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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서울의 메르스와 베이징 사스의 기억


국내 메르스 사태가 고비를 넘겼다고 하지만 아직도 진정되지 않고 있다. 메르스 관련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국제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중국 당국이 베이징 개최예정의 ‘한중고위 언론인 포럼’을 연기 시켰고 서울 개최의 ‘한국기업 베이징투자설명회’도 연기되었다. 이 행사에는 베이징 시 공무원과 기업인 300여명이 참가할 예정이었다.
또한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된 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는 한국인 영화인들의 참석 자제를 요청하였고 쓰촨(四川)성에서 개최예정이던 대형 한류축제에서는 수 백 명의 한국인에 대해 입국을 불허함으로써 행사 자체가 취소되었다.
국내 중국 유학생의 동요도 심상치 않다. 일부 유학생은 기말 시험도 안 보고 귀국하였다고 한다. 이는 국민안전처가 홈페이지 등에서 메르스 방역정보를 한국어로만 게재하고 있어 이를 잘 이해 못하는 학생들은 SNS의 과장 허위 정보에 노출되어 두려움을 크게 느낀 것 같다.
그리고 인천공항에 하루 2만 명씩 입국하던 요우커(遊客)가 400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명동이나 백화점 등에는 그 많은 요우커가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이다. 중국은 과거 사스의 기억이 되 살아 난 것일까.
전문가들은 메르스가 사스와는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병원감염에 국한되는 메르스는 사스에 비해 크게 우려할 사항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의학지식이 많지 않고 이러한 주장을 불신하는 사람들은 불요불급한 한국여행이나 행사를 연기 또는 취소부터 하고 본다. 중국 친구들이 사라진 허전한 서울 거리를 거닐면서 과거 베이징에서의 사스의 기억을 되돌아본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는 코로나(왕관처럼 원형)바이러스(CoV)의 일종으로 사촌간이라고 한다. 앞의 수식어 중증급성(Severe Acute)과 중동(Middle East)이 다를 뿐이고 뒤에 붙은 RS(호흡기증훈군 Respiratory Syndrome)는 항열(行列)처럼 같다.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감염병이라고 한다.
필자는 중국 대사관에 근무하면서 중국인의 사스에 대한 트라우마를 이해한다. 사스로 여행이 제한되었을 때 베이징은 유령도시처럼 변했고 베이징에 일자리를 구해 온 농촌출신들은 고향도 가지 못했다. 중국 전역으로 사스의 확산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사스를 중국에서는 페이덴(非典)이라고 부른다. 비전형폐염(非典型肺炎)을 줄인 것이다. 사스는 2002년 11월 광둥(廣東)성에서 40대의 농협직원이 첫 환자로 발생된 후 인근 홍콩 싱가포르 등을 거쳐 전 세계 30개국으로 확산되었다. 2003년 7월5일 WHO에서 중국의 사스가 통제되었다고 공식 선언할 때 까지 전 세계적으로 8069명이 감염되어 775 명의 생명을 빼앗아 간 무서운 신종 전염병이었다.
중국(홍콩 타이완 등 제외)은 그 중에서 5327명의 감염에 348명의 목숨이 희생되었다. 한국에도 3명이 감염되었으나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었다. 다행히도 중국이나 동남아 등 주변국에서 사스의 공포가 널리 알려져 있어 당시 정부가 초기부터 범정부 대책반을 꾸려 강력히 대응하였기 때문으로 본다.
국내외 언론 등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광둥 성에서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감염 확산 우려가 높았던 중국은 홍콩과 달리 국민의 불안을 막는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비밀주의로 일관하였다. 군(軍)외과전문의 장옌융(蔣彦永) 인민해방군 소장은 사스가 계속 만연되고 있는데도 당시 위생부장(장관)과 베이징 시장은 ‘감염 12명 사망 3명으로 사스는 유효하게 통제되고 있다’는 등 사실과 다른 발표를 하여 사스를 축소 은폐하고 있다고 보았다.
