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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음식] 누가 상갓집 메뉴라더냐, 왕년엔 궁궐서 놀았노라

육개장, 영화 '식객' 중에서

서병호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한식당 ‘온달’ 조리장이 재연한 영화 ‘식객’의 육개장. 서 조리장은 “쇠고기·고사리·토란대 등을 각각 밑간해 뒀다 끓이면 재료 각각의 맛이 더 잘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김경록 기자]

江南通新이 ‘이야기가 있는 음식’을 연재합니다.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요리와 이 요리의 역사, 얽힌 이야기 등을 소개합니다. 이번 주는 영화 ‘식객’의 육개장입니다.

무더위에 쉽게 지치고 입맛을 잃기 쉬운 여름입니다. 그래서 여름엔 영양이 풍부한 보양식을 챙기게 되는데요. 매콤하면서도 진한 국물로 기운을 북돋워 주는 육개장은 삼계탕과 더불어 대표적인 보양식입니다. 쇠고기와 채소를 푹 삶아낸 빨간 국물에 밥 한 그릇 말아먹으면 빈속뿐 아니라 마음까지 든든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죠. 영화 ‘식객’은 쇠고기·토란대·고사리 등 육개장에 들어있는 식재료에 담긴 의미들을 소개합니다. 묵묵히 밭을 가는 소는 조선의 민초요, 토란대는 외세의 시련에 굴하지 않는 정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 육개장을 마주하면 단순히 음식이 아닌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대령숙수의 적통을 찾기 위한 요리대회에 참가한 성찬(왼쪽)과 봉주. 두 사람이 마지막 과제인 육개장을 만들고 있다.


#1 대령숙수의 적통을 찾기 위한 요리 대회의 마지막 과제는 대령숙수가 순종에게 올린 쇠고기탕을 재연해 내는 것이다. 성찬과 오봉주는 각각 자신만의 조리법대로 쇠고기탕을 끓여낸다. 성찬은 붉은 육개장을, 봉주는 맑은 쇠고기탕을 올린다. 후지와라를 제외한 다른 심사위원은 시장통에서 파는 국밥 같은 성찬의 육개장을 보며 비웃지만 후지와라는 성찬이 만든 쇠고깃국을 그릇 채 들이마신다. 이 후지와라의 모습에 순종이 육개장을 마시며 우는 모습과 오버랩 된다.

 후지와라: 이제야 알았습니다. 순종임금께서 왜 눈물을 보이셨는지 말입니다. 이 쇠고기탕에는 조선의 모든 것이 들어있습니다. 평생 묵묵히 밭을 가는 소는 조선의 민초요, 고추기름엔 맵고 강한 조선인의 기세가, 어떤 병충해도 이겨내는 토란대에는 외세의 시련에도 굴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고사리에는 들풀처럼 번지는 생명력이 담겨 있습니다. 대령숙수가 임금께 올린 것은 단순한 쇠고기탕이 아니었습니다. 나라를 잃고 상심한 임금에게 대령숙수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조선의 정신을 아뢰었던 겁니다. 순종임금은 대령숙수의 그 마음을 읽은 것이지요. 그래서 눈물을 흘렸던 겁니다.
심사위원1: 하하하. 꿈보다 해몽이군요. 평생 궁에서 최고 음식만 먹어온 순종임금이 시장에서나 파는 싸구려 음식에 감동받았을 리는 없잖소.
심사위원2: 그럼 대령숙수가 만들어 낸 게 바로 그거였다는 걸 증명할 수 있습니까.
후지와라: 제 조부께서는 그때 드셨던 쇠고기탕을 육개장이라고 했습니다. 이 탕 이름이 뭐죠?
심사위원1: 육개장 맞습니다.
사회자: 그럼 오봉주씨가 만든 탕은 어떻습니까. 평가해보시죠.
후지와라: 이 요리도 뛰어난 맛이었지만 절대 대령숙수의 음식이 될 수 없습니다.
오봉주: 빠가야로(혼잣말)
후지와라: 유부와 간장을 써서 맛을 연하게 한 것은 저희 일본인의 입맛이지, 조선인의 입맛은 아닙니다. 한편으로 놀라기도 했습니다. 저희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쇠고기탕의 맛을 어떻게 똑같이 재연할 수 있었는지. 마치 저희 어머니가 다시 살아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봉주: 뭐야.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후지와라: (봉주의 난동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얘기를 꿋꿋하게 이어간다.) 그 요리법을 어떻게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그 요리법은 가르쳐 준 선친께서는 아마도 그 요리법을 감추고 싶어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요리는 한식에 일식을 가미한 내선일체의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대령숙수의 진정한 후계자는 성찬씨입니다. 축하합니다. 이 칼의 주인은 당신(성찬)입니다. (성찬은 대령숙수의 칼을 들어 보인다. 성찬을 축하하는 음악이 나오고 하늘에서 꽃가루가 떨어진다.)


