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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란 작은 용기

[여성중앙] 곧 활동 40년째를 맞이하는 거장 일러스트레이터, 세르주 블로크. 어깨에 힘을 팍 주고 ‘에헴, 그러니까 좋은 그림이란 말야…’ 일장 연설을 늘어놓아도 좋을 경력이건만, 먼저 자신을 내려놓고 취재진을 깔깔 웃게 만든다. 이 탁월한 유머리스트의 내면에 숨어 있는 창작 동력은 무엇일까.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 ‘앗! 나도 이런 것 만들어봤으면 좋겠다’ 하는 찌르르한 전기 자극이 머리를 관통하며 엉덩이가 들썩 하는 충동의 순간. 그동안 자신에게 있었는지도 몰랐던 창조 본능이 깨어나는 이런 순간은 생각보다 꽤 자주 우리를 찾아온다.



누군가의 SNS에서 예쁜 식탁 차림 사진을 봤다거나, 이웃집 여자가 취미 생활 중이라며 보여준 캘리그래피 작품이 생각보다 멋져서 슬며시 질투가 피어오르는 순간이라거나, 카페에서 시킨 카푸치노 거품에 아름다운 그림이 떡 올려져 있을 때 등등. 이런 일상의 작은 순간에도 ‘나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대단한 작가나 예술가만 창조 본능과 표현 욕구를 가진 게 아니란 건 자명해 보인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본격 창작한다는 건 여전히 멀고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 재능을 타고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무엇보다 충동의 순간 곧바로 머릿속에 등장하는 검열의 목소리를 꼽을 수 있다. ‘내가 과연 저걸 할 수 있을까? 나한테 그런 솜씨나 재능이 있을까?’ 그 검열의 목소리를 이기고 여차저차 시도를 해 첫 결과물을 내놓으면 이젠 비평가가 등장한다. ‘진짜 제대로 한 거라고 생각해? 이걸 사람들이 좋아할까?’ 이 질긴 검증 과정에 내면은 너덜너덜해지고 결국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에유, 만들긴 뭘 만들어. 창작은 아무나 하나.’



세르주 블로크의 홈페이지(www.sergebloch.net)에는 ‘일러스트레이터에게’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한국이든 프랑스든 이제 막 진로를 결정한 청춘들의 막막함은 매한가지라 “어떻게 하면 작가님처럼 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아서다. 총 14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에 자신의 경험담을 몽땅 털어놓은 이 대사서시 같은 글은 이런 일화로 결론을 맺는다. “칠레 산티아고에 방문해 작품을 소개했을 때의 일입니다. 선생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이 문장을 덧붙였어요.



‘당신은 정말 그림을 못 그리는군요!’ 통역가는 충격을 받아서 차마 그 말을 통역하지 못했고요. 그 여성이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법은 터득하셨네요. 그게 저에게 희망을 줍니다.’ 이것이 지금껏 제가 들어본 가장 큰 칭찬입니다.”



인터뷰를 준비하던 시기, 이 글을 읽고 전율했다. 무언가를 만들어 보려고 할 때 늘 내면의 비평가가 소환되는 이유는 ‘잘 만들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굳건히 뿌리박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 서점에서 이름을 검색하면 200권도 넘는 작품 목록이 주르륵 나오는 이 대작가도 어딜 가면 ‘그림 참 못 그리시네요’ 소리를 듣는다! 게다가 그것을 평생의 칭찬으로 여기고 있다! 이 일화를 듣고 가만히 살펴보면 펜으로 슥슥 그린 세르주 블로크의 그림은 비율도 엉망이고 빈틈도 많아 보인다. 한데 이상하게 마음이 애틋해지고 입가엔 웃음이 슥 번진다.



