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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방미 취소하면 외교 리스크 더 클 것”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14~19일)를 코앞에 두고 청와대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번지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자리를 비우는 게 적절한지를 두고서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9일 브리핑에서 방미 일정 변경을 묻는 기자들에게 “특별한 말씀을 전해드릴 게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메르스 확산세에 따라 일정 조정 등 여러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보건 당국의 예측, 변동사항이 생길 경우 미국에 알려줘야 하는 최소한의 시점 등을 감안하면 내일(10일) 정도까진 결론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취소보다는 일정 단축 쪽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고 한다. 실무선에서는 방미 일정 중 생략이 가능한 행사를 검토하고 있다.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16일) 등은 그대로 소화하고 휴스턴 방문(17~18일)을 취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새누리당에선 계획대로 방미를 진행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외교부 차관을 지낸 심윤조 의원은 “일정 단축 등은 고민해 볼 수 있지만 순방 자체를 취소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야당에선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럴 필요까지 있겠느냐는 주장이 혼재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매일 ‘오늘이 고비’라고 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편히 다녀오실 수 있겠는가”라며 “국민이 정부 잘못으로 불안해하고 있으니 취소나 연기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면 이종걸 원내대표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최고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는 정말 중요하다”며 “대통령이 고통을 함께하겠다는 진정한 마음을 국민에게 보여준다면 미국에 가시나 여기에 계시나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고 했다.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취소할 경우 생길 국가적 타격이 더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다자가 아닌 양자회담인, 워싱턴에서의 정상회담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이번에 연기하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임기 내에 기회가 더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핵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실험 등 북한 문제도 시급한 어젠다이고, 일·중 정상도 모두 워싱턴을 방문하는 상황에서 동맹국 한국의 존재감과 역할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고려대 김성한(전 외교부 2차관) 국제대학원 교수는 “방미를 취소하려면 누가 봐도 합리적으로 설득할 조건이 돼야 하는데, 통제 불가나 전국적 유행 수준으로 상황이 악화되지 않는 이상 설득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외에 비춰질 한국의 이미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강대 김영수(정치외교학) 교수는 “대통령의 외국 방문은 신뢰를 바탕으로, 엄청난 준비를 해야 하는 국가 간의 약속”이라며 “한·미 정상회담 트랙과 메르스 트랙을 분리해 대통령은 미국과 약속을 지키고, 총리가 대통령을 대행해 메르스 상황을 수습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제언했다.

아산정책연구원 봉영식 선임연구원도 “대통령이 방미 일정을 취소하면서까지 국내에 있는다면 한국의 메르스 상황이 실제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대외적으로 줄 수 있다”며 “이는 정부가 스스로 심각한 위기상황이란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외적인 외교 리스크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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