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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그땐 왜 그랬을까” 과거와 화해 못하는 나

시도 때도 없이 자책하는 30대 여성


01실수를 더 오래 기억하는 뇌

Q (행복한 기억은 금세 잊는 주부)
한창 예쁜 세 살 딸을 둔 30대 전업주부입니다. 결혼하고 아이 키우면서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문득문득 예전에 억울했던 일, 화났던 일이 떠오르고 내가 그때 다르게 행동했다면 좋았을 걸 하며 후회를 합니다. 쓸데없이 속 태우는 게 두려워 계속 뭔가를 정신없이 하려고 노력하지만 잠깐만 방심해도 과거의 기억이 불쑥불쑥 떠올라 괴롭습니다. 운전하다가, 설거지하다가, 학교 가는 학생들을 보다가, TV를 보다가, 일하다가 등 갑자기 과거가 떠오르고 그때 내가 못했던 행동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자책합니다. 일부러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려 해도 후회스럽고 화난 기억만 떠올라 괴롭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종일 찡그리고 일을 못 하는 건 아닙니다. 딸 재롱에 웃고, 사람들과 어울려 배꼽 잡고 웃어도 그건 그날 잊어버립니다. 다 괜찮은데 갑자기 떠오르는 안 좋은 기억 때문에 괜히 속이 상하고 밤에 잠이 안 옵니다.

A (문화적인 휴식 권하는 윤 교수) 행복한 기억이 더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기억이 더 오래갑니다. 행복한 기억이 오래가지 않는 것은 뇌의 적응이란 기전 때문에 그렇습니다. 100짜리 좋은 일이 팡 터져도 100일이 가지 않습니다. 100일은커녕 10일만 지나도 그 느낌이 가물가물합니다. 평생 먹고살 돈인 수십억원 복권이 당첨되면 평생 마음이 훈훈해야 할 텐데 미국의 연구를 보면 복권 당첨자와 복권이 당첨되지 않은 비슷한 처지 친구들의 1년 후 행복지수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런 뇌의 적응 기능이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아침에 맛난 것을 먹은 행복감이 한 달 지속하면 사람은 먹지 않아 영양실조로 생존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죠. 첫사랑의 황홀한 느낌이 평생을 간다면 사람은 더는 사랑을 않고 2세를 낳지 않아 인류가 유지될 수 없단 이야기입니다.

 순간순간 불행한 기억이 떠올라 후회하고 자기를 책망하게 되어 괴롭다는 오늘 사연의 주부님, 그분만의 고민은 아니죠. 행복했던 기억은 다 어디 숨어 버렸는지 우리 뇌 안에는 후회스럽고 억울한 기억이 주로 머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부정적인 기억은 더 오래 기억될까요.

 영어로 rumination, 우리말로 반추라는 이 말은 평상시에는 잘 쓰지 않고 주로 정신 병리 용어로 많이 사용됩니다. 동물이 ‘반추한다’고 하면 한번 삼킨 먹이를 다시 게워 내어 씹는다는 뜻인데, 사람의 반추는 심리적인 것입니다. 어떤 일을 되풀이하여 음미하거나 생각함이란 뜻입니다. 정신의학에서 반추라는 것은 과거의 부정적인 생각에 집착하게 되는 현상을 이야기합니다. 우울장애를 가진 환자에게서 흔히 보입니다. 치료자가 긍정적인 쪽으로 대화를 유도하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은 다시 그 부정적인 사건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늪에 빠진 것처럼요.

 물론 부정적인 생각 자체가 병적인 것은 전혀 아닙니다. 우리는 생각대로 행동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느낌대로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뒤에서 조정하는 것은 마음의 느낌, 감정인 셈이죠. 부정적인 생각과 행동 뒤에는 불안과 우울이라는 감정이 존재합니다. 불안은 미래를 향한 걱정이고, 우울은 과거에 대한 후회죠.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실수한 과거 경험에서 지혜를 얻고 그것을 미래에 적용해 위기를 사전에 관리해야 합니다. 결국 부정적인 생각이란 생존을 위한 뇌의 활동이 만들어 내는 콘텐트인 셈입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과거 기억이 긍정적인 과거 기억보다 오래가는 것입니다. 생존 측면에서는 이것이 효율적이죠. 좋은 기억은 빨리 잊고 부정적인 생각을 통해 생존을 위한 위기관리에 집중하는 셈입니다.

 생존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닙니다. 뇌에 문화적인 휴식을 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문화적 휴식은 생존만을 위해 달려가는 과열된 엔진에 살포시 브레이크를 걸어주기 때문입니다. 잘 놀아야 부정적인 과거의 늪에 빠지지 않습니다.


02 여유 되찾기 위해 시작한 독서

Q
저도 제가 너무 육아 등 집안일에만 빠져 있고, 그러다 보니 지쳐서 더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아 문화적 취미를 가져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책 읽기를 시작했는데 좌절만 경험했습니다. 책을 열심히 읽어봐야지 하며 열의를 갖고 읽기 시작해도 중간도 못 가 덮게 됩니다. 재미도 없고 몰입도 잘 안 됩니다. 나는 책이랑은 영 상관없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고요. 친구의 권유로 독서 동호회도 들었는데 책을 다 못 읽으니 민망해 나가기 싫고 친구가 억지로 끌고 나가도 다른 사람들 이야기에 기가 죽어 버립니다. 제 무식이 다 들통 날 것 같고요. 전 책이랑 영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A 프랑스 소르본대 교수이자 문학비평가인 에밀 파게는 『독서의 기술』에서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한탄했습니다. 이 책이 쓰인 100년 전 프랑스 파리라면 내로라하는 철학, 인문학, 그리고 예술의 거장들이 커피 전문점에서 모여 같이 놀던 시대죠. 그런데 그 시절에 인문학의 시대는 언제 올 것이냐며 걱정하는 파게의 글을 읽으니 웃음마저 나오더군요. 시대를 막론하고 책이란 본능적으로 우리가 싫어하는 녀석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술은 술술 넘어가지만 책은 그렇지 않죠. 책은 저자의 생각이 담겨 있기에 책을 읽다 보면 상당한 저항이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누군가 자기의 주장을 강력하게 내 마음에 집어넣으려 하면 자기애에 상처가 나기 때문이죠. 그래서 마음을 닫아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책을 집어 던지게 되죠.

 내가 책을 보는 걸까, 책이 나를 보는 걸까. 그런 뻔한 질문이 어디 있느냐 싶지만 마음의 저항을 견디고 책장을 넘겨 3분의 1만 지나면 훅 몰입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순간부터는 책이 나를 보기 시작하는 것이죠.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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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