‘그림 참 못 그리는’ 세르주 블로크의 활동 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먼저 ‘뉴욕 타임스’ ‘월 스트리트 저널’ 같은 세계적인 명성의 언론사들과 협업하는 삽화가로서의 활동. 전 세계적으로 10만 권 이상이 판매된 『나는 기다립니다』나 국제 앰네스티에서 권장 도서로 선정한 『적』같은 어린이 창작 그림책 작가로서의 활동. 또 프랑스판 ‘파워레인저’라 할 수 있는 우주 영웅 만화 ‘샘샘은 꼬마 슈퍼맨’ 관련 활동과 1992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24년째 그리고 있는 어린이 생활 만화 ‘막스와 릴리 Max et Lili’ 시리즈, 패션부터 IT까지 다채로운 브랜드를 위한 CI 작업, 전 세계 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에, 파리 국립예술대학에서 강의 활동까지.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는 듯 폭 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세르주 블로크의 내면에는 ‘넌 할 수 없다’고 속삭이는 비평가의 목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잘한다는 확신 없이 어떻게 이토록 오랜 시간 다양한 방식으로 창작 욕구를 펼칠 수 있었을까? 빈틈 많은 선 하나가 수만 가지 아이디어로 꽃피는 현장, 파리 생 마르탱(Saint Martin) 운하 옆, 햇볕 잘 드는 카페 2층에 위치한 아틀리에에서 그 비밀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1 두 명의 문하생과 함께 사용하는 아틀리에. 그는 요즘 자신을 가장 즐겁게 하는 건 이 두 젊은 아티스트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2 흔히 쓰는 A4 종이가 그의 작업 도구다. 그 위에 펜이나 색연필로 슥삭, 이런 과정을 거듭 반복하며 가장 마음에 드는 선을 찾는다.



3 서재엔 전 세계에서 번역 출간된 그의 그림책이 언어별로 빼곡하게 꽂혀 있다. 그 앞을 지키고 있는 건 ‘샘샘은 꼬마 슈퍼맨’ 속 캐릭터 크하푸이으(crapouille) 피겨.



4 세르주 블로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책상. 인터뷰 당일엔 오전 6시 30분에 출근해 9시까지 ‘막스와 릴리’ 작업을 하고, 독일 언론사 삽화로 사용될 일러스트 5컷과 문하생들과 진행 중인 대형 프로젝트 ‘성경’ 작업을 했다.



5 여전히 자기 스타일을 찾는 중이라고 말하는 그는 새로운 도전을 즐기길 좋아한다. 올 9월 출간될 2500컷의 그림이 실린 6000 페이지짜리 ‘성경’도 그 도전 중 하나.







아버지에게 배운 반복과 규칙성의 의미



Q : 유년기를 세 가지 단어로 묘사한다면 어떤 말을 고르겠습니까
알자스 시골뜨기, 행복한, 뛰어놀다. 이 세 가지 표현을 고르고 싶네요. 제 고향 알자스는 19세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독일과 프랑스가 영토 분쟁을 반복한 지역이었어요. 부모님은 독일 국적을 가졌다 프랑스 국적으로 바꾸어야만 했고, 언어 역시 점령 시기에 맞추어 독어와 불어를 오락가락 사용하셨지요.



한국전쟁 기간의 한반도 상황과 몹시 흡사했어요. 제가 태어났을 땐 알자스가 최종적으로 프랑스령으로 포함된 뒤였지만,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인간이 얼마나 바보 같아질 수 있는지 부모님의 경험담을 통해 배웠어요. 알자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제게 큰 의미를 지녀요. 현실이 픽션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우스꽝스럽다는 관념을 갖게 되었고, 덕분에 현실에서 상상의 발단을 찾는 습관이 생겼어요. 마지막으로 어릴 때 늘 형, 여동생이랑 정원에 있는 호두나무에 올라가서 놀거나 친구들과 들판에서 뛰어다녔던 기억이 나요. 이 기억이 행복감으로 남아 있는 것 같고요.



Q : 부모님은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분들이었나요 두 분 다 예술과 거리가 먼 일을 하셨어요. 아버지는 정육사였고 어머니는 간호사였으니까요. 하지만 아버지는 유머 감각이 있어서 우리들을 웃게 하려고 늘 노력하셨고, 어머니는 책을 무척 좋아하셨어요. 제가 그림에 노출된 건 6세 때부터 16세까지 동네 화방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을 들은 것인데, 사실 친구들과 까불며 놀 수 있는 공간이라 좋아했던 거지 작가가 되겠다는 진지한 마음이 있던 건 전혀 아니었어요.



