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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대치동 권력 이동

달라진 학원가<상> 목소리 커진 ‘대치맘’

[일러스트=이주호, 송혜영, 심수휘 기자]


서울 강남구 대치동 900번지.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교육 정책이 어떻게 바뀌어도 최적화된 입시 방법을 찾아주는 최고의 전문가, 시험 난이도가 아무리 높아져도 정답률을 높여주는 ‘1타 강사’가 대치동의 명성을 쌓아왔다. 하지만 대치동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은 따로 있다. 입시 전문가보다 더 치밀한 교육 정보로 무장하고 학원가를 들었다 놨다 하는 권력의 축은 ‘대치동 엄마’들이다. 급변하는 입시 정책 속에서 대치동 엄마는 사교육 1번지의 새로운 판을 구상 중이다. 다시 그려지고 있는 대치동 학원가의 새 지도를 엿봤다.


사교육 잡는 입시 정책
공부하는 엄마 커뮤니티 …
‘갑’에서 ‘을’된 대치동 학원


메르스 불안감이 여전하지만 대치동 학원가는 학생들로 붐빈다. 곧 있을 기말고사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만난 중3 김모(서울 도곡동)군은 30일부터 치러질 기말고사를 이달 초부터 학원에서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김군은 “시험 범위에 해당하는 문제를 유형별로 나눠서 풀어본 후 인근 중학교의 기말고사 기출문제들을 모두 풀었다”며 “다음 주부터는 우리 학교 기출문제만 골라서 반복 연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교 시험 기간이면 대치동 학원가는 썰렁했다. 대치동은 ‘특목고’와 ‘SKY’를 위해 찾는 곳이지 내신 성적을 준비하러 드나드는 곳은 아니었다.

강남 지역 학부모 온라인 커뮤니티 ‘디스쿨’의 김현정 대표는 “5년 전까지만 해도 대치동 학원은 내신 시험 3주 전부터 강의를 쉬고, 학생들은 각자 알아서 내신 공부를 하다 시험 기간이 끝나면 다시 모여 고입과 대입을 준비하는 시스템이었지만, 지금은 내신 준비를 철저히 해주는 학원들만 대치동에서 살아남았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대치동 학원이 내신 수업에 소홀했던 건, 학교별 지필고사로 치러진 특목고 입시와 수능 중심의 대학 입시 때문이었다. 사정이 달라진 건 고입과 대입에서 내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부터다. 류화정 위세븐어학원 원장은 “입시의 중심축이 내신으로 바뀌면서 정보에 빠른 대치동 학부모들이 내신 성적에 매우 민감해졌다”고 말했다.

지역적 특징도 한몫했다. 류 원장은 “학생들 실력이 사교육을 통해 상향 평준화돼 있는 대치동의 학교에선 상위권 학생들의 변별력을 위해서인지 내신 시험에 ‘틀리길 바라고 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난도 높은 문제가 곧잘 나온다”고 말했다. 지금 대치동엔 내신 대비 안 해주는 학원엔 학생이 없다는 게 이 지역 관계자들의 말이다. 류 원장은 “수능이 아니라 내신 준비만을 위해 학원 다니는 학생도 많다”고 전했다.


대치동 변화 시작은 특목고 입시 변화와 쉬운 수능
내신 학원 인기 몰이,대형 수능학원 하락세
영재학교·대입 염두에 둔 수학·과학 선행 과열



[일러스트=이주호, 송혜영, 심수휘 기자]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학교 시험 기간에 더 붐비는 대치동

현재 대치동에서 뜨는 학원은 내신 대비와 수학·과학 학원, 그리고 컨설팅이다.

