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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해 주세요 … 의료진들이 악착같이 메르스 물고 늘어지게”

한림대 동탄성심병원의 김현아(41·사진) 간호사가 15일 다시 글을 썼다. 그는 메르스 사태로 중환자실에 격리된 환자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편지로 본지 독자들에게 감동을 준 인물이다. <6월 12일자 1, 6면> 2주간의 격리에서 이날 해제된 김 간호사는 본지와 인터뷰했다. 그 뒤 자신의 글에 뜨거운 반응을 보여줬던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 새 편지를 보내왔다. 다음은 편지 전문.


돌아가신 그분과 유족에게 국내 첫 메르스 사망이라는 불명예와 함께 메르스를 옮기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하는 건 아닌지 내내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14일 잠복기 동안 열이 나는 사람이 있으면 더욱 긴장했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마음 졸였습니다. 메르스는 그분을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지독했지만 함께 있던 의료진과 면역력이 약한 중환자 36명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메르스에 감염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격리에서 풀려났습니다. 돌아가신 분에게 메르스를 옮긴 사람이란 오명이 남지 않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많은 분이 보내주신 분에 넘치는 응원은 두려움에 떨리던 제 두 발에 힘을 실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말 한마디가 지친 어깨를 두드려 주셨고 보내주신 진심 어린 박수는 서러움에 흐르던 눈물을 닦아 주셨습니다.

사람이 자기 의지대로 메르스를 옮기는 건 아닙니다.

메르스가 스스로 움직여 옮겨가는 것이죠. 그러니 메르스에 감염된 사람도 병원도 미워하지 마세요. 아무 증상이 없는 격리자들까지 꺼리지는 말아 주세요. 옆 사람이 기침한다고 노려보지 마세요. 대신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어 주세요. 처음 격리 때는 우리도 겁에 질린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안에서 누가 걸리지나 않았는지 의심부터 하고 서로를 멀리했다면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메르스에 6일간이나 무방비로 노출된 저희 병원 의료진과 중환자들 중 단 한 명도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믿기 힘든 기적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 두려움을 삼키며 메르스의 최전방에서 제 자리를 지키는 전국의 모든 의료진은 곧 또 다른 기적을 가져올 것입니다. 여러분의 따스한 응원은 의료진이 더욱 악착같이 메르스를 물고 늘어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쉬지 말고 계속 응원해 주세요. 모든 의료진이 메르스에 한 발짝도 뒷걸음치지 않도록 두 발에 묵직하고 단단한 힘을 다시 한번 실어 주세요.

[동탄성심병원 김현아 간호사 인터뷰] “소독제로 병실 매일 닦아 … 격리 이해해 준 환자 참 고맙다”

지난달 31일부터 메르스 잠복 기간인 14일 동안 격리됐던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김현아 간호사가 15일 중환자실에서 나오며 마스크를 벗었다. 환자들을 돌보고 나온 그의 이마에 땀이 배어 있다. [김상선 기자]
‘저승사자를 물고 늘어지겠다’ ‘메르스가 내 환자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맨머리를 들이밀고 싸우겠다’던 이다. 하지만 마주 앉은 그에게서 여전사 이미지는 찾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침착한 말투와 온화한 미소가 빛났다.

 경기도 화성시 동탄성심병원 외과중환자실의 김현아(41) 간호사. 그를 15일에 만났다. 병동과 집에만 머물러야 하는 2주간의 격리 조치가 끝난 날이다. 함께 격리됐던 환자 36명과 의료진 123명은 모두 메르스 음성 판정을 받았다.

 김 간호사는 이날도 중환자실을 지켰다. 근무 교대 뒤 병원 휴게실로 온 그는 “편지가 중앙일보에 실린 뒤 과분한 찬사를 많이 받았다. 이번 일을 통해 메르스와의 전쟁 최전선에 서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힘겨운 격리 생활이 끝났다. 소감은.