Q : 부모님이 물려주신 최고의 자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매일 정육점으로 출근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규칙적으로 일터에 나가 일하는 것의 의미와 무게감을 배운 것이에요. 그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기복 없이, 대단한 기대감이나 불안감 없이, 어제까지 해오던 일을 오늘 또 하는 태도. 그건 예술가에게도 꼭 필요한 태도거든요. 사실 창작 활동에서 ‘반복’은 피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마음에 드는 선 하나가 나올 때까지 똑같은 짓을 계속해야 하는데 그걸 지겨워하거나 진도가 안 나간다고 좌절하면 성장하기 어렵죠.



Q : 책을 매우 좋아했던 어머니에겐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어머니가 집에서 자주 책을 읽으셔서 저도 ‘책 읽고 싶다’는 욕구가 저절로 생겼어요. 원래 아이들은 따라쟁이들이라 부모 행동을 제일 하고 싶어 하거든요. 책 읽는 어머니 옆에서 저는 『Spirou』 『Pif』 같은 어린이 만화 잡지를 보곤 했어요. ‘아, 이런 그림은 어떻게 그리는 걸까? 나도 그려보고 싶다!’ 하는 모방 욕구가 생겼고, 10세 무렵부터 월트 디즈니 만화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카피 활동에 몰입하게 되었죠. 제가 베끼기에 꽤 재능이 있었어요(웃음). 어머니의 영향으로 저 역시 두 아들을 키울 때 원칙으로 세운 게 있어요. 아이들에게 뭔가 변화를 주고 싶다면 부모가 먼저 그 일을 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Q : 학창 시절엔 미술 시간을 제일 좋아했나요 아뇨. 쉬는 시간을 제일 좋아했어요. (일동 폭소)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수업 중간 15분의 쉬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는지 몰라요. 타인과 어울리는 법, 놀이 규칙 지키는 법, 농담하는 법, 싸우고 화해하는 법 등등 살면서 중요한 것들은 다 쉬는 시간에 배운다고 봐야 해요. 학교가 유일하게 창의적인 공간이 되는 때가 바로 이 쉬는 시간이에요. 그다음으로 좋아한 게 미술 시간이었어요. 그림 그리는 게 재미있었고, 수업 분위기도 쉬는 시간과 비슷했고요(웃음).



Q : 책도 재미있게 읽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했고… 별 고민 없이 작가로서 준비를 착착 해온 걸로 보이는데요 전혀요. 그림을 좋아하긴 했지만 직업으로 삼겠다는 자기 확신은 없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뭘 하면 좋을지 몰라서 대학 진학을 미루고 생업에 뛰어들었죠. 공사장에서 땅 파고, 목공소에서 나무에 구멍 뚫고, 공장 생산 라인에서도 일해봤고요. 도로 보수 업체에서 화살표 그리기, 병원 수술실에서 나온 피 버리는 일까지 별별 육체노동을 다 했어요.



그렇게 모은 돈으로 포르투갈로 여행을 가서 30년 독재가 무너지고 혁명이 일어나는 현장에도 있었고요. 18세 무렵이었으니까 역사적 맥락 같은 건 잘 몰랐지만 그냥 새로운 세계를 보고 느끼는 게 좋았어요. 그 뒤로 2~3년 정도 육체노동과 여행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깨달았어요. 다른 일은 다 너무 피곤하고 그림 그리는 게 제일 덜 피곤하다는 걸요(웃음).



Q : 확신을 갖기까지 왜 그렇게 시간이 필요했을까요 제가 학생일 때만 해도 프랑스 부모 세대는 안정적인 직장을 얻는 걸 최고로 쳤어요. 물론 지금도 그런 부모는 있지만요.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형이 공부를 잘해서 당시 안정적인 직업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엔지니어가 되었어요. 부모님이 저에 대해선 좀 여유를 가지셨고, 덕분에 제 안에서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낼 때까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 2~3년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세상의 속도대로 무작정 진도 나가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살아봤다는 자긍심, 학교 안에선 절대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터득한 지혜, 안 해본 일을 시도할 때 필요한 작은 용기 등등 귀한 것들을 많이 얻은 시기니까요. 특히 창의성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작은 용기 내기 습관’에 큰 도움을 받은 시기랍니다.



