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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

김 진
논설위원
어느 사회나 공포의 습격을 받는다. 공포 대처능력도 중요한 국가 경쟁력이다. 이 분야에서 한국은 많이 뒤처진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유명한 이 말을 사람들은 자식에게 즐겨 가르친다. 그런데 정작 사회 전체로는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

 메르스 사태는 한국 사회의 부족한 공포 처리능력을 다시 보여주었다. 메르스는 이미 3년이 됐다. 세계 전문가는 정체를 잘 파악하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건 이 병이 병원처럼 제한된 공간에서 주로 전염된다는 것이다. 공기감염이나 지역사회 확산은 없다는 게 주류 학계의 판단이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병이 돌아도 일상생활을 그대로 유지할 것을 권고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과민하게 반응했다. 과도한 불안에 사로잡혀 일상(日常)을 과격하게 변경했다. 수많은 학교가 문을 닫고 모임들이 취소됐다. 사람들은 대중 활동을 피하고 소비를 줄였다. 그 결과 한국 사회는 쪼그라들었다. 스스로 엄청난 재난이 터진 것처럼 행동하니 외국이 한국을 꺼린다. 관광객이 줄고 교류나 행사가 취소됐다.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 몫이다. 이런 일들은 현명한 것일까.

 일이 이렇게 된 데는 우선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이 크다. 경제처럼 국가 운영에도 심리가 중요하다. 그래서 홍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심리전에서 고전했다. 메르스 사태는 일종의 전쟁이다. 최고사령관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자신감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자신감은 과학에서 나온다. 과학적으로 메르스는 그다지 공포스러운 병이 아니므로 대통령이 국민에게 설명하기만 하면 됐다.

 대통령 대신 보건복지부 장관이 했지 않느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차원이 다르다. 많은 국민은 ‘세월호 사태 청와대 7시간’을 기억한다. 게다가 이미 대통령의 소통 부족은 국가적 현안이 돼 있다. 지난해 그는 기자회견을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 세월호 때도 기자회견은 없었다. 어느덧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두려워하는 대통령’이 돼 있다. 그런데 메르스 사태에도 소통이 부족하니 국민의 불안이 커진 것이다.

 이번에 대통령은 부족했다. 그렇다면 국민은 어떨까. 정치인·언론·지식인 그리고 일반 시민은 공포에 제대로 대처했나. 아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공포 처리능력을 별로 갖지 못했다. 대통령만큼이나 이것도 심각한 문제다. 중요한 건 이런 공포증후군이 한국 사회에 체질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과학보다 근거 없는 대중 정서에 쉽게 매달린다.

 1년에 세계에서 결핵으로 100만 명이 넘게 죽는다. 한국에서도 2000여 명이 죽는다. 결핵은 공기로 전염된다. 도처에 결핵 환자가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고 극장에 간다. 말라리아로는 세계에서 58만 명(2013년)이 죽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프리카로 간다. 위험이 있어도 움직이는 건 결핵과 말라리아의 정체를 알기 때문이다. 메르스도 정체가 이미 알려졌으므로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한국인은 지나치게 떨었다.

 공포와 싸우는 데에 미국인은 인류를 선도했다. 죽음이 두려워도 그들은 맞섰다. 제1·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참전하지 않았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연인원 179만 명의 미군이 참전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로 온 것이다. 약 3만7000명이 죽었다. 사망확률이 50분의 1이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때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인간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1억분의 1이었다. 이런 확률을 가지고 한국인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막고 정부를 때려 부쉈다.

 광우병 사태는 한국인이 근거 없는 소문에 패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근거 없는 일’에 쉽게 흔들린다. 세월호 사태 때 생존 가능성, 사고 원인, 구조 방법을 둘러싸고 헛소문이 난무했다. 정윤회 사건 때도 그랬다. 많은 이가 소문에 춤을 추었다. 소문엔 민감하면서 정작 북한의 핵이나 인권 같은 실체엔 둔감하다. 이상한 사회다.

 한국 사회가 과학에 더 의존하면 메르스 피해는 훨씬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정부가 미운 것과는 다른 것이다. 이 나라가 정부만의 나라인가. 인정하기 싫은 일이지만 한국 사회는 과장된 두려움에 패하고 있다. 1933년 미국은 대공황에 빠져있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직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 한국인의 두려움증후군···이는 언제 완치될 것인가.

김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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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