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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질펀한 연회, 핏빛 살육 … 뻔한 사극 영화 예고된 실패

조선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인물인 연산군을 소재로 만든 영화 ‘간신’(민규동 감독)의 흥행이 저조하다. 개봉한 지 한 달 가까이 됐지만, 관객수는 간신히 100만 명을 넘는 데 그쳤다. 손익분기점이 250만 명임을 감안하면, 흥행 실패는 기정사실이다. 단순히 영화 한 편이 흥행에 실패했다고만 봐선 안 되는 이유가 있다. 궁궐 안의 권력다툼을 주된 소재로 삼는 궁중 사극이 잇따라 흥행에 참패하고 있고, ‘간신’ 또한 그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궁중 사극은 지난해 말 개봉한 ‘상의원’(이원석 감독)부터 외면받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왕실의 의복을 만들던 상의원이라는 참신한 소재를 다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79만 관객에 그쳤다. 또 올해 3월 초 개봉한 ‘순수의 시대’(안상훈 감독) 또한 태종 이방원의 ‘왕자의 난’을 모티브로 만들었지만, 46만 관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왕의 남자’(2005, 이준익 감독)의 흥행 이후 충무로의 흥행 장르로 자리잡은 궁중 사극의 잔혹사가 이어지고 있다고 할 만하다.

 궁중 사극이 외면받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장르적 관습이 포화상태를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60억원 이상의 제작비를 들여 스펙터클을 키우고, 의상과 미술 등 ‘보이는 것’에 집착하다 보니, 클리셰(진부한 표현) 같은 장면을 양산해낸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궁중 사극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무희가 춤을 추는 연회 장면, 사냥과 활쏘기 장면, 에로틱한 정사신, 잔인한 학살 장면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영화평론가 김형석씨는 “궁중 사극은 ‘왕의 남자’ 이후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줬지만, 최근 몇 년간 급속하게 공식화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간신’은 극단적인 클리셰들을 모아놓았다는 점에서 궁중 사극 침체의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복수와 욕망, 광기와 음모의 익숙한 이야기가 방향성을 잃은 채, 결국 뻔한 멜로로 귀결되는 패턴은 ‘순수의 시대’의 패착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 폭력적이고 잔인한 묘사와 선정성은 역대 사극 중 최고 수준이다. “폭력적인 역사로 권력의 폐해를 비추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를 관객이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영화 ‘간신’에 정작 간신은 없다”(강유정 영화평론가)는 말처럼, ‘간신’의 공허한 울림과 메시지는 앞의 두 작품과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정현목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
 같은 장르의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추창민 감독)와 ‘관상’(2013, 한재림 감독)이 흥행에 성공한 것은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백성을 우선하는 정치와 거대한 파도 같은 운명 속의 개인 등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구중궁궐에 갇힌 채, 자기복제만 일삼는 궁중 사극은 더 이상 대중과 통할 수 없다. 장르적 관습과 공식에만 의존하며, 새로운 스타일과 실험을 외면하는 영화관계자들이 되새겨야할 대목이다.

정현목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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