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삶의 향기] 겸손한 음악, 편안한 의자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지난주 한 학생한테서 기대하지 않았던 e메일을 받았다. 에리크 사티의 ‘짐노페디’를 알게 해주어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인생에 꼭 필요한 충고나 위로를 준 것도, 장학금이나 일자리를 준 것도 아닌데 음악 한 곡 소개해주고 그런 말을 듣다니. 그만큼 짐노페디가 좋았나 보다. 하긴 그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그 학생만도 아니다. 요즘 곳곳에서 사티의 음악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가난하게 살다가 90년 전에 홀로 세상을 떠난 사티. “나는 너무 늙은 세상에 너무 젊어서 왔던 것뿐이다”고 했던 그를 이제는 알아줄 수 있을 만큼 세상이 젊어진 것일까.

 작곡가들에게는 일종의 허세가 있다. 드러내고 싶은 욕심이 클수록 작품은 필요 이상으로 복잡해지고 표현은 과장되기 일쑤다. 이 방면에는 바그너나 말러 같은 독일 작곡가들이 단연 최고다. 사티는 그처럼 과도하게 감정을 표출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오히려 단순하고 절제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것은 예술가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명예와 인정을 포기해야 하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작곡가들이 세간의 주목을 받을 때 사티는 몽마르트르 카페의 피아니스트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나가야만 했다.

 잘나가는 작곡가일수록 대접받기 좋아하고, 사람들이 자기 작품을 집중해서 경청하길 원한다. 연주자가 자기 작품을 잘못 해석했다거나 청중이 시끄럽게 잡담을 했다는 것은, 예로부터 변하지 않는 작곡가들의 불평목록 1호다. 만약 자신의 음악이 오늘날 식당이나 엘리베이터, 심지어 탈의실 같은 곳에서까지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면 그들이 얼마나 분개했을까. 하지만 사티라면 오히려 반가워했을지 모른다. 음악이 있어야 할 자리는 스포트라이트가 작렬하는 무대가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러운 일상 속이라고 말했던 그이니까.

 요란하고 거창한 것을 선호하는 게 옛이야기만도 아니다. 오늘도 텔레비전을 켜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가수들은 화려한 무대와 자극적인 안무로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한다. 늘씬한 체형의 가수들이 선보이는 춤과 노래 솜씨는 가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자극이 강할수록 쉽게 식상해지는 법. 그럴수록 더 자극적인 노래를 만들려는 경쟁은 뜨겁기 그지없다. 그러다 자칫 종국에는 음악이 소음으로 전락하지는 않을까.

 그러니 환경음악이 주목을 받는 것일 게다. 현혹하거나 강요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고 가볍게 들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뇌의 알파파를 자극해서 건강에도 좋다니 그야말로 일석이조 아닌가. 그런 환경음악의 원조가 바로 사티다. 존 케이지한테 영향을 받은 브라이언 이노가 환경음악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지만 존 케이지에게 영감을 준 것이 사티였으니까. 그는 음악이 편안함과 온기를 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마치 집 안의 가구처럼. 이른바 ‘가구 음악’이다. 가구는 모름지기 자연스럽고 편안해야 한다. 아무리 비싼 가구라 해도 쓰기 불편하면 소용이 없고, 아무리 멋있어도 주위와 어울리지 않으면 그저 덩치 큰 애물단지일 뿐이다.

 사티의 음악은 그래서 영화나 광고의 배경으로 인기가 매우 많다. 몰입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듣기에도 아름다운 음악으로 이보다 더 나은 것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티의 음악에 익숙해진 사람이 적지 않다. 정작 본인으로서야 그것이 사티 작품인지 알 리가 없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가구 같은 음악이라니. 모 침대회사가 짐노페디를 광고음악으로 쓴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힘은 전율을 느낄 정도로 집요하고 때로 예리하다.

 메르스 때문에 온 나라가 패닉 상태다. 하루하루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 어이가 없을 정도로 허술한 늑장 대응, 황당한 변명과 생색내기 허세만 있을 뿐 믿을 만한 조치는 보이지 않는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화려하게 방을 장식할 값비싼 조각품이 아니다. 그저 방 한쪽 구석에서 지친 몸을 받아 줄 수 있는 편안한 의자일 뿐. 피곤한 우리를 쉬게 해 줄 우리 시대의 짐노페디가 절실하다.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