Q : 작은 용기 내기 습관이라, 흥미로운데요 전 창의성이 그저 무언가를 할 용기를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에게 무언가 해보는 것을 허락하는 것, ‘왜 안 되겠어’ 하는 마음, ‘실패해도 괜찮아. 별거 아냐’라고 말해주는 자세. 이것이 창의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유일한 차이예요. 제 비법은 이래요. 학교 쉬는 시간 때 가졌던 태도와 자세를 기억해내는 것. 쉬는 시간에 애들하고 놀 때, 대단히 큰 결심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그냥 그렇게 내 앞에 있는 상황과 논다는 생각으로 덤비는 거죠.



노는 마음이 중요해요. 유희 하는 마음은 여유를 낳고, 여유는 작은 용기를 낳으니까요. ‘나는 지금 노는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면 요리, 친구와의 모임 등 삶의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지고, 창의성을 표출하고 싶어져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창의성이 있어요. 창의성을 너무 국한해 특별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재능이라 생각하지 마세요.







1 막스와 릴리 Max et Lili 어린이 잡지 『Astrapi』에 1992년부터 연재를 시작해 2015년 2월 기준 총 107권 출간, 매해 150만 권 판매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의 생활 만화 시리즈. ‘릴리는 잠자기가 싫어요’ ‘친구 조에의 부모님이 이혼했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알렉스는 장애인이에요’ 등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부딪힐 수 있는 여러 상황을 만화로 담았다.



2 샘샘은 꼬마 슈퍼맨 Samsam 세르주 블로크의 아들 사무엘이 5세 때 배트맨 복장으로 변신하며 노는 것을 지켜보다 구상한 우주 영웅 만화. 5년간의 만화 잡지 연재 후, 2007년 52회 분량의 TV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프랑스는 물론 독일, 대만, 이탈리아 등 각국에서 방영되었으며, 한국에서는 재능TV를 통해 소개되었다.



3 나는 기다립니다 Moi, j’attends 다비드 칼리(Davide Cali)가 글을 쓰고 세르주 블로크가 그림을 그린 책.

한 사람의 인생 속 기다림의 순간들을 빨간 털실과 간결한 펜 선으로 그려낸 감동적인 작품이다. 2005년 발표되자마자 각종 아동도서상을 휩쓸었고 세계 30여 개국에서 출판됐다. 한국어판은 2007년 문학동네에서 출간됐다.



4 적 L’ennemi 『나는 기다립니다』의 성공 이후 다비드 칼리와 다시 손발을 맞춘 작품. 사막에 홀로 남겨진 두 군인의 상황을 통해 전쟁의 본질을 쉽고 명료하게 담아냈다. 아군과 적군으로 편을 가르는 이분법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증오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깊이 있는 상징과 예리한 유머로 설명한다. 한국어판은 2008년 문학동네에서 출간됐다.



5 나의 보아뱀, 밥 Mon boa, Bob 몸을 고불고불 움직여 글씨를 쓸 줄도 알고, 요리를 할 줄도 알며, 먹기 싫은 양배추도 부모님 몰래 대신 먹어주는 사랑스러운 애완동물 녹색 보아뱀에 대한 이야기. 흔히 혐오감을 느끼는 비주류 동물에 대한 고정 관념이 전복되고, 또 ‘자신이 좋아한다면 흔들릴 필요 없다’는 당당한 태도가 전염되는 작품이다. 2012년 미국에서 출간된 뒤 불어로 번역됐다.



6 작은 선의 위대한 이야기 La Grande histoire d’un petit trait 세르주 블로크가 본인의 회고록을 한 편의 그림책으로 담아냈다. 주인공 아이는 길 가다 주운 빨갛고 작은, 아무것도 아닌 ‘선’과 놀며 성장해 그림 작가가 된다. 선은 그의 마술 도구였고, 생명선이었고, 감정의 바로미터였다. 작가의 꿈을 심어준 파울 클레, 사울 바스 등 선배 예술가들에게 보내는 묵직한 오마주가 담겨 있다. 2014년 출간.



7 구스타프 플로베르의 통상 관념 사전 Le Dictionnaire des ide′es recues 플로베르의 모든 작품에 나왔던 주제가 거론된 일종의 ‘플로베르 감정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벨기에 유명 작가 파스칼 르메트르(Pascal Lematre)가 글을 다듬었다. 플로베르의 엄청나게 웃긴 능청과 세르주 블로크의 그림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알 수 있는 작품. 그가 작업한 여러 어른 책 중 한 권이다. 2006년 출간.







