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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메르스에 패배한 박근혜 리더십

이철호
논설실장
신문의 사설은 편집국 속보보다 항상 한발 늦고 신중하다. 스무 명도 안 되는 논설위원으론 세상의 빠른 속도를 따라잡기 벅차다. 어쩔 수 없이 뒷북을 칠 때도 있다. 이에 비해 대통령은 막강한 비서실과 국가정보원·정보경찰을 거느린다. 산하 공무원만도 100만 명이 넘는다. 지난 주말 3주치 신문 사설을 뒤적여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판단은 신문 사설보다 나을 게 없었다. 메르스 심각성을 연거푸 오판했고, 대응 타이밍은 항상 두 발 이상 늦었다.

 ① 상황 오판=중앙일보가 처음 메르스를 사설로 다룬 건 5월 28일 오후다. 확진자 7명이 나온 날이다. 사설 제목은 ‘질병관리본부의 허술한 대응이 메르스 공포 키웠다’. 복지부 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5월 26일 국무회의 때 (대통령께) 처음 보고 드렸다”고 했다. 환자 발생 6일 뒤였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메르스의 ‘메’자도 꺼내지 않았다. 6월 1일 첫 사망자가 나오자 수석회의에서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고 했다. 그것도 국회법 개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한참 뒤였다.

 ② 잘못 꿴 첫 단추=신문은 웬만한 현안이 아니면 톱 사설로 잘 올리지 않는다. 중앙일보는 1일부터 톱 사설로 ‘메르스 3차감염 차단에 방역 능력 다 쏟아야’를 내보냈다. 3일엔 ‘정부의 총체적 무능이 메르스 비상사태 불렀다’를 톱 사설로 올렸다. 같은 날 한 신문은 ‘메르스 비상사태, 대통령은 어디 갔나’는 사설을 게재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첫 민관 합동회의를 열었지만 말투부터 문제였다. “~에 대해 알아보고”와 “~도 확실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유체이탈(?) 화법이 발목을 잡았다. 오히려 청와대 춘추관에 복지부 장관·질병관리센터장을 데리고 나와 “메르스와 싸우겠다. 질병관리센터장에게 전권을 맡기겠다”고 선언했었다면….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할 골든타임을 놓쳤다.

 ③ 괴담 단속?=사회 불안심리는 2일이 최고였다. SNS에서 ‘메르스’의 프리퀀시(빈도)가 39만여 건으로, 사고 당일의 세월호(20여만 건)보다 2배가량 많았다. 하지만 대통령은 괴담과의 전쟁에 집착했다. 만약 진보진영을 메르스 괴담 발원지로 여겼다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이미 5월 22일부터 여의도 증시에 ‘메르스 테마주’가 기승을 부렸다. 백신·마스크 종목에서 무더기 상한가가 쏟아지면서 돈 놓고 돈 먹는 판이 벌어졌다. 어떤 공권력도 돈독 오른 작전·투기세력의 무차별 바이러스 괴담을 막기 어렵다.

 ④ 분수령인 4일 밤=그날 밤 중앙일보 논설위원실은 12시가 다 돼서야 톱 사설을 고쳐 써서 출고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심야 브리핑에서 “메르스 의심 의사가 재건축 총회에서 1500명 이상 접촉했다”고 폭로한 때문이다. 간신히 마감한 사설 제목이 “메르스 위기 징후…국가 비상사태 검토해야”였다. 같은 시각 청와대는 어처구니없는 일에 골몰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국회법 개정’ 발언을 비난하는 전화를 언론사에 돌리기 바빴다. 박 대통령은 상황판단과 심리전, 정치싸움에서 모두 패배했다.

 ⑤ 대국민 사과가 우선=대통령은 사나운 민심 이반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분위기다. 방미를 취소하고 메르스 현장을 돌고 있다. 하지만 요즘 신문 보기가 끔찍하다. 온통 대통령을 호되게 비판하는 글로 넘쳐난다. 그렇다고 어제 청와대의 "동대문 상인들이 ‘대통령 최고’ ‘여기까지 와주셔서 고맙다’고 외쳤다”는 식의 홍보는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

한번 무너진 리더십은 복원이 쉽지 않다. 하지만 대통령의 위기는 국가의 최대 위기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수습이 급선무다. 그 첫 단추는 진정 어린 대국민 사과가 아닐까 싶다. 그곳이 춘추관이든, 아니면 국회이든 대통령이 모든 국무위원들과 함께 “메르스 잡기에 실패해 죄송하다”며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우리 사회의 기대보다 훨씬 강도 높은, 한발 앞선 사과만이 수습의 지름길이 아닐까…. 지금 메르스보다 돌아선 민심이 더 무섭다.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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