2000년대 초반, 대치동 학원가에서 문전성시를 이루던 곳은 특목고 대비 학원과 수능 준비 학원이었다. 스타 강사의 강의실에는 수업마다 150~200명씩 몰려들었다. 입시 학원의 성장세가 뚝 꺾인 건 입시 정책의 변화 때문이다. 2008년 특목고 선발 방식이 학교별 지필고사에서 중학교 내신으로 바뀐 게 주효했다. 대입은 2010년 이후로 쉬운 수능 기조가 꾸준히 유지되는 데다, 수시전형이 다양화되면서 수능의 영향력이 이전만 못 하게 됐다. 게다가 현재 고1부터는 수능 영어에 절대평가가 도입되면서 고입·대입 학원을 찾는 학생 수가 반 토막 났다.

현재 입시 정책상 고입과 대입의 핵심은 내신이다. 입시정보에 통달한 대치동 학부모들이 내신 학원에 집중하는 이유다. 수학·과학 학원의 인기가 여전한 건 영재학교의 입시에서 ‘수학 과학의 영재성 평가’가 시행되는 게 주된 이유다. 자녀를 과학고나 영재학교에 보내려는 대치동 학부모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올림피아드 대비 학원을 찾는다. “영재학교 입시에 실패하더라도, 어릴 때 수학 기초를 다져놓으면 대학 입시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되니 어차피 이익”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한국 수학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느라 수학 학원만 주 5일씩 다니는 아이들이 많다. 류 원장은 “과거엔 영어와 수학을 비슷하게 가르쳤는데 요즘엔 초등학생도 수학을 주 5일씩 배우고 영어는 덜 가르친다”고 전했다.

대치동 학부모들 사이에 수학 실력을 확실히 잡아주는 학원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자 강의와 과외를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소규모 학원이 ‘클리닉’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김영규 영재수학 원장은 “무학년으로 반을 편성해 각자의 진도에 맞춰서 지도해주는 일대일 관리 시스템을 도입한 소규모 학원이 최근 성업 중”이라고 전했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사교육을 경험해 수준과 진도가 제각각인 학생들을 일대일 관리를 해주는 시스템이다. 과외와 강의를 결합한 형태로 학생들을 무학년으로 수준별 학급으로 편성해 자기 진도에 맞춰서 공부하게 하고 적절히 경쟁도 유도하는 형태다.

수학·과학 학원이 과열된 건 선행학습 때문이기도 하다. 김 원장은 “대치동에선 초등학생이 고등학교 수학을 하는 게 놀랍지 않고, 과학도 중학교 졸업 전에 고등학교 과정을 끝내고 일반 물리까지 해야 이과에 갈 수 있다는 말이 정설처럼 통한다”고 전했다. 그는 “과거 특목고 입시를 위해 학원가에서 ‘사고력 수학’ 등 난도 높은 문제를 다루는 등 심화학습에 중점을 뒀다면, 요즘 특목고 입시가 중학교 내신만으로 가능해지자 ‘미리부터 대입을 준비하자’며 선행학습 위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입시 컨설팅은 기본, 수천만원 쓰기도

대입 수시 전형이 워낙 복잡한 상황이라 진로·진학 컨설팅을 받는 건 기본 코스가 됐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조모씨는 “수시전형이 무려 3000개다. 정보만 잘 알아도 한두 단계 높은 대학을 공략할 수 있다는 게 학부모들의 생각”이라며 “실제로 컨설팅을 잘 받아 내신 4등급이 연·고대에 합격했다는 소문이 적지 않게 들려온다”고 말했다.

대입을 앞두고 컨설팅 업체를 찾는 대치동맘은 둘로 나뉜다. 첫째는 컨설턴트와 상의해 ‘딱 맞는 전형’을 찾아 집중 공략하겠다는 부류다. 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껏 쌓아온 풍부한 스펙을 컨설턴트 앞에 늘어놓고, 상위권 대학을 안전하게 공략할 수 있는 전략을 묻는다. 지난해 자녀가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장모씨는 “이런 경우는 학부모도 컨설턴트 이상의 정보를 갖고 있어 굳이 컨설팅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넌다’는 생각에 유명 컨설턴트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컨설팅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1회 30만원부터 100만원을 훌쩍 넘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장씨는 “이 동네에서 30만원과 100만원의 가격 차이를 크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며 “마지막 관문인 대입이 코앞이니, 최상의 서비스를 받고 잘 마무리하자는 생각에 연간 1000만원 이상의 고액도 서슴없이 지불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찾아온 학부모다. 오모 컨설턴트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이 학원, 저 학원 보내며 수억원의 사교육비를 썼지만 성적도 스펙도 마땅한 게 없어 ‘혹시나’하는 심정으로 컨설턴트에게 매달리는 대치동맘도 뜻밖에 많다”고 전했다. 오씨는 “이런 엄마들은 ‘서울 시내 대학 입학도 불가능한 아이가 ○○한테 상담받고 K대에 갔다’는 식의 현실성 없는 부추김에도 쉽게 흔들려 컨설팅비로 수천만원을 날리는 일도 적지 않다”고도 했다.

