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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나의 방랑은 어디서 끝났을까?

이건용
작곡가, 서울시오페라단 단장
어린 시절, 슈베르트의 가곡이 너무나 좋았다. 세계명곡집에 실린 몇 곡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헌책방을 뒤졌다. 『슈베르트 백곡집』이라는 책을 구했다. 첫 장을 열었더니 ‘방랑’이라는 노래가 나왔다. “방랑, 방랑, 방랑은 모든 물방앗간 사람들의 즐거움”이라는 가사였다. 그 다음은 “어디로?” 또 그 다음은… 하면서 나는 100곡을 모두 탐험했다. 물론 어려운 곡들은 그대로 지나치면서. 문학을 좋아했던 세 살 위 형도 이 슈베르트 탐험에 동참했다. 많은 노래를 같이 불렀다.



 10년쯤 전 미국에 사는 그 형이 환갑을 맞았다. 축하 인사를 보냈더니 그에게서 답이 왔다. “우리가 옛날에 이 노래를 무척 좋아했지”라면서 보내온 것은 슈베르트의 ‘방랑자’라는 노래였다. “험한 산을 넘어 여기까지 왔네/ 안개 자욱한 골짜기, 바다는 으르렁거렸지/ 나는 아직도 헤매고 있네, 기쁨은 잠시/ 한숨 끝에 나는 늘 묻네 ‘어디?’” 정말 그랬다. 지금도 노래뿐 아니라 그 반주까지 다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많이 불렀었다. 언젠가부터 그 노래로부터 멀어져 있었는데 반세기 가까이 지난 뒤 형 덕분에 그 노래를 다시 입에 올리게 되었다.



 빈을 방문한 것은 그 얼마 후였다. 슈베르트를 좋아한 작곡가로서는 늦은 방문이었다. 그의 생가, 첫 대작을 발표했던 교회, 그의 이름이 붙은 학교, 죽음을 맞이한 집 등을 찾았다. 한 곳에 갔더니 극작가 그릴파르처가 쓴 슈베르트의 묘비명이 있었다. “방랑자들아. 슈베르트의 노래를 들어 보았는가. 그 노래의 주인이 이 돌 밑에 누워 있다.”



 슈베르트는 방랑자였다. 그가 쓴 노래의 가사 그대로였다. “나에겐 이곳 태양이 너무 차갑고/ 꽃은 생기가 없어/ 온통 공허한 울림뿐이라네/ 여기서도 나는 역시 이방인”(‘방랑자’ 중에서). 거친 세상을 살아갈 만큼 야무지지 못해서 그는 친구들 가운데서 살았다. 슈사모(슈베르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당시에는 슈베르티아데라고 불렀다) 밖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동경과 방랑에 관한 주옥같은 노래로 친구들 (그리고 200년 지난 우리들의) 마음에 낭만적인 시심을 불러일으켜 주었지만 시심을 먹고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서른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를 좋아해서 그랬던가. 어린 시절 마음 속에 불현듯 일어나는 그 느낌을 어쩔 수가 없었다. 마음이 저린 듯한, 조용하면서도 벅찬, 슬픈지 혹은 행복한지 알 수 없는 그런 느낌. 맑은 날 먼 산을 볼 때, 저녁 노을을 보거나 그 노을이 강물을 물들이는 것을 볼 때, 밤에 열차의 기적소리를 들을 때, 별을 볼 때, 심지어 지도를 볼 때, 지도 속에서 사마르칸트나 볼가강 같은 지명을 볼 때 그랬다. 대책 없는 동경이라는 말이 가장 가까운 말이겠다. 슈베르트의 노래에는 그런 동경이 들어 있었다. 나에게 그 노래들은 노을이고 호수고 별이었다. 슈베르트 백곡집의 탐험은 그를 통한 나의 방랑이었다. 그 동경으로 나는 음악을 전공하게 되었고 그 방랑은 나를 작곡가로 이끌었다.



 그러나 작곡가로서 활동하면서 나의 삶은 대체로 방랑의 반대 쪽으로 갔다. 작곡계에서 활동했고 제법 많은 연주단체에서 작곡 위촉을 받았다. 대학교수로서 30여 년 재직했다. 안정된 삶이었다. 그러는 중에 형으로부터 ‘방랑자’의 편지를 받았다. 그 노래는 나에게 묻고 있었다. “너의 방랑은 끝났는가?”



 어디서 나의 방랑이 끝났을까? 아니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인가? 방랑의 자취가 그래도 남아 있는 곳은 나의 작품이다. ‘저녁노래’라는 일련의 작품이 그 예다. 1997년부터 10년 가까이 일곱 편을 썼다. 그 내용은 어린 시절부터 나의 마음에 그려져 있는 그 대책 없는 동경의 그림들이다. 다만 ‘방랑’까지는 아니고 ‘바라봄’ 정도만 한다. 역시 나이가 든 탓이겠다. 방랑도 힘이 있어야 하니까.



 하기는 음악회를 가고 영화를 보고 오페라를 보는 것도 일상 속의 방랑이다. 어떤 음악이든 시작하면 그것은 일탈하고 방랑하고 파란을 겪고 그리고 되돌아오니까. 말하자면 방랑의 연습장이요 방랑의 시뮬레이션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를 위로한다. “나의 방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건용 작곡가, 서울시오페라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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