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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음식] 라멘, 후루룩 일본의 소울푸드가 된 중국 국수

영화 ‘남극의 셰프’ 중에서

일본의 여러 지역 라멘 중에서도 가장 진한 맛을 내는 건 하카타 라멘이다. 돼지 뼈를 오래 끓여 색깔이 하얗다. 맛은 진하고 담백하다. [김경록 기자]

江南通新이 ‘이야기가 있는 음식’을 연재합니다.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요리와 이 요리의 역사, 얽힌 이야기 등을 소개합니다. 이번 주는 영화 ‘남극의 셰프’의 일본 라멘입니다.

중국 국수를 변형한 일본식 라멘이 처음 등장한 건 메이지(明治, 1868~1912) 시대 말기입니다. 역사가 긴 음식은 아니지만 라멘은 빠른 속도로 일본인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전국에 30개가 넘는 특산 레시피가 존재할 만큼 재료의 조합이 다양하지요. 라멘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스턴트 라면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일본인에게 라멘이란 장인이 만든 수제 일품요리에 가깝습니다. 영하 54℃의 남극 기지에서 1년 반 동안 함께 생활해야 하는 8명의 대원을 위로하는 것도 이 라멘 한 그릇이지요. 조리 담당 니시무라가 “라멘이 떨어졌다”고 고백하자 대원들이 충격에 빠져 시름시름 앓는 장면은 일본인의 라멘 사랑을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니시무라는 대원들을 위해 정통 일식 라멘을 완성합니다. 한입 먹은 뒤 눈물과 웃음으로 범벅된 대원들의 표정이 바로 그 라멘의 맛입니다.


조리장 니시무라는 라멘이 떨어진 후 의욕을 잃어버린 대원들을 위로하기 위해 직접 라멘용 면을 만들어 라멘을 끓이기로 결심한다. 라멘 한 그릇을 앞에 둔 대원들의 표정이 벅차다.


# 조리 담당 니시무라는 라멘이 떨어져 며칠째 의기소침한 대원들이 걱정이다. 엊그제 밤에는 히로시 대장이 니시무라의 방에 찾아와 “라멘을 먹지 못하니 잠이 오지 않는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라멘용 면을 완성하려면 탄산칼륨·탄산나트륨·인산칼륨 등을 혼합한 간수가 필요한데 대체할 재료가 없는 상황이다. 그는 탁구를 하던 중 빙하학자 대원에게 간수 만드는 팁을 듣는다.

대원: 간수에 대해 알아봤더니 탄산가스를 함유한 물이더라고. 자네 베이킹파우더 알지? 탄산나트륨에 물을 타면 탄산가스가 나오거든. 그때 소금을 넣으면 간수와 비슷해질 거야.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얘기지만.

영화의 배경인 남극 기지.
 니시무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부엌으로 뛰어가 탄산가스 넣은 물로 반죽을 만들기 시작한다. 반죽을 랩으로 덮고 치댄다. 발효된 반죽을 밀대로 밀어 납작하게 만든 후 칼로 얇게 썰어 끓는 물에 익힌다. 면이 달라붙지 않도록 조심스레 저어준다. 완성된 라멘 한 그릇이 식탁에 놓인다. 라멘 한 그릇을 눈앞에 둔 대원들의 표정이 비장하다. 맑은 갈색 국물에 차슈·파 고명이 고루 올려진 먹음직스러운 한 그릇이다. 누군가 ‘꼴깍’하는 소리를 낸다. 하나둘씩 먹기 시작한다. 조용한 가운데 여기저기서 후루룩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대장 : 니시무라, 바로 이 맛이야. 고기 고명도 있다니. (형언할 수 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웃는다).
그때 두 명의 대원이 뛰어들어와 오로라가 나타났다고 소리를 지른다.
대원 : 대장, 오로라예요! 관측 안 하세요?
대장 : 그게 대수야? 불겠어, 얼른 와서 먹어.
대원들은 ‘오로라보다 대단한 라멘’ 앞에서 머뭇거리다 결국 자리에 앉아 먹기 시작한다. 모두가 행복한 표정이다.


