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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DNA 미얀마, 한땐 한국 킬러였다

한국은 1971년 초대 박대통령컵 축구대회에서 ‘당대 최강’ 미얀마와 공동 우승했다. 두 나라 주장 김정남(왼쪽)과 윈몽의 표정이 상반된다. 아래 사진 왼쪽은 이듬해 대회 2연패 직후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와 장덕진 축구협회장에게 우승 메달을 받는 윈몽. 오른쪽은 미얀마와의 4강전에 나선 차범근. [사진 이재형 씨]

16일 오후 9시(한국시간) 태국 방콕에서 한국과 미얀마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1차전(JTBC 단독중계)이 열린다. 원래 미얀마의 홈 경기였지만 1차예선 당시 미얀마 홈 팬들이 난동을 일으켜 ‘제 3국 경기’로 치러진다.

 1960년대~70년대 중반까지 아시아 무대를 호령했던 미얀마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143위다. 한국은 58위다. 미얀마는 19세기에 세 차례 전쟁 끝에 영국의 식민지가 됐고, 1948년 독립하기까지 영국 축구의 선수 육성 시스템과 전술을 받아들여 경기력을 키웠다. 1960년대에는 당대 최고 골잡이로 명성을 떨친 윈몽을 비롯해 미드필더 에몽G와 에몽L 듀오, 수비수 몽몽틴 등 수준급 선수들이 즐비했다. 한국 축구가 미얀마와의 역대 A매치(25전13승7무5패)에서 당한 다섯 번의 패배가 모두 1966년부터 1973년 사이에 나왔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초창기 박대통령컵 축구선수권대회 사진에 당시 분위기가 녹아 있다. 1971년 5월 13일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초대 대회 결승전에서 한국은 버마(미얀마의 옛 국호)와 득점 없이 비겼다. 승부를 가리기 위해 이틀 후 재대결을 했지만 결과는 다시 0-0이었다. 우승 트로피를 함께 잡고 시상대에 선 양팀 주장의 표정은 엇갈렸다. 한국 주장 김정남(OB축구회장)의 얼굴은 잔뜩 굳었고, 버마 주장 윈몽은 활짝 웃었다. 김 회장은 “당시 버마는 아시아 최강이었다. 빠르고 정교한 플레이를 하는 팀이라 만날 때마다 긴장됐다”면서 “홈 팬들의 응원 속에 버마를 꺾을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나니 우승을 하고도 웃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은 박대통령컵 2회(1972년)와 3회(1973년)에 버마와 잇따라 4강에서 만났고 두 번 모두 0-1로 패해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버마전 무승 행진은 1973년 태국 킹스컵 준결승전(2-0)에서 비로소 깨졌다.

 1962년 독재자 네윈 장군이 정권을 장악한 이후 경제 몰락과 함께 서서히 내리막길로 접어든 미얀마 축구는 2000년대 들어 부활의 기지개를 켰다. 중국계 금융재벌 우 자오자오 미얀마축구협회장의 지원 아래 차근차근 실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2008년 미얀마프로축구리그(MNL)를 설립했고, 라도이코 아브라모비치(세르비아) A대표팀 감독을 비롯해 각급 대표팀에 실력 있는 외국인 지도자를 데려왔다. 지난해 19세 이하 아시아축구연맹(AFC) 선수권을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올해는 20세 이하 대표팀이 사상 최초로 뉴질랜드 U-20 FIFA월드컵 본선에 나섰다.

 미얀마 축구팬들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곱지 않다. 지난 2013년 동남아시안게임에서 우승에 도전한 미얀마는 당시 A대표팀을 이끌던 박성화(60) 감독의 판단 착오로 중도 탈락했다. 박 감독은 승점이 같을 경우 승자승을 우선하는 대회 규정을 모른 채 골득실만을 생각해 인도네시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 2진급을 기용했다가 0-1로 졌다. 인도네시아와 2승1무1패로 동률을 이룬 미얀마는 골득실에서 5골을 앞섰지만 승자승에서 밀려 4강 토너먼트에 오르지 못했다. 경기 직후 팬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박 감독은 사퇴 발표 후 도망치듯 귀국했다.

 박대통령컵 결승전 사진을 발굴해 제보한 축구자료수집가 이재형 씨는 미얀마한국대사관의 협조를 얻어 오는 8월 미얀마 현지에서 ‘44년 전의 추억’을 주제로 사진 전시회를 연다. 20여 점의 사진은 미얀마축구협회에 기증할 예정이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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