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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공포정치의 시작과 끝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북한 김정은의 정치 행태는 그의 아버지와 다르다. 김정일에 비해 김정은은 보다 공격적이며 돌발적이다. 특히 장성택 처형에 이어 최근 현영철의 숙청과 처형 보도는 그가 공포를 통치 무기로 활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북한판 공포정치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권력의 본질을 알고 있는 김정은 개인의 성격만으로 공포정치를 설명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는 계산된 정치 행태로 봐야 할 것이다.

 북한 정권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김정은의 권력 유지를 위한 재원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 이 재원은 주로 무역과 외화벌이꾼, 국외 파견 근로자의 수입에서 나온다. 그러나 관계국의 경기 하강 때문에 이 수입이 줄고 있다. 특히 국제 가격 하락과 중국 수요 감소로 인해 가장 중요한 외화수입원인 무연탄 수출이 2014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올해도 이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북한은 인플레이션 조세(inflation tax)를 주요 대내 수입원으로 이용해 왔다. 그러나 이도 2013년부터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산업연구원 연구에 의하면 대외 무역 증가와 2009년 화폐개혁의 충격 등으로 북한 주민과 기업은 북한 원화 대신 달러나 위안화를 보유하고 거래 시에도 외화로 결제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이 때문에 인플레이션 조세를 거둘 수 없게 되자 북한 정부는 통화 증발을 멈추었다. 그 결과 이전에는 계속 오르기만 했던 달러 대 북한 원화의 암시장 환율이 2013년 초부터 지금까지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북한 주민의 70% 이상은 시장 등의 비공식 경제활동을 통해 생존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화는 북한 주민의 의식을 근저에서부터 변화시키고 있다. 북한을 탈출한 지 1년이 되지 않은 탈북민을 연구하면 북한에서 시장 활동을 한 사람일수록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성향을 보인다. 반면 북한에서 이념 교육을 아무리 받아도 사회주의 경제를 더 지지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공산당원들이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정도가 더 높다.

 변한 것은 북한 주민뿐만이 아니다. 북한의 고위 관료는 무역으로 큰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직간접적으로 고리대금업이나 아파트 분양에 관여하고 있다. 다른 관료들은 대부분 각종 명목의 뇌물로 먹고산다. 이들은 정치적 생존을 위해서는 권력자에게 충성해야 하나 먹고살기 위해선 자본주의적 활동을 용인해야 함을 체득하고 있다.

 공포는 비탈로 내몰린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이상의 현상이 지속되면 그의 권력은 자연스럽게 축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포정치의 핵심은 임의성(randomness)과 잔인성(brutality)이다. 공포가 극대화되려면 누가 다음 차례가 될지 예측할 수 없어야 하고 그 대상자에게 가해지는 처벌은 상상 이상이어야 한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모습이다.

 우리는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공포정치를 선택한 정권에 압박과 제재를 가함으로써 바람직한 변화를 유도한다는 전략은 단견이다. 외부 압박이 심해지면 독재자는 공포의 강도를 높여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 사회주의 역사를 보면 KGB 등의 폭압적 사회 통제기제가 작동하는 한 고도의 공포는 독재정권 유지에 효과적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소련의 스탈린과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가 25년 넘게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독재정권의 공포정치는 흔히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단기에는 권력을 안정시킨다.

 그러나 공포에 의한 권력 안정 효과는 당대에 그친다. 김정은의 공포정치는 북한에서 4대 세습 가능성이 희박해졌음을 의미한다. 공포정치에 숨죽였던 권력 엘리트들은 독재자의 유고 시 그를 비판하고 예측 가능한 정치를 하려는 자를 찾는다. 이 때문에 스탈린 사후 권좌를 노리던 비밀경찰의 잔혹한 총수인 베리아는 처형되고 온건한 흐루쇼프가 정권을 잡은 것이다. 이나마 다행이다. 많은 경우 공포정치의 후과는 심각한 폭력 사태다. UCLA의 게디스 교수에 따르면 북한과 같은 개인 독재형 국가에서 레짐이 바뀔 때 내전 등 무력충돌이 수반될 가능성이 다른 독재 체제에 비해 현저히 더 높다. 이런 북한을 안정시키고 체제 이행과 통일을 이루는 데 필요한 역량을 우리는 갖고 있을까. 세계사에서도 전대미문의 과업을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에서 드러낸 이 초라한 정부 역량과 시민의식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적극적인 대북 관여(engagement)는 모든 한국 정부가 변함없이 추진해야 할 정책 기조다. 북한 내부의 요인 때문에 북한은 장기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압박과 제재만의 정책은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 가능성을 제약한다. 더욱이 이는 북한의 공포정치를 가속화시켜 평화 통일의 노정을 지뢰밭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미래를 보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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