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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홍콩의 구룡과 남송의 황제

홍콩은 시드니, 리우데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으로 알려져 있다. 오래 전 홍콩은 지금과 달리 바다가 푸르고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깨끗한 도시였다.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의 도시로 동서 문화가 융합되어 가장 살기 좋은 도시의 하나였다.

이러한 때에 외교관으로 홍콩에 근무하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홍콩에 부임하니 전임자가 홍콩 섬 동편의 브레머 산 중턱에 위치 좋은 아파트를 얻어 놓았다. 브레머 산은 1841년 아편전쟁 시 홍콩 섬에 상륙한 고든 브레머 제독의 이름에서 유래된다. 아파트 창문을 통해 바라다 보이는 것은 빅토리아 하버의 푸른 물과 멀리 뭉게구름을 이고 있는 구룡(九龍)반도의 산봉우리였다. 그리고 눈 아래로는 매 15분 간격으로 잠보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카이탁(啓德) 공항이 보였다. 지금의 첵랍콕 공항이 개항하기 전이었다.

전망 좋은 아파트를 우리만 즐길 수 없어 인근 국의 동료 외교관이며 현지 사람들을 가끔 불러 홈 파티를 열었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초대된 손님 중에 대학교수로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있었다. 그는 눈앞의 구룡반도를 가리키면서 산 봉오리가 몇 개 인지 세어 보라는 것이다. 직감적으로 구룡이므로 봉오리가 아홉 개가 되리라 생각하고 세어 볼 것도 없이 아홉이라고 답하였다.

그 교수는 빙그레 웃으면서 다시 세어 보라고 한다. 하나 씩 세어 보니 9개가 아니고 8개였다. 봉오리 하나하나가 용에 비유된다면 팔룡(八龍)인 셈이다. 그 교수는 설명했다. 사실은 8개의 봉오리지만 남송의 마지막 황제가 그 곳에 살았기에 구룡이 된다는 것이다. 용은 황제를 상징한다. 그러고 보니 구룡반도에 송왕대(宋王臺)라는 공원이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교수의 이야기가 길어진다. 남송을 멸망시킨 원(元)세조 쿠빌라이 군대는 남송의 마지막 황제를 추격 홍콩까지 내려와 왔다. 황제는 다시 배에 태워졌으나 더 이상 갈 곳 없어 해상을 떠돌며 원의 군사를 피해 다녔다. 남송의 군대와 원의 군대가 홍콩 인근의 애산(崖山)에서 조우하여 해전을 치루었다. 이것이 남송과 원의 마지막 전투로 전세가 기울어지자 남송의 충신 육수부(陸秀夫)는 어린 황제와 함께 바다에 뛰어 들어 최후를 맞이하였다고 한다.

남송의 마지막 황제는 홍콩의 푸른 바다 속에서 수장이 되었지만 그의 영혼은 구룡의 봉오리와 함께 지금도 홍콩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이 있는지 모른다. 역사에서 나라 잃은 슬픔을 경험한 우리들은 남송의 마지막 황제의 최후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13세기 중앙아시아에서 불세출의 영웅 칭기즈 칸이 나타나 금나라 치하에서 노예 같은 생활을 하던 몽골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북방의 강자로 군림한다. 북송시대 중국의 북부는 거란족의 요(遙)가 지배하고 있었다. 북송과의 전쟁에서 국력을 잃은 요를 여진족 아골타가 세운 금나라가 정복한다. 금은 요와 달리 북송의 개봉을 점령하고 황제 휘종을 포로로 하였다. 이 때 북송은 공식적으로 멸망된다. 그러나 휘종의 동생이 무리를 이끌고 절강성 임안(臨安 지금의 항주)에 임시 수도를 정하고 송을 이어가니 그가 남송의 초대 황제인 고종이다.

칭기즈 칸은 3남 오고타이와 함께 금의 중도(中都 지금의 북경)를 점령하고 개봉을 함락함으로서 금은 몽골에 흡수된다. 중국 대륙 전체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남송까지 멸망시켜야 했다. 한편 몽골에서는 칭기즈 칸 사후 3남 오고타이가 몽골 고유의 말자(末子)상속의 불문율을 어기고 왕위 계승자인 말자 톨루이를 물리치고 2대 칸이 된다. 그 후 오고타이가 갑자기 죽자 그의 아들 구유크가 아버지를 이어 3대 칸이 된다. 그러나 구유크 칸도 2년 만에 죽자 삼촌에게 칸을 빼앗긴 톨루이의 큰 아들 몽케가 재빠르게 권력을 잡아 몽골제국의 4대 칸이 된다.

몽케는 후라구에게 서쪽의 바그다드와 시리아를, 막내 동생 아릭부케에게는 수도(카라코람)를 맡기고 자신은 바로 아래 동생 쿠빌라이와 함께 남송 정벌에 나선다. 그러나 남송 정벌에 나선 몽케가 역병을 얻어 죽는다.

