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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용기와 일본의 용기

지난 4월 일본 도쿄 가스미가세키(霞ヶ?)에 있는 일본 외무성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한중일 협력사무국(TCS)이 주최한 3국 기자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1층 로비에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과 일본을 방문한 각국 정상 및 외교장관들이 함께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보안검색을 통과하자마자 보이는 엘레베이터 옆 벽면에는 기시다 외무상이 인도 모디 총리와 함께 환하게 웃는 사진이 눈에 띄었다. 이곳저곳에 붙은 사진에서 웬만한 주요국가 외교장관들의 모습은 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찍은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올해가 한일 국교 정상화 50년을 맞는 해라는 사실이 새삼 머리를 스쳤다. 어딘지 모르게 씁쓸했다. “우리 장관 사진은 안보이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한 일본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윤 장관은 혹시 언제 교체된단 이야기 있어요?” 기대감 섞인 질문에서 윤 장관에 대한 일본의 일반적 인식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이렇듯 대일 강경론자의 심볼 격인 윤 장관이 일본에 간다. 21일 도쿄에서 기시다 외무상과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22일에는 주일 한국대사관이 도쿄에서 여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윤 장관의 첫 방일이고, 도쿄에서 열리는 첫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다. 곧 일본 외무성 청사 1층 로비에서 윤 장관과 기시다 외무상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사진 한 장을 기대하기까지 양국 정부가 거쳐야 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어느 쪽인가는 ‘결단’도 내려야 했다. 그렇다면 결단을 내린 것은 어느 쪽일까.

시계를 돌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봄으로 가보면 대충 답이 나온다. 윤 장관은 부임 직후인 4월 일본을 찾을 계획이었다. 박 대통령의 첫 외국 방문은 5월 미국으로 계획했으니, 가까운 이웃국가 일본에는 그보다 먼저 외교장관을 보내 ‘좋은 모양새’를 만들어보겠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좋은 모양새는 이뤄지지 못했다. 윤 장관의 방일 직전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이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방문하는 도발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윤 장관은 즉시 일정을 취소했다. 이후 일본의 역사 왜곡은 끊일 줄 몰랐다. 결과적으로 윤 장관은 아직 한 차례도 일본에 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결단을 내린 쪽은 한국이다. 윤 장관이 도쿄에 가겠다고 결정하기까지 국내 반일 여론의 고비도 의식해야 했고, 이후 일본이 또다시 역사 도발을 일삼을 수 있다는 리스크도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윤 장관의 방일을 환영한다. 박근혜 정부 3년차, 그리고 한일 국교 정상화 50년이라는 중대한 시기를 맞아 마중물 역할을 한국이 주도적으로 하는 그림이 그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손익 계산을 조심스레 해봐도 그 편이 낫다. 한국이 결단을 내리면, 일부 세력이 워싱턴에서 음해하는 것처럼 ‘한국이 고집스럽게 일본에 거듭된 사과만 요구하고,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방치해 한미일 안보 공조에 균열을 만들고 있다’는 오해는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다.

일제 침략 역사의 ‘피해자’인 한국이 역사를 왜곡하는 ‘가해자’ 일본에게 먼저 손을 내밀 때, 국제 여론이 어느 쪽을 더 높게 평가할 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의 결단 뒤에도 일본이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부정하거나 침략 사실을 미화하는 소위 ‘역사수정주의’적 언행을 거듭, 한일관계가 더 어려워진다면 그때는 누구 책임이 큰지 더욱 명명백백해질 것이다.

결단의 이유는 또있다. 그렇게 해야 일본이 통큰 화답을 할 수 있는 명분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언론이 한일관계의 걸림돌이나 악재로 꼽고 있는 현안들이 있다. 일본의 일제 강제징용시설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종전 70주년 담화 등이다.

조금만 엇나가도 한일관계가 위태로워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에게 명분을 주면 악재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일본이 화답해 ‘성의 있는 조치’를 보여줄 기회 말이다.

한일관계 해법을 취재하던 중 한 전문가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일본에게는 역사를 직시하고 사죄하는 용기가, 한국에게는 이를 진심으로 용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난마처럼 꼬인 양국 관계를 풀려면 용기는 한쪽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6월 22일 ‘잔칫날’을 앞두고 한국은 일단 용기를 낼 준비는 된 것 같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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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