장옌융 장군은 자신이 근무한 군병원의 확진환자와 유사환자 케이스를 조사하여 2003년 4월초 언론에 폭로하였다. 당시 타임지 베이징 특파원은 “Beijing's SARS Attack(베이징의 사스 공격)'라는 제목으로 사스 실태를 최초 보도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이에 WHO 조사단이 긴급 파견되면서 실제 사항이 밝혀졌다.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한 중국정부는 4월22일 멍쉐눙(孟學農) 베이징 시장과 장원캉(張文康) 위생부장의 ‘늑장대응’의 책임을 물어 곧바로 면직시켰다. 멍쉐눙 시장은 베이징 당위 부서기에서 승진한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우이(吳儀) 부총리가 위생부장을 겸직하고 하이난다오(海南島)성의 왕치산(王岐山) 당서기가 베이징 시장대리로 발탁되었다.
왕치산은 1997년 광둥 성 부성장으로서 해외 금융 관계자와 협상 중국의 금융위기를 해결한 공로로 국무원 경제체제 판공실주임을 거쳐 하이난성 당서기로 영전한 인물이다. 왕치산은 과거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야오이린(姚依林)의 사위로서 전임자 멍쉐눙과는 공교롭게도 동서지간이 된다.
왕치산은 컨트롤 타워(중앙지휘자)로서 사스와 ‘공개전쟁’을 결심하였다. 그는 투명한 정보공개를 통한 치밀한 방역체계를 갖추어 3개월 만에 사스를 조기 퇴치하였다. 왕치산은 금융 ‘소방대장’에 이어 ‘사스영웅’으로 국민들의 인기가 높았다. 그 후 승승장구하여 지금은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로서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의 절대 신임을 받고 있다.
베이징을 포함한 전 중국에 대한 사스감염의 가능성이 높아지자 미 국무성은 4월초 ‘철수인가(Authorized Departure)’를 내리면서 중국 본토와 홍콩소재 미국 공관의 비 필수요원과 가족의 자발적 철수를 권고하였다. 이는 ‘철수명령(Ordered Departure)’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이지만 심리적인 공포감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베이징 시에는 휴교와 함께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등 사회불안이 극에 달하여 각국의 공관과 기업도 철수를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당시 중국 주재 김하중 대사는 자신의 회고록 ‘하느님의 대사’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사스가 발생하였을 때라고 회고할 정도로 교민 안전에 부심하였다고 한다. 대사관 내에 ‘사스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교민 철수 등 특단의 조치를 검토하였다. 우리 기업들은 대사관의 철수 결정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 대사의 회고에 의하면 한국인은 중국의 사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신뢰를 보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중국과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국이 사스가 무서워 떠난다면 중국의 사스 위험성이 더 크게 부각될 것이고 개인적으로도 어려울 때 친구를 놔두고 가버린다면 나중에 그 친구를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를 걱정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라는 서양 격언처럼 김 대사는 우리가 중국의 진정한 친구라면 어려움에 처한 중국인과 고난을 함께해야 한다면서 철수 이야기를 더 이상 꺼내지 못하도록 하였다.
한국인이 사스에 강한 것은 김치를 먹기 때문이라면서 김치를 컨테이너로 수입하여 정부 요로에 선물하여 큰 호응을 얻기도 하였다. 대사관 직원들과 부인회를 통해 사스로 고생하는 베이징 시민을 위한 십시일반의 모금으로 베이징 시 위생국에 전달하였다. 그리고 정부에 건의하여 대통령과 국무총리로 하여금 위로 전문 발송과 함께 상징적으로 성금 10만 불을 지원 중국의 사스 퇴치에 보탬이 되도록 하였다.
김 대사의 이러한 노력은 출범(2003.3.15) 직후 사스 공격에 휘둘리고 있는 후진타오(胡錦濤)-원자바오(溫家寶)의 제4세대 지도부에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다시 김 대사의 회고에 의하면 중국의 후진타오 정부와 거의 비슷하게 출범(2003.2.25)한 노무현 대통령 정부의 측근들은 중국의 사스를 이유로 계획된 대통령 방중행사(7.7-10) 연기를 검토하고 있었다.