한국의 짜장면처럼 20세기 초·중반 현지화
직접 뽑은 생면에 육수 … 장인의 요리로 인정
간장·소금·된장라멘 등 지역별 30개 레시피



여덟 명의 혈기 왕성한 대원들이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조리 담당 니시무라의 음식이다. 된장국과 니쿠자가(감자·고기조림)로 차린 정식, 덴푸라(일식 튀김)·가라아게(닭튀김)·오니기리(주먹밥)·로브스터까지 매일매일 화려한 식탁이 펼쳐진다. 한없이 낙천적인 사람들이지만 가족이 보고 싶을 때, 아내가 차려준 식탁이 그리울 때 울적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럴 때 대원들을 달래주는 게 라멘이다. 끓는 점이 낮아 면이 설익는다는 게 단점이지만 수프가 우러난 라멘 국물은 고단한 일과를 마감하는 피로회복제다. 인스턴트 라면이 떨어져 좌절한 대원들은 육수를 우려낸 진짜 라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감동한다. 영화는 라멘을 포함한 수많은 음식으로 관객을 배고프게 한 뒤 대원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남극 생활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일본인에게 라멘이란 일종의 소울 푸드(soul food)다. 요리 연구가 나카가와 히데코는 “간편하게 먹기 좋고 고기가 들어가 배부르고 든든한 한 끼 식사”라고 말한다. “일본에는 라멘 거리, 라멘 박물관, 라멘 잡지가 있을 정도로 라멘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고 말한다.

니시무라가 만든 라멘
 일본 라멘에 대해서 알려면 중국의 국수에 대해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여러 국수 중에서도 라몐(拉面)이라 불리는 국수는 명나라(1368~1644) 때 산시성에서 처음 등장했다. 손으로 잡아당겨 만드는 국수라 끌 납(拉)자를 썼다. 화베이(華北) 지방에서는 라몐이라 불렸지만 화중(華中) 지방에서는 간몐, 화난(華南) 지방에서는 다몐으로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 중국의 양완리가 쓴 『홍콩의 맛』은 일본 라멘이 바로 이 화베이를 포함한 근교 도시의 조리법과 식재료에서 유래했다고 소개한다. 양이 푸짐하고 큰 그릇에 담아 주는 화베이의 라몐이 현재의 일본 라멘과 비슷하다는 설이다. 반면 죽순조림, 구운 돼지고기, 조미한 달걀 같은 라멘용 고명은 화중·화난 음식으로 알려졌다.

 식문화연구가 오카다 데쓰는 저서 『국수와 빵의 문화사』에서 일본 라멘의 시초를 메이지 시대 말기, 다이쇼·쇼와 시대 초기 요코하마 중국요릿집 노점상으로 추측한다. 본격적으로 라멘이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1950년대 이후부터다. 당시 출간된 가정 요리책은 라멘을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중국식 소바’라고 소개하고 있다.

 100년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라멘은 일본 전역에서 다양한 스타일로 발전했다. 그랜드하얏트호텔 이자카야 ‘아카사카’의 케이이치 와타나베 조리장은 “도쿄·오사카·규슈·삿포로 등 지역별로 육수·면·고명이 모두 다른 게 일본 라멘의 매력”이라고 설명한다. 도쿄는 간장을 넣어 국물이 맑은 소유라멘으로 유명하다. 면발은 가느다란 편이며 탄력이 있어 쫄깃하다. 고명으로는 돼지고기, 발효한 죽순, 파가 일반적이다. 오사카 라멘은 가다랑어포·다시마를 우린 육수를 쓴다. 후쿠오카가 있는 규슈 지역은 돼지 뼈를 오랫동안 고아 국물 색깔이 하얗고 맛이 진한 돈코츠라멘으로 잘 알려졌다. 홋카이도는 삿포로·하코다테 지역의 라멘이 유명하다. 삿포로 대표 라멘은 돼지 뼈와 생선·버터·돼지기름을 넣고 끓인 육수에 된장을 푼 된장라멘이다. 고명으로는 고기 외에 해산물도 얹는다. 하코타테는 맑은 국물에 소금으로 맛을 낸 시오라멘을 만든다. 그 외에도 일본에는 상어 연골, 도미 뼈, 대나무 숯에 숙성한 일본 된장 등 다양한 고급 재료로 맛을 낸 독특한 라멘집들이 있다.

