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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초일류 오케스트라 마린스키의 지각 황제

러시아 출신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62). 마린스키 극장 총감독과 예술감독, 런던심포니 상임을 맡고 있다. [중앙포토]
그 날의 리허설은 저녁 일곱시였다. 로테르담은 내가 사는 하노버에서 기차를 두번 정도 갈아타고 다섯 시간 남짓이면 도착한다. 아침 열시경에 여유롭게 집을 나서 기차를 탔다. 기차 안에서 세상 모르고 자다 잠시 깼는데 시계를 보니 벌써 한 시가 돼 간다. 이제 슬슬 국경을 넘겠구나…. 그런데 몇 분 후 느닷없이 안내방송이 나온다. “사정이 생겨 오늘 네덜란드 국경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 다들 일단 내리세요~.” 뭐라고?

멈춰선 기차를 끌고 갈 방도는 없으니 일단 내렸는데, 큰일이다. 이러다 늦는 건 아니겠지? 난 절대로 늦어선 안 되었다. 이 리허설은 조금 늦으니 양해를 바란다고 싹싹 빌면 대충 넘어가 줄 소규모 실내악 리허설도 아니고 오케스트라 리허설이었다. 그것도 요새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로테르담 필하모닉.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지휘자가 발레리 게르기예프였기 때문이다!

누가 들으면 오해할 수 있겠는데, 그가 요즘 세계를 호령하는 최고의 지휘자여서 일개 새싹인 내가 무조건 잘 보여야 하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와는 이전에도 여러 번 연주를 같이 했다. 따지고 보면 그는 근 2~3년간 내가 가장 자주 호흡을 맞춘 지휘자였다. 그와의 첫 연주는 슬로베니아의 류블리아나에서였다. 곡은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 나도 이 곡을 얼마나 여러 번 연주했는지 세기가 힘들 정도인데 러시아의 아이콘인 그는 오죽할까. 아마 꿈꾸면서도 지휘할 수 있을 테지. 아니나 다를까 그는 약속된 리허설 시각에 나타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의 리허설은 연주 전날까지 한 번에서 두 번, 연주 당일에 한 번으로 최소 두 번 이상 진행된다. 하지만 류블리아나에서 나에게 주어졌던 리허설은 딱 한 번. 그것도 연주가 여덟시였는데 여섯 시에 시작하는 일정이었다. 그리고 그는, 일곱 시가 다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던 거였다. 처음에는 초긴장 상태로 연습을 하고 있었지만 나중에는 그 기분마저도 풀어졌다. ‘이렇게 된 거 아예 실전에서 처음으로 맞추게 되면 스릴 만점이겠는데?’ 하는 생각까지 들 때쯤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마에스트로 도착.”

손열음과 게르기예프 지휘 마린스키의 협연.
부리나케 무대로 뛰어올라갔다. 그가- 늘 느끼듯-압도적인 외모에 걸맞지 않는 상냥한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몇 군데만 빨리 해보자.” 리허설이 시작됐다. 세 페이지 정도를 넘겼을까. 그가 음악을 툭 끊었다. “자, 여기는 지나가고… 너 첫번째 카덴차 끝나기 직전부터 쳐줄래?” 음… 첫번째 카덴차가 어떻게 끝나더라? ‘애국가 3절 둘째단부터 불러보세요’ 하면 그 누가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을 읊을 수 있을까? 당연히 ‘가을 하늘 공활한데~’ 부터 시작해야 다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가. 우리 역시 곡 하나를 다 외우고 있다 하더라도 중간에 끊기면 도로 찾아가기가 매우 힘들다. 결국 난 첫번째 카덴차가 끝나는 지점을 이상하게 쳐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 실수가 너무 웃기게 들렸던 나머지 내가 먼저 피식 웃어버렸다. 다행히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내가 귀엽다는 듯 함께 웃어줬다. 한편으론 “우리 지휘자가 여러모로 좀 힘들게 하지? 너가 이해해” 하는 것도 같았다.

리허설은 이어졌고 1악장 중간에 나오는 긴 오케스트라 튜티(모든 악기가 총출동하는 부분)를 지날 때였다. 정신이 하도 없어 그때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던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사운드가 비로소 들리기 시작했다.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라면 사실 어린 시절 내 꿈의 오케스트라였다. 보통의 음악도들은 누구나 베를린 필하모닉이나 빈 필하모닉과의 협연을 꿈꾼다. 나는 되레 그런 세계 초일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딱히 소망해본 적이 없다. 그저 어느 날 집어든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음반을 듣고는 ‘이런 미친 오케스트라가 다 있었다니’ 했고, 이후에 발매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피아노:랑랑) 음반을 듣고는 마치 목소리로 노래하는 듯한 관악기 소리에 경악을 했다. 또 언젠가 그들의 ‘셰헤레자데’ 음반을 듣고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듯한 현악기 소리에 함께 울었다. 물론 이 모든 음반에서 지휘를 맡은 이는 그들의 수장 발레리 게르기예프였다. 언젠가 이 사람들과 같이 연주할 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꿈이 이루어져버렸다.

짧았지만 군데군데 핵심을 잘 짚은 리허설과 이 날의 음악회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나는 그로부터 두 달 뒤 서울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예정된 리허설 시각이 한 시간을 넘겼는데도 그가 오지 않자 음악회를 진행하는 기획사 직원들이 패닉에 빠졌다. 나는 혼자 여유로웠다. 그가 일곱시쯤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리허설을 하러 무대에 오르니 긴장이 되었다. 쇼스타코비치 협주곡 1번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협주곡 중 하나긴 하지만 이때까지 한번도 연주해본 적 없는 ‘새곡’ 이었다. 지난 번이야 차이콥스키니 괜찮았던 거지만 이번에도 괜찮을까.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한 내게 그가 물었다. “너 이 곡 많이 해봤지?” “음, 그게… 아니요, 많이는 아니고….” 차마 처음이라고는 할 수가 없어 얼버무렸다. 역시나 1악장은 군데군데만 맞춰 보고 느린 2악장으로 넘어갔다. 몇 마디를 지휘하던 그가 음향을 듣고 싶었인지 무대에서 내려가 객석으로 갔다. 그런데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계속>


손열음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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