대개 컨설턴트들은 학원 강사들과 연계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컨설팅을 통해 “지금 성적으로는 서강대나 한양대 정도 가능하다. 서울대 가고 싶으면 약한 영역을 보충해야 하니, 내가 소개하는 강사한테 가서 배우라”고 하는 유도하는 식이다.

아예 초등학교 때부터 대입까지의 학습 로드맵을 짜주고 알맞은 학원을 소개해주는 컨설턴트도 적지 않다. 김현정 대표는 “예전에는 좋은 대학에 가려면 국영수만 잘하면 됐지만, 지금은 뭘 어떻게 잘하는지 스토리가 중요해졌다”며 “일찌감치 진학에 대한 방향을 잡고 아이의 인생에 실수 없이 접근하겠다는 대치동 학부모의 입맛에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필요한 단원만 듣는 소규모 맞춤 학원 등장
유·초등학원 엄마들 반편성·커리큘럼도 관여
초1 부모 “대치동 학원이 망한다니 웃음만 나”





엄마들이 좌지우지하는 유·초등학원

최근 대치동 학부모의 발길이 빈번한 학원은 유아와 초등 대상 학원들이다. 수학올림피아드 대비 학원이나 철학·역사 등 인문학 토론과 세계 역사 기행을 접목한 학원도 1년 이상 대기해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인기다.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인 김모(37)씨는 “대치동 학원이 망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난다”며 “초등 이하 학원은 오히려 더 활활 타오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사고력 수학은 여섯 살 이전부터 하고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미국 교과서 3.0 레벨 이상 하는 아이도 흔한 곳이 이 동네”라며 “초등 저학년 때 학원 세 군데 보내면 150만~200만원의 학원비 지출은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유·초등 대상 학원들은 대치동 학부모의 커뮤니티를 통해 입소문으로만 학원생을 유치하는 등 다소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흔하다. 보통 1회 수업에 4~7명, 많아야 15명 이내의 소규모 팀 단위로 강의가 진행되며, 팀을 짜는 권한도 대치동 엄마들이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업은 영재성을 키워주는 방식을 선호한다. 수학·과학 학원은 교구 활용과 실험 위주, 독서는 토론과 체험학습이 중심이다. 개인별 맞춤 컨설팅과 스펙 관리 서비스도 따라 붙는다. 학원의 반편성, 학습 프로그램까지 학부모의 입맛에 맞게 짜인다는 게 특징이다.

이미애 샤론코칭앤멘토링연구소 대표는 “이곳 학원가는 철저하게 소비자인 학부모가 중심이지 학원이 주체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고객이 왕’이라는 식의 막연한 구호가 아니다. 고학력에 탁월한 입시 정보력, 탄탄한 내부 커뮤니티로 결속력까지 갖춘 대치동맘은 학원 운영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파워 집단이라는 의미다.