진수에게 대접하기 위해 직접 담근 장아찌·김치들을 살펴보는 성찬.


조선시대 백성은 개고기, 양반은 쇠고기 넣고 끓여 먹어
재료에 비해 평가절하되다 한식 붐과 함께 전문점 생겨
“쇠고기 가장 중요…밑간 해뒀다 끓여야 맛이 골고루 배”



영화 ‘식객’(食客)은 조선시대 최고 요리사인 대령숙수의 적통을 놓고 성찬(김강우)과 봉주(임원희)의 대결 과정을 담았다. 허영만 화백의 동명 만화 『식객』이 원작이다.다. 100만 부 이상 팔릴 만큼 인기를 끌었던 만화의 에피소드는 2시간 영화 안에 잘 녹여졌고 2007년 개봉 당시 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흑백 만화 속 복어·꿩·닭 등 다양한 식재료와 요리는 영화로 옮겨와 고운 색을 입고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허 화백은 영화 개봉 당시 한 인터뷰에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자연스럽게 묶었고 전개 속도도 빨라서 어디에 내놔도 좋을 영화”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허 화백은 영화에 카메오 출연도 했다. 영화 말미 여자주인공 진수(이하나)의 엄마 식당 손님으로 등장해 웃음을 줬다. 만화와 영화의 잇따른 성공에 힘입어 2008년엔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됐다.

 영화에는 황복회·육회·겉절이·순두부찌개·깻잎장아찌 등 다양한 요리가 나와 입맛을 돋우지만 가장 인상적인 요리는 단연 육개장이다. 최고 요리사를 결정하는 마지막 과제이자, 성찬에게는 할아버지가 물려준 요리이며 동시에 할아버지를 떠나 보내며 만든 요리이기 때문이다. 나라를 잃은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의 눈물이 담겨있기도 하다. 대령숙수의 쇠고기탕을 재연하라는 과제에 할아버지의 육개장을 끓여낸 성찬을 보며 심사위원들은 비웃는다. 성찬은 “남들에겐 그냥 평범한 음식이지만 제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남긴 소중한 음식”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영화에서 많은 이들을 울린 장면. 성찬이 동생처럼 기르던 소는 제발로 도살장을 향해 걸어가다 잠시 고개를 돌려 자신을 길러준 성찬을 바라본다.
 영화에서처럼 육개장은 조선시대부터 먹어온 음식이다. 여러 문헌에 남은 기록에 따르면 개와 채소를 넣고 끓인 개장(국)에서 유래했다. 1940년대 출간된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 따르면 육개장은 개고기가 맞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쇠고기를 넣어 개장국 비슷하게 끓인 국이라고 했다. 이소영 궁중음식연구원 자료실장은 “조선상식문답뿐 아니라 다른 기록에서도 육개장은 개를 넣고 끓인 개장국에서 온 것이라는 기록이 공통적이다”고 설명했다. 다만 농경사회였던 조선시대에서 소를 함부로 도축할 수 없었기 때문에 궁이나 양반들만 먹던 귀한 음식이었다. 그나마 쇠고기보다 개고기를 많이 먹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며 일본·미군들이 개고기를 먹는 우리의 식문화를 혐오스럽게 여기며 쇠고기를 넣고 끓이는 지금의 조리법이 보편화한 것이다. 처음의 육개장은 지금처럼 빨간 국물이 아니었다. 18세기 이후 고춧가루가 널리 쓰이면서 육개장도 자연스럽게 빨갛게 변한 것으로 보인다.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 음식이지만 만들 때 정성을 많이 필요로 하고 재료비에 비해 육개장을 고급 음식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한동안 육개장은 평가절하된 측면이 있다. 상갓집 메뉴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2~3년 새 한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육대장’ ‘파육장’ ‘이화수’ ‘옛날육개장’‘시골촌’ 같은 육개장 전문점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칼칼하고 얼큰한 고기와 각종 채소가 들어있어 건강식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점도 인기를 부추기고 있다.

 육개장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쇠고기다. 보통은 양지머리를 사용한다. 영화에서 소삼겹이라고 표현한 부위 역시 양지머리의 한 부위다. 기름기가 많아 식감이 부드럽지만 기름기를 적당히 제거한 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양지머리는 3시간 정도 푹 삶아 육수를 낸 후 결대로 찢어 넣는다. 다만 육수는 식힌 후 기름기를 제거해야 국물이 깔끔하다. 고사리와 토란대 역시 중요하다. 서병호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한식당 온달의 조리장은 “고사리는 가늘고 연한 갈색을 띠는 것이, 토란대는 상처 없이 매끈한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숙주는 싹이 피지 않고 꼬리 부분이 탱글탱글한 것을 고른다. 육개장의 농도는 고추기름으로 조절한다. 고추기름을 많이 넣을수록 국물이 진하고 맵다. 과거에는 쇠기름을 이용해 고추기름을 만들었다. 약한 불에 기름과 고춧가루를 넣고 볶아 만든다. 영화에서 성찬이 지인에게 육개장 재료 준비를 부탁하며 쇠기름을 당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엔 건강을 생각하는 분위기 때문에 일반 기름을 사용한다. 서 조리장은 “고기에 육수를 넣고 한 번에 끓이는 대신 재료를 국간장·참기름·다진마늘 등으로 무쳐 밑간을 해뒀다 끓이면 국물이 분리되지 않고 맛이 골고루 배 더 맛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파를 많이 넣으면 단맛이 나고 국물이 걸쭉해진다. 다만 대파와 숙주는 오래 끓이지 않고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밑간해 먹기 전에 넣어야 아삭한 식감을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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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이야기
시어머니의 육개장 비법은