매일 좌절하고 매일 이겨내기



Q : ‘선의 간결성’은 당신 작품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입니다. 슥슥 빠르게 그리는 스타일 덕에 작업량이 어마어마하게 방대해요. 배트맨 변신 놀이를 좋아하던 아들 사무엘(Samuel)에게 영감을 얻어 만든 우주 영웅 만화 ‘샘샘은 꼬마 슈퍼맨’은 1999년 연재를 시작해 2012년에는 TV 만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생활 만화인 ‘막스와 릴리’는 25년간 100권 넘는 분량으로 이어져오고 있지요. 그 연재를 하면서 동시에 창작 그림책 단행본, 광고, 신문, 잡지 등 국경을 넘나들며 여러 매체 활동도 하고요
바이올리니스트가 4가닥의 줄로 여러 음악을 표현하듯 저에겐 간결한 선이 표현의 도구였어요. 단순하게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다양한 나라를 돌며 다채로운 장르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핵심만 남겨놓고 모든 것을 지워버리면 독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개입시켜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림을 읽어낼 수 있지요. 사실 젊을 땐 저도 그림에 이것저것 많이 집어넣었어요. 스스로 안심하려고 꾸미고 뭔가를 계속 더했죠. 그러나 그런 장식들이 소모적이라는 걸 깨닫고 단순성을 추구하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어요.



Q : 한국에 당신 이름을 널리 알린 창작 그림책 『나는 기다립니다』에선 빨간 털실로 인생의 순환을 묘사했습니다. 그렇게 일상 속 소소한 물건의 속성을 파악하고 거기에 단순한 펜 선을 더해 새로운 메시지를 창조하는 건 당신의 주특기입니다. 그간의 언론사 삽화 작업물을 보면 꽃봉오리가 사람 눈이 되기도 하고, V자 손가락이 악어 그림이 되기도 하며, 연필깎이 구멍이 사람 콧구멍이 되기도 하죠. 그렇게 생활 속 물건에서 은유를 만들어내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을 수 있나요 아이디어를 내는 건 자전거 배우는 것과 비슷해서 처음에는 피곤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쉬워져요. 앞서 말한 ‘학교 쉬는 시간에 노는 애의 감성’으로 기사나 책의 주제가 되는 핵심 단어랑 놀다 보면 이걸 뭐랑 연결시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라요. 정말 아무 생각이 안 날 때는 그냥 종이를 꺼내서 텅 빈 머리로 선을 그어봅니다. 그러면 손이 머리를 끌고 가서 쓸모 있는 생각으로 발전될 때가 있어요. 아이디어가 없을 때일수록 생각에 빠져 있기보단 행동을 하죠. 비밀을 하나 더 털어놓자면 별 아이디어가 없을 때도 사람들 앞에선 있는 척을 합니다(웃음).



Q : 당신 같은 대작가도 창작에 대한 확신이 없어 떨리고 두려울 때가 있나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지금도 매일매일이 두려워요!



Q : 에이, 거짓말하지 마세요 정말로요.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갈 때마다 ‘아, 이거 못할 것 같은데?’ 하는 불안함에 시달린다고요.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면 그림이 너무 후진 것 같아서 아틀리에 옆에 있는 운하에 몸을 던지고 싶을 때도 많고요. 타고난 재능이 없는 저에겐 모든 작업이 ‘승리’랍니다. 속이 울렁거려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얻은 작은 승리죠. 엄밀히 말하자면 창작할 때 갖는 두려움은 좋은 신호예요. 자신이 맞다고 확신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죠. 그 떨림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법입니다.



Q : 속이 울렁거려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는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나요 만들어놓고 나서 잊어버리는 거예요! (일동 폭소) 다시 보면 못한 것만 보이게 되어 있거든요.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냥 묻어버리고 다음 작업 생각만 한답니다. 또 좋은 비법이 있어요. 남들이 한 걸 안 봐요! 세상엔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거든요. 옛 작가들 작품집은 좋아하지만 저와 동시대에 비슷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작가들 책은 절대 안 봐요. 만약에 그 사람 책이 정말 훌륭하면 질투가 나서 괴롭고, 제 책보다 못했다 싶으면 오만해질 수 있거든요. 그런 데에 신경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요.