 “오늘 아침 근무였는데 어젯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해제 시간(15일 0시)을 알리는 시계 소리가 들리자마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집 밖으로 나갔다. 하필 쓰레기가 제일 먼저 생각나 첫 외출이 그렇게 됐다.”

 -병동과 집만 오가는 격리 생활은 어떠했나.

 “소독제로 병실 바닥은 물론 컴퓨터·전화기·모니터를 매일 박박 닦았다. N95 마스크를 쓰고 방호복을 입고 있는 게 가장 힘들었다. 숨 쉬기가 힘들었다. 화장실 가는 것도 고역이었다.”

 -격리 초기가 특히 힘들었을 것 같다.

 “간호사 부모님이 병원에 와 딸을 데리고 간 일도 있었다. 메르스가 옆에 잠깐 있어도 걸리는 병으로 인식돼서 그랬다. ‘이 건물 안에 떠다니는 균은 어떻게 할 거냐’고 소리치는 환자 보호자도 있었다. 어린 간호사들이 무서워서 근처에도 못 가겠다고 했다.”

‘간호사의 편지’를 실은 중앙일보 6월 12일자 1면.
 -국내 첫 메르스 사망자(25번 확진자)를 직접 돌봤는데, 지금 심정은.

 “지난 1일에 돌아가신 직후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부분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감염 우려 때문에 확진 판정이 나올 때까지 7시간 정도 격리실에 홀로 모셨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죄송했다.”

 -메르스에 감염될까봐 걱정하지 않았나.

 “돌아가신 환자 곁에 계속 붙어 있었기 때문에 메르스 바이러스가 분명히 내 몸 속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두려워했으면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하지만 동료 간호사들과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평소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면서 얼마나 나쁜 바이러스가 몸에 많이 들어왔겠느냐’고.”

 -중환자들은 메르스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사실 대부분의 중환자는 말을 못하거나 의식이 없다. 그런데 한 여성 환자는 노트북을 통해 메르스 소식을 다 알고 있었다. 그 환자에게 ‘나가면 다른 사람에게 전파시킬 수 있어 여기 있어야 한다’고 설명하니 이해해줬다. 참 고마웠다.”

 -계속 중환자실에서 근무해왔나.

 “1996년 간호사 일을 시작한 뒤 거의 중환자실에만 있었다. 처음 간호사가 될 때 중환자실로 가고 싶다고 손을 들었다. 다른 병원의 화상 중환자실에도 있었다. 일반 병동 근무는 1년 반 정도 했다. 사람의 생과 사를 가르는 곳에서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이 길로 이끌었다.”

 -중환자실 근무가 고된 일일 텐데.

 “제 방 침대에는 베개가 6개 있다. 서서 일하는 직업이다 보니 다리가 많이 부어서 그 위에 올려놓고 잔다. 그러면서 내가 환자라면 어떤 자세가 편할지를 실험해 본다. ”

 -평소 환자들을 대하는 원칙은.

 “중환자실 신입 간호사들이 오면 이런 얘기를 해준다. 아줌마 환자가 오면 엄마 얼굴을, 노인 환자가 오면 할머니 얼굴을 떠올리라고. 중환자실에서 환자가 의지할 건 간호사밖에 없다. 간호사가 바빠야 환자가 편하다.”

 -편지가 보도된 뒤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의료진을 꺼리는 듯한 사람들의 태도에 서운함을 느껴왔는데 많은 이들이 제 편지에 공감하는 것을 보고 세상은 아직 따듯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동료 간호사들이 ‘잊고 있던 초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글을 매우 잘 쓴다. 글을 많이 써왔나.

 “작가를 꿈꾼 적이 있다. 시나리오도 써봤고 일간지에 칼럼을 쓰기도 했다.”

 -지금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곧 어머니를 모시러 갈 생각이다. 혹여나 메르스가 전파될까봐 멀리 대구의 이모댁에 가셨는데 빨리 보고 싶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나보다 더 메르스 전문가가 됐다.”

화성=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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