S학원의 심모 원장도 같은 얘기를 했다. “대치동 엄마는 학력이 높고 엘리트 의식이 강하다”며 “학원의 커리큘럼에 따르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팀을 짠 뒤 ‘너희 학원에 우리 아이들을 보내줄 테니 이런 조건의 강사로 몇 시간짜리 수업을 해달라’고 주문을 해온다”고 말했다. 대치동 엄마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강의와 서비스를 제공해준 학원은 ‘엄마 커뮤니티’의 추천학원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입소문을 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소규모 팀은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결속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대치동 학부모 박모씨는 “아이가 영어 유치원 다니기 전부터, 이웃 간에 엇비슷한 학벌과 직업을 가진 부모들끼리 친분 관계를 형성하며 ‘자녀 명문대 합격’이라는 목표를 향해 자연스레 같이 움직이게 된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래서 엄마가 전업주부가 아니거나 중간에 이사 온 대전족(교육을 목표로 대치동에 전세로 들어온 사람을 일컫는 속어)은 이런 커뮤니티에 쉽게 끼어들 수 없다”는 얘기도 했다. “의사나 변호사 등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남편의 수입을 바탕으로 엄마는 자녀 교육이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집끼리 ‘알음알음’으로 모여, 아이들은 학원 보내고 엄마들은 브런치한 뒤 입시설명회 다니는 등 입시와 교육정책 변화에 대해 스터디하고 그 정보를 공유하는 식으로 모임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대치동맘의 커뮤니티에서 가장 큰 권력은 정보다. 입시설명회 등에서 들은 내용 정도로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전교 1등 엄마가 “우리 아이는 한국사를 ○○○강사 덕분에 점수를 올렸다”거나, 자녀를 서울대에 합격시킨 엄마가 “○○업체의 컨설팅 덕을 봤다”고 추천하는 게 진짜 알토란 정보다. 박씨는 “실제 성공 사례를 가진 엄마를 중심으로, 그 성공을 모방하고 싶어하는 엄마들이 주변에 몰려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규모·밀착관리 … 달라지는 사교육

대치동 내부에서는 “여전히 사교육 열기가 뜨겁다”고 하지만, 외부에서 보는 눈길은 사뭇 다르다. 대치동으로 유입되는 학생 수가 현저히 줄었고, 이곳 학원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대형 학원들이 속속 문을 닫는 상황을 보며 “대치동도 침체기에 들어섰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대치동 위기론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건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쉬운 수능과 수시 전형의 다양화다. 이미애 대표는 “원래 1타 강사(최고 인기 강사)가 즐비한 대치동은 ‘불수능과 물내신(어려운 수능과 쉬운 내신)’ 구조일 때 인기몰이를 하기 쉬운데, 요즘은 ‘물수능과 불내신(쉬운 수능과 어려운 내신)’이라 파괴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평했다. 두 번째 이유는 학령인구 감소다. 저출산으로 학원생 자체가 줄어드니 대형학원은 수지타산 맞추기가 힘들어 붕괴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단 얘기다.

불황의 틈새를 비집고 새롭게 등장한 사교육 형태가 소규모 단기 맞춤형 학원들이다. 이런 학원은 수학 교과서 전체를 진도에 맞춰 차례로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행렬 4주 특강’ ‘지수로그 함수 5주 특강’처럼 학생이 자신이 부족한 단원별만 골라 들을 수 있게 강좌도 잘게 쪼개 강의한다.

전직 대치동 스타 강사인 이범 교육평론가는 소형화로의 변신에 대해 “대치동 학원가는 그때그때 입시제도에 최적화된 형태로 전문화를 추구해온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그는 “대입 전형이 다변화되면서 학생마다 준비하는 전형에 맞게 세분화된 준비가 필요해졌기 때문에 대치동 학원가는 밀착관리와 개별지도에 맞게 소형화와 개별화의 길을 걸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부모의 입김이 점점 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분석했다. 이 교육평론가는 “과거엔 입시가 수능으로 획일화돼 있을 때는 유명 학원이 갑의 위치에서 ‘우리가 이렇게 강의 개설해놨으니 듣던가 말던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큰소리를 칠 만큼 권위가 컸다”며 “학원의 규모가 작아지면서 팀 단위로 움직이는 대치동 엄마의 요구에 민감하게, 발 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학원이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며 학원가의 달라진 위상을 설명했다.

박형수·전민희·정현진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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