60여 년 전 이화여대를 졸업하신 저희 시어머니는 요리 솜씨 또한 출중하세요. 여든을 앞둔 요즘도 직접 요리를 즐겨 하실 정도로 건강하시고요. 특히 육개장을 잘 끓이세요. 제 남편을 비롯해 아들 삼형제 모두 시어머니의 육개장만 입에 대고 다른 것은 육개장이 아니라며 거부합니다. 시어머니의 육개장은 걸쭉하고 기름이 떠 있는 여느 육개장과 달리 국물이 맑고 담백하고 맵지 않습니다. 질 좋은 양지를 정성껏 우려낸 후 무를 자박자박 썰어 넣습니다. 명절이나 제사, 생신 때면 빠지지 않고 상에 올리는 메뉴에요. 만약 상에 육개장이 없으면 아들 셋뿐 아니라 며느리가 서운해할 정도로 깊고 시원한 맛입니다. 남편은 늘 저에게 어머니 육개장 비법을 전수받으라며 잔소리하지만 저는 그냥 시어머니가 오래도록 살아계셔서 이 육개장을 끓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건강하세요!
김은주(47·잠실동)



▶서울의 육개장 맛집

서울에서 유명한 육개장 맛집 3곳을 소개합니다. 이윤화 레스토랑 가이드북 『다이어리알』 대표, 허성구 더 플라자 총주방장, 천덕상 롯데호텔서울 무궁화 조리장의 추천을 받아 중복되는 3곳을 추렸습니다. 이외에도 우래옥(주교동)이 선정되었으나 당분간 육개장을 판매하지 않아 목록에서 제외했습니다.


[동경전통육개장]

“처음엔 고기와 파밖에 없는 육개장에 의아하지만
국물 한 모금 먹고 나면 깊은 맛에 만족한다”


○ 특징: 1989년 문을 연 이후 강남에서 30년 넘게 육개장을 팔아온 오래된 맛집이다. 각종 채소를 넣은 일반적인 육개장과 달리 대파와 양지·사태만으로 끓여낸다. 8시간 동안 푹 고아낸 사골육수에 대파를 가득 넣고 끓여 국물 맛이 깊으면서도 걸쭉하다.
○ 가격: 전통육개장 7000원, 전통육개장(특) 9000원
○ 영업시간: 오전 7시~오후 9시(설·추석 명절 당일만 휴무)
○ 전화번호: 02-566-9779
○ 주소: 강남구 테헤란로 7길 22(역삼동 635-4)
○ 주차: 불가


[문배동 육칼]

“식사 시간이면 가게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선다
걸쭉한 국물과 탱글한 칼국수 면발이 잘 어울린다”


○ 특징: 80년 삼각지 육교 아래 문을 연 작은 식당. 육개장에 삶은 칼국수면이 함께 나오는 메뉴 ‘육칼’로 유명해졌다. 다른 육개장에 비해 매운 편이다. 삼성동·도화동·여의도에 분점이 있다. 면과 밥을 제외한 육개장만 포장 판매한다.
○ 가격: 육개장·육칼(육개장+칼국수) 8000원씩
○ 영업시간: 오전 9시30분~오후 8시30분(토요일은 오후 5시까지, 일요일 휴무)
○ 전화번호: 02-713-6204
○ 주소: 용산구 백범로 90길 5(문배동 34-1)
○ 주차: 불가


[한일관]

“적당히 매운 맛의 육개장이다
불고기·갈비탕 등 다른 메뉴도 함께 먹을 수 있다”


○ 특징: 1939년 문을 연 서울의 대표적인 한식당이다. 진하고 매운 고기 육수에 고기가 풍성하게 들어있다. 육개장은 냉면·갈비탕·불고기 못지 않게 인기다. 본점은 2008년 신사동으로 이전했다. 영등포 타임스퀘어와 을지로 페럼타워, 종로 경복궁사거리, 서울역에 지점이 있다.
○가격: 육개장 1만2000원
○ 영업 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9시30분(명절 당일 휴무)
○ 전화번호: 1577-9963
○ 주소: 강남구 압구정로 38길 14(강남구 신사동 619-4)
○ 주차: 발레파킹(2000원)

글=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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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