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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북한 “메르스에 뚫리면 끝장” … 공항·국경 방역 총력전

에볼라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말 북한 남포수출입품검사검역소 요원들이 외항선원과 선박 내부에 대한 진단과 검역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달들어 북한은 남한 내 메르스 발병에 따른 대응책으로 국가비상방역위원회를 가동하고, 우리 측에 개성공단에 사용할 체온감지장치와 마스크를 요청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이 남북관계를 완전히 삼켜버렸습니다. 서울은 확산방지에 골머리를 앓고 있고, 평양은 혹시나 메르스가 유입될까 문을 꽁꽁 걸어잠궜습니다. 장소 문제로 삐걱거리던 6.15 공동선언 기념 행사도 결국 남북 각기 치러야했죠. 당초 14~15일 이틀간 열려던 우리 측 행사도 14일 하루로 줄었고, 장소도 서울광장에서 수운회관으로 옮겨 조촐하게 열렸습니다.

 15일자 북한 노동신문은 3면에 “6.15공동선언 이행으로 자주통일을 이루자”는 취지의 사설을 실었습니다. 그나마 박근혜 정부 비난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습니다. 지난해 같은 날 1면 톱으로 기념사설을 냈던 것과 차이가 납니다. 올해에는 1면에 신형 함대함 미사일 시험발사를 참관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사진이 크게 실렸는데요. 선대(先代)수령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업적’으로 내세워 온 첫 남북 정상회담 성과물보다 남쪽과 대립각을 세우는데 치중하는 북한의 의도가 드러납니다. 별도의 ‘정부 성명’에서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긴 했지만 여전히 대남비방과 책임전가에 무게가 실린 모양새입니다.

 꼬일대로 꼬인 남북관계에 메르스란 직격탄을 맞으면서 해법마련은 더욱 어려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당장 다음달 3일 개막할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에도 불똥이 튀게 생겼죠. 북한의 선수단 파견 여부가 불투명합니다. 북한은 마감일(지난 3일)을 넘겼는데 참가신청을 하지않고 있습니다. 메르스 사태에 대한 북한 당국의 예민한 반응 때문입니다. 재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14일 평양발로 메르스에 긴장하고 있는 북한 내 분위기를 전했는데요. 국가비상방역위원회가 구성됐고, 평양순안공항과 국경지역에 검역 설비를 늘리는 등 위생·동물 검역을 강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행히 메르스 환자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박명수 국가위생검열원장은 노동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메르스 치사율이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때보다 6배 높다고 경고하는 등 고삐를 바짝 죄고있습니다.


 남북관계의 인공호흡기 역할을 하는 개성공단에는 더욱 팽팽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무엇보다 남한에서 사람과 물자가 공단을 들락거린다는 점 때문일텐데요. 북한은 “중동이나 메르스 발생지역을 왕래한 인원에 대해서는 개성공단 출입을 제한해달라”고 우리 측에 요청해왔다는 게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의 전언입니다. 또 “남측 개성 주재원에 대해서도 감염예방을 철저히 해달라”면서 “메르스 전파 및 예방 대책에 관한 자료가 있으면 협조해달라”고 밝혔다고 하는군요.

 의료·방역 체계가 열악한 북한으로선 메르스에 뚫리면 끝장이란 절박감을 갖고 있는듯 합니다. 실제로 지난해 에볼라 사태 때는 해외 순방을 마치고 온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평양 귀환후 3주간 격리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하면 광복 70주년 8.15 남북 공동행사도 불발될 공산이 큽니다. 직후엔 한·미합동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같은 군사연습이 예정돼있어 남북관계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한편으로 북한은 이번 메르스 사태를 대남비방과 반정부 선동의 호재로 삼을 기세입니다. 노동당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14일 “남조선에 치명적 메르스 전염병이 걷잡을 수 없이 전파되면서 공포와 혼란·침체에 빠져있다”며 “부패·무능과 반인민적 통치의 결과”라고 비난했습니다.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부의 미덥지 못한 대응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북한이 이러쿵저러쿵할 문제는 아닙니다. 체온감지 장치 뿐 아니라 개성공단 근로자가 쓸 마스크까지 남측에 요청해야 하는 스스로의 처지를 북한 당국자들이 돌아봤으면 합니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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