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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가계부채 뇌관 제거의 마지막 기회

김광기
중앙일보시사미디어 본부장
퀴즈 하나를 풀어 보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5%까지 내리면서 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2.5~2.7%로 떨어지게 됐다. 그렇다면 기준금리가 0%인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현재 얼마일까?’ 놀라지 마시라. 정답은 4.0~4.2%다(미 금융정보 사이트 bankrate.com). 한국보다 1.5%포인트나 높다. 한국은 어느새 주택대출 금리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가 됐다. 예외라곤 일본 정도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정부의 방조와 은행들의 탐욕이 만든 합작품이다. 비밀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주택담보대출이 변동금리 일색이다. 그것도 원금은 만기 때 한꺼번에 갚고 이자만 매월 낸다. 고정금리 대출이 있긴 하지만 몇 년 지나면 다시 변동금리로 전환되는 게 대부분이다. 은행이 이런 상품만 취급하는 것은 금리변동의 위험을 소비자들에게 전부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리스크 프리’ 대출인 셈이다. 금리가 낮아도 많이 팔기만 하면 크게 남는 장사다.



 금융 소비자들도 이걸 즐긴다. 당장 내는 이자 부담이 가볍고, 원금 갚은 것은 나중 일이니 빚 무서운 줄 모르고 대출을 쓴다. 말이 주택담보대출이지 절반은 생계 및 사업 자금으로 써버리고 있다는 게 금융감독원의 실태 조사 결과다.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미국은 어떤가. 장기(30년) 고정금리 상품을 주택담보대출의 표준물로 삼는다. 만약 금리가 오르면 그 위험은 은행이 온전히 떠안는 구조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 대출금리를 정한다. 그래서 나온 게 4.0~4.2%다. 게다가 원금 분할 상환이 기본이다. 이런 구조이다 보니 금융 소비자들도 대출받는 데 신중한 건 당연하다.



 미국도 한동안 한국의 주택담보대출과 흡사한 상품이 나와 날개 돋친 듯 팔린 적이 있다. 그 유명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로, 2008년 금융위기를 야기했다. 그 뒤로 미 금융당국은 변동금리 상품을 부적격 대출로 묶어 고사시키고 있다. 현재 미국의 주택대출 중 변동금리 비중은 14%에 불과하다.



 또 하나의 비밀은 은행의 소구권(상환 청구권)이다. 한국의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하면, 담보로 잡은 주택 이외에 다른 재산과 월급까지 압류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대출금을 떼일 위험이 거의 없도록 해주는 안전장치다. 거꾸로 금융 소비자 입장에선 채권 무한 추심에 노출되는 ‘노예 대출’인 셈이다. 미국은 소구권을 불허한다. 대출받은 사람이 갚을 능력이 없으면 은행에 집 열쇠만 넘겨주면 그만이다. 깡통주택이 돼도 다른 재산과 소득을 온전히 지키며 경제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다. 은행도 잘못된 대출에 대해 공동 책임을 지라는 취지의 제도다.



 미국의 주택대출 제도는 한국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준다. 가계부채 폭탄의 뇌관을 제거할 열쇠이기도 하다. 금융당국과 은행은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미국식의 장기 고정금리 구조로 전환할 획기적인 처방전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기존 대출도 갈아타게 하는 안심전환대출을 확대 편성할 필요가 있다. 원금 상환 부담은 초기엔 최대한 낮추고 갈수록 높아지게 하는 구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정부는 가계부채 문제의 위중함을 국민에게 솔직히 고백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소구권도 제한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더 이상의 기준금리 인하는 없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던질 필요가 있다. 금융 소비자들이 고정금리 대출을 꺼렸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기준금리 추가 인하 전망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우리도 결국은 그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사실을 시장에 주지시켜야 한다.



 시간이 얼마 없다. 올해 전국적으로 40만 가구가 넘는 주택이 분양되고 있다. 사상 최대 물량이다. 주택 청약 현장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에 아랑곳없이 북새통이다. 2~3년 후에는 대규모 입주가 이뤄지고,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인구절벽까지 겹쳐 주택수급이 갑자기 뒤바뀔 가능성이 크다. 우물쭈물하다 가계부채의 폭탄이 터지면 정부도 한국은행도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되는 것을 피하기 힘들지 않겠는가.



김광기 중앙일보시사미디어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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