 면도 중요하다. 장인의 라멘집은 대부분 직접 만든 생면을 쓴다. 일본 마트에서 생면을 구입할 수 있지만 국내에는 수입되지 않는다. 라멘용 면은 단백질 함량 10.5~11% 정도의 준강력분이라야 적당한 글루텐이 형성된다. 여기에 쫄깃함을 더하기 위해 간수를 넣는다. 간수는 탄산칼륨·탄산나트륨·인산칼륨 등 여러 재료를 혼합한 것으로 글루텐 형성을 돕는 역할을 한다. 하카타분코의 김종윤 이사는 “쫄깃한 면, 단단한 면, 부드러운 면의 차이는 간수에 넣는 혼합물의 비율에 달렸다”고 설명한다. 일본 라멘 장인들의 간수 배합 비율은 저마다 다르다. 라멘 면발이 노란빛을 띠는 것도 간수가 색소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두부를 만들 때 사용하는 재료로 더 익숙하다.

 한국에서 일본식 라멘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자극적이고 칼로리가 높은 인스턴트 라면 대신 한 그릇 식사로 좋은 생라면집이 생겨나며 일본 라멘에 대한 수요가 생겨났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청진동 ‘미타카’, 신문로 ‘하오하오’ 등이 대표적인 초창기 일본 라멘집이다. 전문가들이 최고로 꼽는 요즘 라멘집은 2004년 문을 연 홍대의 ‘하카타분코’나 2008년 오픈한 ‘멘야산다이메’ 등이 있다. 후쿠오카의 하카타 지역 라멘을 선보이는 ‘하카타분코’는 900kg의 돼지 뼈를 꼬박 48시간 우려낸 진한 국물로 라멘을 만든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일본식 라멘을 파는 ‘멘야산다이메’는 20가지가 넘는 채소와 사골 뼈 우린 육수를 쓴다.

 생면과 육수로 완성한 일본 라멘은 튀긴 면으로 끓여 기름기가 많고 자극적인 한국의 인스턴트 라면과 맛 자체를 비교하기는 어렵다. 요리연구가 히데코는 “일본 사람들은 라멘은 장인이 만드는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가정식 요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맛을 내고 싶다면 돼지 뼈 대신 사골 뼈를 오래 끓여 가다랑어포, 다시마 등의 재료를 넣고 육수를 만든다. 면은 인스턴트 라면을 사용한다. 끓는 물에 데쳐 기름기를 제거한 뒤 된장이나 소금을 풀어 맛을 낸 육수에 면을 풀고 한 번 더 끓인다. 한국 된장보다 쿰쿰한 향이 덜하고 끝 맛이 부드러운 일본 된장이 좋다. 마루맨, 아와세 브랜드가 대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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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이야기
런던 유학생 속 달래준 추억의 라멘


런던 유학시절 1월의 추위는 매서웠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에, 해는 짧아져서 오후 5시만 되도 깜깜하더군요. 사방은 카메라와 지도를 들고 두리번거리는 관광객들로 넘쳐났지만 저는 모자와 목도리를 칭칭 감고 땅만 보고 걷고 있었죠. 어서 기숙사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왠지 모르게 외롭고 쓸쓸한 기분에 따끈한 국물과 잘 익은 김치 생각이 나더군요. 한 달 넘게 영국 음식만 먹다보니 느끼한 속을 달래줄 그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매콤하고 화끈한 음식이 먹고 싶던 저는 우연히 조그마한 일본식 주점을 발견했습니다. 뭔가에 홀린 듯 들어가서 메뉴 중 가장 매운 일본 라멘을 주문했습니다. 빨갛고 얼큰한 국물을 들이키는 순간 땀이 나면서 가슴이 뻥 뚫리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뒤로도 해외 출장 중 한식이 그리울 때는 일본 라멘을 종종 찾습니다. 제게 위안을 주었던 그때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백수현(23·안암동)




▶서울에서 라멘으로 유명한 레스토랑

이윤화 다이어리알 대표, 요리연구가 나카가와 히데코, 그랜드하얏트서울 아카사카의 케이이치 와타나베 셰프의 추천을 받아 중복되는 3곳을 추렸습니다.


