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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정치 욕심 ? 아무나 한다 해도 난 하면 안 되지요”

최근 12집 앨범 낸 가수 이승철은 “시간 참 빠르다”고 했다. 그는 “내 30년 가수 인생보다 품 안에 안겨 있던 둘째 딸이 초등학생이 된 게 더 무게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는 무대 위와 밖이 다른 가수다. 무대 위에서는 타고난 미성(美聲)으로 대중의 감수성을 자극하는데 밖에서는 돌격대장이다. 앨범 녹음하다 소리를 못 참겠다며 억대 피아노를 덜컥 산다거나, 탈북청년합창단과 함께 독도에서 합창하다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까지 가서 노래 불렀다. “안 해 본 거 하는 거 대개 좋아한다”며 “O형 같은 A형”이라는 그는 이승철(49)이다.

12집 앨범 ‘시간 참 빠르다’발매
독도로 뉴욕 유엔본부로 노래 원정
“안 해 본 것 도전 . O형 같은 A형”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1986년 록밴드 부활의 보컬로 시작해 ‘라이브 황제’에 오르기까지 그는 무대를 향해 달려가는 돌격대장으로 살았다. 최근 발매한 12집 앨범(‘시간 참 빠르다’)에는 현재진행형 가수인 그가 같은 듯 다르게 담겨 있다. 이승철을 만나 물었다. 어떤 노래를 더 부르고 싶은지. 그는 “나는 대중가수고, 대중가수는 장르보다 꾸준한 히트가 중요하다”고 천연덕스레 말했다. 이승철은 돌려차기를 안 하는 인터뷰이였다.



 - 새 앨범 쇼케이스를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앞에서 한 이유는.



 “20년 전인가 나훈아 선배가 그 앞에서 공연했다. 멋있었고 나도 하고 싶었다. 30주년이 되도록 2000번 넘게 공연했지만 아직도 이승철 콘서트를 못 본 사람이 많다. 그래서 온라인상에 생중계도 하고, 무료 콘서트도 했다. 나로서는 꿈을 실현했다.”



 - 독도 공연, 아프리카 학교 짓기 등 사회적 행보가 잦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나이 들면 나잇값 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딸들에게 자랑스럽지 않더라도 최소한 창피한 아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내의 영향도 크다. 조언을 많이 해준다. 청문회 준비하는 사람처럼 산다고 농담같이 이야기하곤 하는데 특히 독도 공연 이후 삶이 조심스러워졌다. 차도 국산차로 바꿨다.”



 - 정치 욕심 있는 거 아닌가.



 “요새 많이 묻는데 에이, 그거 아니다. 설령 국회의원 아무나 한다 해도 내가 하면 안 되지(하하).”



 이승철은 싱어송라이터를 자처하지 않는다. 작사·작곡·편곡 등 그간 곡 작업도 많이 해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새 앨범을 준비할 때마다 신인이나 유명 작곡가한테 곡을 받는다. 이번 앨범도 200곡가량 받아 그중에서 골라냈다. 녹음할 때 작곡가가 보낸 데모 테이프를 한쪽 귀에 꽂고 들으며 노래한다. 새로운 스타일의 곡과 이승철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게 이승철표 노래다.



 - 보통 가수들은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나.



 “나이 먹을수록 귀가 얇아져야 한다. 고집 부려봤자 똥고집이다. 기본적으로 내가 쓴 노래보다 남이 쓴 노래가 좋으면 그 노래 택한다. 싱어송라이터가 발목 잡을 수 있다. 교감해야 한다. 잘못하면 벽에 갇힐 수 있고, 동떨어질 수 있다. 옷을 하나 입어도 전문가들이 입혀주는 게 더 낫다.”



 - 이승철의 네버엔딩스토리가 있다면.



 “늘 ‘지금 같아라’고 기도하며 산다. 하고 싶은 게 많다. 세계시장으로 나가고 싶고, 더 큰 무대에서 공연하고 싶다. 그래미 시상식 무대도 서보고 싶다. 엄마를 위한 동요집도 내고 싶고, CCM(대중음악 형식의 기독교 음악) 앨범도 내고 싶다.”



 -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게 롱런의 비결인가.



 “나는 돈 벌기 위해 노래 아닌 다른 부업 해본 적 없다. 이유는 한 가지다. 이승철은 노래 빼면 뭘 해도 안 어울린다. 노래하는 게 제일 잘 어울린다는 걸 안다.”



 - 그런데 왜 이번 앨범이 마지막 앨범이라고 말하고 다니나.



 “앨범 제작 방식을 바꿔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정규앨범으로 10곡 만들면 타이틀 곡 빼고 대다수가 묻히는 게 너무 아깝다. 제작비만 해도 3~4억원이 드는데 이렇게 투자해봤자 음원 가격으로 회수하기 어렵다. 정규앨범 말고 다른 스타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 국내 음악시장의 문제가 뭘까.



 “온라인 차트다. 가요 시장의 다양성을 해치고 있다. 나와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차트 순위로 매기면서 어떤 게 낫다고 할 수 있는가. 인디 가수는 좋은 노래를 발표해도 온라인 차트 100위권 밖에 있게 된다. 차트 상에서 안 보이니 결국 노래는 묻힌다. 장르는 사라졌고, 차트만 남은 시대다.”



 이승철은 이달 초 미국 공연에 나선다. 스태프 40명과 함께다. 대다수가 그와 일한 지 오래됐다. 스타일리스트 경력만 15년이다. “오빠에게 청춘을 바쳤다(스타일리스트)”거나 “형은 그런 거 안 따진다(매니저)”는 말이 인터뷰 도중 들린다. 선생님보다 오빠(형)가 잘 어울리는 이승철은 이제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글=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승철=1966년 서울 출생. ‘희야’라는 곡과 함께 ‘부활’의 보컬로 데뷔했다. 부활에서 탈퇴한 후 89년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라는 앨범을 내고 솔로 활동에 나섰다. 10집 앨범에 실린 곡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추모곡으로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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