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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세르, 34세 중령 때 무혈 쿠데타 … JP와 닮아

이집트 혁명 이듬해인 1953년 나기브 대통령(가운데)과 나세르 내무장관(왼쪽). [중앙포토]
김종필(JP) 전 총리는 5·16을 준비하면서 이집트와 터키 혁명을 참고서로 삼았다. 육본 정보국에 있으면서 각국의 혁명 관련 자료를 수집했고, 그중 두 나라 사례를 집중 연구했다. 민족주의와 조국 근대화란 명분에서 두 나라 사례는 5·16과 닮은 점이 있다. 5·16 직후 만든 통치기구인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나세르의 구상을 참고했다.

 JP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말한 이집트의 나세르는 JP와 비슷한 듯 다르다. 가말 압델 나세르(1918~70)는 1942년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을 중심으로 비밀결사 ‘자유장교단’을 결성했다. 목표는 외세와 왕정 타도. 52년 7월 23일 새벽 3시, 나세르가 이끄는 89명의 자유장교단은 전차와 장갑차를 이끌고 카이로 왕궁과 정부청사, 방송국, 군 사령부를 단숨에 점령했다. 무능한 왕정에 대한 국민 불만이 팽배했던 터라 아무 저항도 없이 무혈 쿠데타에 성공했다. 나세르가 34세 중령일 때다. JP는 35세에 중령으로 예편한 뒤 육사 동기생 등으로 구성된 군내 정군파(整軍派) 중심으로 5·16을 주도했다.

 영관급으로 구성된 자유장교단은 혁명의 간판으로 1차 중동전쟁(1948년)의 영웅으로 국민 지지를 받던 무함마드 나기브 장군(당시 51세·1901~84)을 내세웠다. 나기브는 초대 대통령 겸 총리에 올랐고 혁명의 실제 지도자인 나세르는 부총리 겸 내무장관을 맡았다. 혁명 성공 직후부터 치열한 권력투쟁이 펼쳐졌다. 정당정치 부활을 주장한 온건파 나기브는 강경노선의 나세르와 충돌했다. 54년 2월 나세르는 나기브를 대통령과 총리직에서 사임시키고 가택에 연금했다. 시민과 일부 군 세력의 항의집회로 이틀 만에 나기브가 대통령 자리를 되찾았지만 이미 균형추는 기울었다. 총리직을 넘겨받은 나세르는 군대 내 나기브 세력을 숙청하며 때를 기다렸다.

 54년 10월 나세르는 알렉산드리아 연설 중 저격을 당했 다. 암살을 시도한 무슬림형제단의 배후로 지목된 건 나기브였다. 그는 그해 11월 모든 공직을 박탈당하고 가택에 연금된다. 이후 나세르는 70년 사망할 때까지 16년간 권좌를 지킨다. 나세르는 아랍 민족주의를 주창하며 아랍세계의 맹주로 떠올랐다. 이집트 국민은 그를 ‘엘 라이스(두목)’란 애칭으로 불렀다. 나기브는 60년 가택연금에서 풀려났지만 정치에 다시 나서지 않았다. 84년 숙환으로 숨졌다.

정리=전영기·한애란 기자 chun.youngg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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