[하카다분코]

“일본 현지 라멘집에 온 듯한 이국적인 인테리어
첨가물을 안 넣고 돼지 뼈로만 끓인 육수가 일품”


○ 특징: 2004년부터 일본 규슈 하카타はかた) 지역 스타일의 라멘을 판매한다. 가게 이름을 일본어로 쓴 나무 간판에서 현지 라멘집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하카타분코의 대표 메뉴인 돈코츠라멘 국물은 돼지 뼈를 48시간 동안 우려냈다. 면도 직접 뽑는다. 자체 제작한 간수를 부어 반죽한다. 면의 굵기는 가느다란 편이며 살짝 덜 익혀 씹는 식감이 좋다. 라멘 메뉴는 국물이 진한 인라멘과 그보다 맑은 청라멘, 두 가지다. 고명으로는 오겹살과 간장을 함께 끓인 돼지고기(차슈)를 쓴다.
○ 가격: 인라멘·청라멘 8000원
○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2시, 오후 5시~오후 10시30분, 명절 당일만 휴무.
○ 전화번호: 02-338-5536
○ 주소: 서울 마포구 독막로19길 43(상수동 93-28)
○ 주차: 불가


[멘야산다이메]

“짠맛, 고소한 맛이 한국인 입맛에 맞는다
사골 뼈로 끓인 육수라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 특징: 일본 전 지역의 대표 라멘을 골고루 선보이는 곳. 현지와 똑같은 맛·레시피를 고집하지 않고 한국 사람 입맛에 맞췄다. 아치형 장식물로 꾸민 모던한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나무로 만든 일식 바 앞에서 분주히 라멘을 만드는 요리사들이 눈에 띈다. 판매하는 메뉴는 총 7가지. 돈코츠·미소·쿠로라멘 등을 판매하며 최고의 인기 메뉴는 돈코츠라멘이다. 국물은 사골 뼈를 20시간 이상 끓여낸 육수를 사용한다. 잡내를 잡기 위해 다시마·양파 같은 채소를 함께 넣어 끓인다. 면도 직접 뽑는데 유통기한이 이틀 정도라 언제 방문해도 신선한 생면을 맛볼 수 있다. 고명으로는 간장에 끓인 돼지고기, 간장에 익힌 달걀, 숙주·파·청경채 등을 올린다.
○ 가격: 7000~9000원대, 돈코츠라멘 7000원
○ 영업시간: 24시간·연중무휴
○ 전화번호: 02-790-4129
○ 주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06(이태원1동 126-17)
○ 주차: 불가


[잇푸도]

“모던 재즈가 흘러나오는 세련된 분위기가 매력적
타코 와사비, 교자, 라면 샐러드 같은 단품 요리도 다양”


○ 특징: 일본인 가와하라 시게마가 후쿠오카 텐진에서 시작한 라멘 전문점. 남자들만 오는 작고 지저분한 기존 분위기를 모던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로 바꿨다. 라멘으로 유명한 후쿠오카 하카타 지역의 돈코츠라멘이 가장 유명하다. 1호점인 신사동 매장에 들어서면 모던 재즈가 흘러나오는 깔끔하고 널찍한 매장이 나온다. 일본·뉴욕 매장에서 판매하는 기본 메뉴로는 진한 국물의 돈코츠라멘, 목이버섯과 숙주를 곁들인 라멘, 매운맛을 선택할 수 있는 카라라멘 등이 있다. 고명은 반숙 달걀과 온천 달걀, 일본식 갓김치 등 다양하다. 장어와 오이 요리, 명란 달걀말이 등 술안주로도 좋은 단품 메뉴도 갖췄다.
○ 가격: 8000원~12000원대, 돈코츠라멘 8500원, 카라라멘 9000원
○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11시, 금·토요일은 새벽 2시까지, 일요일은 오후 11시까지
○ 전화번호: 02-512-2644
○ 주소: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42길 41(신사동 645)
○ 주차: 발레파킹

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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