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세상읽기] 메르스 공포, ‘각자도생’은 공멸이다

기자
김종윤 사진 김종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종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그의 이름은 5번 환자(50)다.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365 열린의원’의 의사다. 중동호흡기증후군 (MERS·메르스) 1번 환자(68)를 진료하다 감염됐다. 2차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진료를 중단했다. 열이 나자 바로 지역 보건소에 연락했다. 병원에 격리돼 치료한 끝에 완치돼 8일 퇴원했다. 온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은 메르스 쇼크. 환자가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국민은 가슴 졸이고 있다. 이때 나온 5번 환자의 퇴원의 변은 답답한 가슴을 뚫어주는 한 줄기 빛과 같았다.

 “병원 명단 공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병원 운영은 운영이고, (명단 공개는) 꼭 해야 한다. 메르스가 진정된다면 (병원 운영은) 다시 회복될 거라고 본다.”

 자신이 운영하는 의원에 메르스 환자가 다녀갔고, 그 환자를 진찰했던 자신은 메르스에 감염됐다. 그 병원이 메르스의 온상으로 비칠 건 자명하다. 앞으로 환자가 찾아올지도 의문이다. 그래도 의사는 의연했다. 감추고 숨기다 화를 키운 정책 당국자들과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밥벌이보다 공동체의 안위를 먼저 찾았다. 허둥지둥, 갈팡질팡 속에서 메르스의 공포가 극단으로 치달으려던 차에 본분을 지킨 그의 한마디는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위로로 다가왔다.

 국가란 무엇인가.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사회계약론을 앞세우면 국가란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보호하는 존재다. 국가는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을 초월한다. 그래서 국민은 국가를 따른다. 국가를 이끄는 그 누군가를 믿을 수밖에 없다.

 이런 믿음, 메르스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산산조각났다. 위기 상황에서 드러난 ‘국가를 이끄는 그들’의 한심한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건 당연했다. 어느 누구도 나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이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나섰다. 이건 국가의 수치다. 오죽했으면 메르스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애플리케이션(앱)과 인터넷 카페가 줄줄이 생겼을까. 정부가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거나 경유한 병원을 공개하지 않자 네티즌들은 해당 병원 지도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공유하기도 했다. 뒤늦게 예방책이라고 내놓은 ‘낙타 접촉 금지’에 대해 ‘당분간 출퇴근 때 낙타를 타지 않겠다’는 비아냥이 터져나왔다.

 그 심정, 이해한다. 우리가 국가에 기대하는 건 도덕을 확립하고 정의를 수립하라는 거창한 가치가 아니다. 안전하게 살 수 있으면 된다는 소박한 바람뿐이다. 이런 소망이 무너졌다. 스스로 살 방법을 찾아야 하는 국민이 불쌍하다. 그럼에도 각자도생은 위험하다.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나만 무사하면 되지’라는 방심과 이기주의는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마음 속 악성 바이러스다.

 이 민족엔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뼛속 깊이 박혀 있다. ‘우리나라’이지 ‘내 나라’가 아니다. ‘우리 가족’ ‘우리 사회’ ‘우리 학교’라는 말이 ‘우리 생활’에 배어 있을 정도다.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니다. 힘을 합칠 줄 안다. 이미 그런 저력이 나타나고 있다. 솔선수범해 자가 격리하는 동료가 늘고, 예방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이웃들이 있다. 우리가 좀 더 남을 배려하고, 시민의식을 지킨다면 메르스 공포를 분명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 기회에 그동안 당연시했던 잘못된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의식 개선 작업이다. 우선 병문안 문화다. 아픈 사람을 찾아가 위로하는 체면치레 문화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 아픔을 함께하고 쾌유를 비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런 병문안은 전염병이 퍼지는 고속전철망을 까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병문안 안 간다고 몹쓸 사람 되는 건 아니다.

 감염관리에 철저해야 하는 건 병원의 몫이다. 한국의 의료기술은 세계 일류라고 하지만 감염관리는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한다. 여기에 직접 연관된 게 간호문화다. 가족(또는 간병인)이 환자 옆을 지키며 24시간 간호하는 모습이 헌신적인 가족애의 상징이 돼서는 안 된다. 이번 메르스 쇼크의 원인은 바이러스의 돌연변이가 아니다. 병원 내 감염이 결정적이었다. 환자 곁을 지킨 가족이 감염의 희생양이 됐다.

 결국 이 문제는 의료복지체제의 개편으로 이어져야 한다. 병실에서 환자를 가족이 돌볼 수밖에 없는 의료복지 현실에서는 제2, 제3의 메르스 쇼크는 불가피하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2003년의 중증호흡기증후군(SARS·사스) 파동과 2009년의 신종플루 유행 때 한국이 예방 모범국이 된 것은 환자를 입원 전 단계에서 걸렀기 때문이다. 만약 환자가 감염된지 모르고 병원을 돌아다녔다면 원내 감염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족 대신 전문 간호 인력이 환자를 돌보는 시스템 구축은 필수다. 국민의 건강·생명과 관련한 문제다. 이를 위한 의료보험 체계 개편은 반드시 필요하다. 메르스 쇼크는 이번 주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각자도생보다는 공동체 시민의식으로 똘똘 뭉치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 한민족은 저력이 있다.

김종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