2003년 5월에 서울에서 공관장회의 개최되었다. 대통령 취임행사로 예년보다 2-3개월 정도 늦은 시기였다. 공관장 회의 기간 중에는 청와대 만찬이 일정에 포함되어 있다. 어느 날 본부 간부가 김 대사 내외분이 청와대 만찬을 참석하기 위해서는 2주전에 귀국해야 한다는 전화를 걸어 왔다. 사스는 2주 정도 잠복기를 거쳐야 증상이 나타나므로 사스 감염여부를 먼저 확인하겠다는 의도였다.
담대한 마음으로 교민 사회에 사스 극복을 진두지휘하는 김 대사는 현장을 그렇게 오래 비우기도 어려워 서울의 지시를 따를 수 없었다. 청와대 만찬 참석이 중요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회의 날짜에 임박하여 귀국한 김 대사 내외는 예상대로 청와대 만찬에는 참석할 수 없었다. 사스가 잠복되어 있는지 모른다는 우려에서였다. 여타 공관장들이 버스를 타고 청와대로 갈 때 김 대사 내외는 쓸쓸히 호텔 방에 남아서 설렁탕을 시켜 먹었다고 한다.
며칠 후 대통령이 김 대사를 따로 불렀다. 중국에서의 사스 상황을 직접 보고 받고 방중행사를 예정대로 해도 될 것인지에 대해서 대사의 의견을 물었다. 김 대사는 베이징의 사스가 방중 이전에 통제될 것으로 확신하므로 예정대로 방중해 줄 것을 건의 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현지 대사의 건의를 받아 들여 방중행사를 예정대로 수행하도록 지시하였다고 한다.
지성이면 감천인가. 다행히 사스는 진정되어 6월13일자로 베이징 인근 텐진 시 등의 여행제한이 해제되고 6월24일에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던 베이징 시에 대한 여행제한이 해제되었다. 그리고 7월5일 WHO는 사스가 세계적으로 완전히 통제되었음을 선포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예정대로 중국을 국빈 방문하여 사스 발생 후 처음 중국을 찾은 국가원수로서 중국인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며칠 전 중국의 권력 서열 3위인 장더장(張德江) 전인대 상무위원장(국회의장)이 방한하였다. 한국의 메르스 감염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중국내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장더장 위원장의 방한은 2003년 7월 노무현 대통령의 방중을 상기 시켰다. 장더장 위원장은 정의화 국회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을 스스로 밝혔지만, 한국어가 유창하며 한반도 전문가인 장더장 위원장의 한국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으로 12년 전 김 대사처럼 추궈홍(邱國洪)주한 중국대사의 확신에 찬 건의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사스가 한창일 때 성금과 위로로 곤경에 처한 중국 친구들을 감동시킨 사스 퇴치 모범국가였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3년의 준비기간이 있었는데도 의료 선진국의 자만에 빠져서인지 예방조치에 손을 놓고, 초기에 안일하게 대처 메르스를 잡지 못하고 곤란을 겪고 있다.
우리 민족은 저력 있는 민족이다. 수 천 년 역사에서 외침과 재난을 겪을 때마다 일치단결하는 강인한 민족이다. 근거 없는 불안의 증폭을 자제하고 단합된 힘으로 총력전을 펼친다면 메르스 위기는 곧 극복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나섰다. 메르스와 싸우는 환자와 의료진을 방문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동대문 패션상점가에서는 불안스러워 하는 요우커를 직접 만나 안심시키도 하였다.
한국이 치루고 있는 메르스와의 전쟁을 전 세계가 지켜본다. 특히 대부분의 중국인은 12년 전 진정한 중국의 친구로서 김 대사의 용단과 한국정부의 성원을 잊지 않고 있다. 그들은 메르스의 조기 퇴치를 기원하면서 ‘자요우, 자요우(加油 加油 힘내라 힘내라)!’라고 하면서 격려해 주고 있다. ‘화이팅’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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