성된 세트는 거의 성인용이다. 차분한 그림과 성장일기와도 같은 내용 또한 ‘아동용’이라는 틀에 묶기 어렵다.

정씨는 “그림책이라고 마냥 밝고 예쁜 이야기만 담는 건 아니다. 나의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아동도서전에서 상을 받았다. 내 이야기의 독자가 또래들에서 어린이들로 확장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국민대 회화과 졸업 후 영화아카데미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정씨는 『먼지아이』로 지난해 볼로냐 라가치상 뉴호라이즌 부문 대상을 받은 데 이어 2년 연속 라가치상을 수상했다. 라가치상은 세계 최대 어린이 도서전인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주관ㆍ선정한다. ‘그림책의 노벨상’으로 꼽히며 올해로 50회를 맞았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사진설명]
나의 작은 인형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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