Q : 어느 인터뷰에서 ‘두 아들이 나의 아트 디렉터였다’는 고백을 했는데요 아이들이 어릴 때 늘 제 아틀리에에서 놀았어요. 그 노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샘샘은 꼬마 슈퍼맨’ ‘토토’ ‘막스와 릴리’ 등 만화 시리즈를 발전시켰고, 당장 마감이 닥쳤는데 아이디어가 고갈됐을 땐 “오늘 학교에서 뭐 했어?” 하며 에피소드를 캐내기도 했고요. 아이가 생기고 작가로서 가장 좋았던 건 애들 핑계로 동심을 회복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네 발로 기어 다니고 원숭이 흉내 내며 놀 수 있죠. 다 큰 남자 혼자 그러고 있으면 사람들이 ‘미쳤나’ 할 텐데 아빠가 되니 그렇게 바보처럼 놀 권리가 다시 생기더라고요(웃음)!



Q : 창작 그림책 작가 중에 수십 년간 어린이용 만화 작업을 병행한 작가는 거의 없어요. 만화라는 매체가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믿나요 어머니 곁에서 만화 잡지를 보던 제 유년기 기억만 떠올려봐도 잡지가 나오면 가장 좋아하는 연재물부터 허겁지겁 보곤 했어요. 친한 친구를 다시 만나기 위해 뛰어가는 기분이었죠.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웅 만화는 그렇게 아이들과 정을 쌓고 관계를 맺어요. 또 유머를 배울 수 있는 훌륭한 매체이고요. 가만히 보면 진지하지 않은 콘텐트는 저급하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데, 앞서 말했듯 학교에서 수업 시간보다 창의력이 더 발휘되는 시간은 쉬는 시간이에요. 좋은 유머는 질문을 던지고 생각의 방향을 바꾸고 확장시켜요. 또 삶이 고되게 느껴질 때 유머가 삶을 조금 더 상냥하게 만들어주죠.



Q : 두 아들이 벌써 18세, 20세가 되었습니다. 둘 다 예술 계통으로 진학하길 원한다고요. 아들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나요? 비밀스럽게 전수해주는 창의력의 비밀이 있는 건 아닌지요 부모가 모두 이쪽 직업을 가져서(세르주 블로크의 부인 미에이유 보티에는 붉은 실로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작품을 만드는 설치 미술가다. 『나는 기다립니다』의 빨간 털실 아이디어는 부인에게서 빌려온 것이라고.) 아이들도 관심이 갔던 것 같아요. 부모라면 자식들이 어떤 선택을 할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죠. 저도 그랬고요. ‘만약 둘이 취직 잘되는 엔지니어 전공을 택했다면 제 마음이 편할까?’ 가끔 생각해봐요.



답은 아니에요. 저는 먹고사는 문제보다 아이가 삶의 재미와 기쁨을 잃는 게 더 걱정되거든요. 아이가 힘든 길을 선택하더라도 본인이 좋아하고 자유로움을 느낀다면 저 역시 그 선택을 믿습니다. 창의력에 대한 조언이오? 호기심을 잃지 말 것, 열려 있을 것, 늘 같은 방식으로만 생각하지 말 것, 다양한 사람과 어울릴 것, 자신에 대한 확신을 너무 갖기보단 두려워할 것. 단, 즐거움을 놓치지 말 것. 두려움과 즐거움 사이에서 균형 잡는 것이 어렵겠지만, 그 둘 사이를 오락가락 하며 나아가는 게 인생의 본질이라고 가르쳐주죠.





이 글을 쓴 최혜진은 『여성중앙』과 『쎄씨』 에디터 시절, 누구보다 주도면밀하고 깐깐한 워커홀릭이었다. 천만다행으로 일보다는 연애를 더 좋아했다.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유럽으로 날아가 프리랜서 글쟁이로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책 『그때는 누구나 서툰 여행』을 썼고, 네이버 ‘오늘의 책’,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외부 필자로 활동 중이다. www.radioheadian.com





기획 여성중앙 조영재, 사진 신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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