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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지 기자의 한끼라도] 한때 '악마의 식재료'였던 버터

버터는 위험한 식재료입니다. 그 자체로는 맛이 밋밋한 노란 지방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한번 길들여지면 풍미를 잊기 어렵죠. 프랑스 사람들은 요리를 하다가 맛이 없으면 “버터를 더 많이 넣으라”는 극단의 처방을 내린다고 합니다. 15세기 유럽의 귀족들은 교황청에 거금을 내고 금식 기간 동안 버터를 먹을 수 있는 특혜를 받아 서민의 분노를 샀지요. 프랑스 역사학자 장 루이 플랑드랭은 “종교개혁 이후 로마카톨릭 신앙을 버린 국가는 버터를 섭취하는 국가”라며 종교도 버리게 만든 극악한 식재료라 단정지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 버터의 지위는 달라졌습니다. 프랑스 최고급 와인ㆍ치즈와 어깨를 견주는 특산품이 됐죠. 프랑스 최고급 식재료라 평가 받는 버터가 한때는 요리사뿐 아니라 종교인ㆍ철학자를 고민하게 만든 악마의 식재료였던 셈이네요.

집에 있는 냉장고에는 두 가지 버터가 있습니다. 하나는 뉴질랜드 앵커 버터입니다. 스콘처럼 버터가 많이 들어가는 빵을 만들 때 사용합니다. 다른 하나는 요리용ㆍ토스트용입니다. 프랑스 서부 샤렁트-푸아투(Charentes-Poitou) 지역의 에쉬레 버터와 북서부 이즈니 지역의 이즈니(d'Isigny) 버터를 번갈아 사용합니다. 충주 사과, 청송 사과 맛이 다르듯 버터도 지역과 생산자에 따라 풍미가 다릅니다. 품귀 현상을 일으킨 ‘허니버터칩’도 프랑스산 버터를 넣어 향을 냈다지요.

버터는 그 자체로는 향이 없지만 열에 닿는 순간 빠른 속도로 온 집안을 장악합니다. 풍미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흰 빵에 발라먹는 것 외에도 이런 요리를 시도해보세요. 버터의 품질이 맛을 좌우하는 두 가지 음식을 소개합니다.


아, 악마의 비주얼이다.


팬을 약한 불로 예열하고 버터 한 조각을 던져 넣습니다. 달지 않은 바게트를 올리고 버터로 노랗게 젖어들 때까지 굽습니다. 빵 위에는 냉장고에 남아 있는 재료를 적당히 다지고 버무려 얹습니다. 다진 토마토와 양송이 버섯, 양파를 올리브 오일과 섞으면 휼륭한 ‘양념’이 되죠.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칵테일 새우를 함께 다져 넣어도 이탈리아 식당의 전채 메뉴가 부럽지 않습니다.




다른 팬은 약하게 달군 뒤 버터와 으깬 마늘을 넣고 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천천히, 오래 볶습니다. 버터는 쉽게 타버리니까 불의 강도를 섬세하게 조절해주세요. 여기에 화이트 와인을 붓고 끓입니다. 다음은 해감한 바지락ㆍ모시조개ㆍ명주조개를 넣어 입이 벌어질 때까지만 기다립니다. 조개를 고루 섞어도 좋아요. 샐러리나 쑥갓을 좀 넣으면 더 향긋해지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면 완성입니다. 큰 힘들이지 않고 대단한 요리를 한 것처럼 생색내기에 좋습니다. 먹는 사람에게는 비밀로 해주세요.

해산물이 주가 되는 요리라 가볍고 청량한 화이트 와인이 어울립니다.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는 ‘후덥지근한 초여름에는 소비뇽 블랑’ 이라는 공식이 있죠. 소비뇽 블랑은 뉴질랜드 말보로 지역에서 유독 잘 만드는 청포도 품종입니다. 구아바ㆍ패션프루트 같은 열대과일 향으로 가득한 ‘클라우디 베이’를 차갑게 칠링해서 드세요. 다른 술도 따게 만드는 ‘악마의 궁합’입니다.

강남통신 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이영지 기자의 한끼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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