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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할머니 리더십’과 ‘엄마 리더십’

신예리
JTBC 국제부장
밤샘토론 앵커
못생긴 여자들이나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게 대개의 남자들 주장이다. 예쁜 여자들은 지금 이대로도 아쉬울 게 없으니 굳이 여권 을 소리 높여 외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이런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린 게 ‘현존하는 여성운동계의 맏언니’ 글로리아 스타이넘이다. 얼마 전 남북 통일에 앞장서겠다며 전 세계 여성과 손에 손잡고 비무장지대를 걸어서 넘어 숱한 화제를 뿌렸던 바로 그이다. 소싯적엔 상당한 미모였던 그녀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연애를 일삼고, 심지어 말년엔 돈 많은 남자와 결혼에까지 골인해 페미니스트에 대한 세상의 통념을 정면으로 거슬렀다.



 어느 쪽이냐 하면 난 페미니스트라기보단 휴머니스트다. 장애나 인종·외모·성별…. 그 어떤 이유로든 차별은 금물이라고 믿는다. 여자들을 우대하자거나 남자들을 적으로 돌리겠다는 주장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아마 스타이넘을 포함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분들도 대부분 나와 비슷한 입장일 텐데 요즘 한국 사회에선 남녀 간 갈등이 이념 갈등을 뺨치는 수준이다. 이슬람국가(IS) 대원이 되겠다며 시리아로 떠난 김군이 “페미니스트가 싫어서”란 핑계를 댔을 정도다. 남성·여성은 물론 제3의 성까지 존중하는 게 글로벌 트렌드인 마당에 한없이 부질없는 싸움이 아닌가 싶다.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을 강요하는 시대착오적 차별 역시 여전하다. 여자들뿐 아니라 남자들도 ‘상남자 콤플렉스’에 은근히 시달린단다. 남자는 평생 세 번 울어야 한다는 속설만 해도 그렇다. 드라마 속 슬픈 대목마다 코끝이 시큰하고 눈가도 촉촉해지는 남다른 감수성의 소유자들이 왜 없겠나. 덤덤하던 남자들마저 나이가 들수록 호르몬의 장난질로 눈물이 헤퍼지기도 한다. “울면 안 돼”란 윽박 대신 “울어도 괜찮아”라며 토닥토닥해 줘야 할 일 아닐까.



 여성의 경우 한술 더 떠 “여자는 무조건 예뻐야 한다”와 “예쁜 여자는 일을 잘 못할 것”이란 이중의 선입견과 싸워야 한다. 전자야 다들 공감하실 테니 후자 얘길 좀 더 보태자면 특히 관리직을 뽑을 때 여성의 매력적인 외모는 오히려 감점요인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나와 있다. 여성성이 두드러지는 여성은 말단직원은 몰라도 조직의 리더가 되기엔 부적합하다고 보는 거다.



 2008년 미국 대선에 후보로 나선 힐러리 클린턴이 버락 오바마보다 더 전투적인 말과 행동으로 무장했던 건 그 때문이다. 가슴골이 드러난 옷차림과 두꺼운 발목만 물고 늘어지는 반대파와 맞서 싸우기 위해 여성성을 최대한 배제하는 전략을 택한 거다. 하지만 남성보다 더 남성적인 모습을 보인 힐러리의 선택은 득보단 실이 컸다. 전임 대통령인 조지 W 부시의 일방적인 통치 방식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은 변화된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리더십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반면 오바마는 유세에서 유권자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고 다정하게 귀 기울이며 부드러운 면모를 과시했다. 힐러리를 좀 더 세게 비판하라는 참모들의 조언도 끝내 거부했다. 공감하고 배려하는 이른바 여성적 리더십을 선보인 거다.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 후보’는 힐러리가 아니라 오바마란 평가가 나왔을 정도다.



 뼈아픈 실패를 곱씹고 내년 대선에 재도전하는 힐러리는 요즘 180도 달라졌다. 입만 열면 ‘국민 할머니’를 자처한다. ‘할머니 리더십’으로 평범한 미국 가정들을 보살피겠다는 거다. 힐러리의 변신을 보며 좀처럼 변하지 않는 우리 대통령이 걱정스럽다. 임기 내내 누군가와 혹은 무언가와 각을 잡고 싸우는 모습 말이다. 이번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도 국회법을 둘러싼 정치권과의 싸움에 골몰하다 정작 국민 챙기는 데는 소홀했던 탓 아닌가. 할머니까진 몰라도 ‘엄마 리더십’만 발휘했어도 일이 이 지경이 됐을 리 만무하다.



 힐러리가 그랬듯 험한 정치판에서 여자라고 얕잡아 보일까 봐 더 센 척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그만 됐다. 지금은 “나를 따르라”며 앞장서서 채찍질하는 남성적 리더십보단 “함께 가자”며 곁에서 다독이는 여성적 리더십을 요구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결코 여자 대통령이라서 하는 성차별적 주문이 아니다. 남자든 여자든 그저 국민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리는 대통령을 갖고 싶을 뿐이다.



신예리 JTBC 국제부장 밤샘토론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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