칸 몽케가 죽자 말자상속을 다시 내세운 아릭부케가 수도에 위치하고 있는 유리한 조건으로 칸으로 등극한다. 그러나 말자상속의 제도가 깨진 상황에서 남송정벌의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형 쿠빌라이가 응할 리 없었다. 쿠빌라이는 지금의 북경 근처의 우호세력과 연대하여 스스로 칸으로 추대된다. 몽골제국은 일시적으로 두 사람의 칸이 등극했다. 결국 4년간의 내전 끝에 쿠빌라이의 승리였다. 풍부한 전략 물자의 공급원인 화북지방을 세력권에 둔 쿠빌라이가 승리할 수밖에 없었다.

1276년 쿠빌라이의 부하 바이얀은 남송의 방위선을 뚫고 수도 임안으로 진격하여 남송 공제(恭帝)의 항복을 받았다. 황제의 나이 6세였다. 2년 전 불과 4세로 황제가 되어 재위 2년 만에 몽골에 항복한 것이다. 역사에서 남송은 공제로서 끝난다. 홍콩의 구룡 유래는 공제이후의 이야기이다.

바이얀에 의하여 남송이 멸망되지만 남송의 충신 3명은 몽골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남송의 3걸로 불리는 육수부 장세걸(張世傑) 문천상(文天祥)은 공제의 아버지 도종(度宗)의 서자인 두 어린 아들 익왕(단종)과 위왕을 안고 배를 타고 복건성(福建省)으로 달아난다. 몽골은 바다에 익숙하지 못해 추격을 하지 못한다. 충신들은 복건성에서 7세의 익왕을 황제로 즉위시킨다. 익왕은 공제의 배다른 형(庶兄)이다.

당시 복건성의 천주(泉州)에는 인도와의 후추 무역으로 큰돈을 번 색목인 호족 포수경(蒲壽庚)이 있었다. 그는 이슬람교도의 아랍상인이었다고 한다. 육수부는 천주를 남송의 임시 수도로 정하고 포수경의 협력을 얻어 수군을 정비, 물에 약한 몽골과 장기 항전을 꾀한다. 그러나 몽골의 바이얀은 가만있지 않았다. 오히려 포수경을 포섭하여 남송에게 등을 돌리게 한다. 정보에 빠른 무역상 포수경은 사태가 돌아가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장래가 없어 보이는 남송을 버리고 몽골제국을 선택한다. 오히려 천주의 남송 왕족을 몽골에게 넘겨주어 충성을 보이기도 한다.

포수경에 배신당한 육수부 장세걸은 수군을 이끌고 다시 남쪽으로 피해야 했다. 문천상은 바이얀과 강화협상을 위해 복건성에 남겨둔다. 다음 행선지는 광동성이다. 광동성의 구룡반도가 육지의 끝이다. 당시 홍콩은 무인도 바위섬이었다. 구룡반도의 해안에 황제 단종(익왕)과 그의 동생 위왕이 나와 놀던 곳이 송왕대이다. 단종은 1278년 9세 때 사망한다. 광동성으로 이동할 때 배가 전복되어 물에 빠져 위험한 고비가 있었는데 단종의 사망은 그 후유증이었다. 단종이 사망한 후 육수부와 장세걸은 홍콩의 란타오 섬에서 6세의 위왕을 황제로 즉위시킨다. 그가 마지막 황제이다.

최후의 격전의 시기가 왔다. 홍콩 근처의 애산에서 2만의 남송수군과 색목인 관료로 발탁되어 원의 수군 사령관이 된 포수경이 이끄는 25만 수군과의 일전이었다. 육수부는 마지막까지 선상에서 어린 황제에게 제왕학인 대학을 가르치면서 태연하였다. 그러나 중과부족으로 전세가 불리하자 육수부는 황제와 함께 물로 뛰어 든다. 1279년 황제 나이 7세로 재위 1년 만이었다. 광동성의 남단 심천에는 육수부가 어린 황제를 업고 있는 상이 있다. 육수부가 이러한 모습으로 황제를 업고 바다에 뛰어 들었는지 모른다. 혼자 살아남은 장세걸은 해남도 쪽으로 도망가다가 태풍을 만나 최후를 맞이한다.

포수경은 역사에 다시 한 번 나타난다. 몽골제국이 일본을 정복하기 위해 동로군을 조직 고려군과 함께 마산에서 출발할 때 중국 영파에서는 남송의 수군을 모아 만든 강남군이 결성되었다. 강남군의 선봉이 포수경이었다. 포수경은 후에 몽골제국의 지원으로 천주를 국제 무역항으로 발전시켜 중국의 대외 무역의 거점으로 발전시킨다. 그러나 100년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은 바뀐다. 원을 몽골 고원 밖으로 쫓아내고 명을 건국한 주원장은 몽골에 부역한 포씨 일족을 체포하여 노예 신분으로 만들었다.

이야기를 마친 노교수는 한동안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지명에서 시작 되어 연상 된 여진족 금과 몽골의 원 등 북방 오랑캐의 침략에 의해 북송과 남송이 차례로 멸망된 슬픈 역사로 마음이 무거워 진 것 같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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