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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단과 청중이 인정한 지상 최고의 테너가 온다

시대를 대표하는 성악가의 최전성기를 국내 무대에서 확인하기란 지금까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1977년 마흔둘에 처음 한국을 찾은 파바로티와 1991년 쉰에 첫 내한공연을 가진 도밍고를 공연장에서 봤다면 세월이 지나도 두고두고 그날의 기억을 추억하고 자랑할 수 있으리라.

음악 관계자와 동료는 물론 그를 본 평단과 청중이 공히 ‘현존 최고의 테너’로 칭송한 지 십 년이 다 돼가는 테너가 6월 7일 예술의전당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갖는다. 요나스 카우프만(46). 그동안 변변치 않은 실력인데도 ‘지상 최고’의 꼬리표가 붙은 가수들의 실체를 접하면서 실망도 많이 했던 한국 관객에게 카우프만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지, 이번주면 판가름이 난다.

1990년 파바로티·도밍고·카레라스의 ‘스리 테너’ 콘서트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자 성악 비즈니스계는 슬며시 ‘포스트 스리 테너’ 마케팅을 개시했다. 언제나 젊은 테너의 출현을 기다리는 오페라 팬들에게 미디어는 끊임없이 후계 구도를 그려줬고, 2007년 파바로티가 타계하자 ‘월스트리트 저널’이 계승자를 열거했다. 리치트라, 보첼리, 비야손, 바르가스, 알바레스, 알라냐의 이름이 올랐고 끄트머리엔 카우프만도 거명됐다. 메이저 레이블 데카의 대변인 리암 토너는 “카우프만에게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밝혔다.

데카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15년, 카우프만과 위의 다른 가수들과의 차이는 확연해졌다. 개중에는 화가 나서 공연 중간에 무대에서 도망친 이도 있고, 연출가·지휘자와 다투거나 목소리에 부적합한 역을 소화하다 부상을 당하고 대중가수로 전향한 경우도 있다.

지난 1월 영국 로열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공연을 위해 런던에 머물던 카우프만을 코벤트가든 극장에서 만났다. 1969년 뮌헨에서 태어난 그는 “휴식일인데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느라 약속에 늦어 미안하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조각 같은 얼굴과 탄탄한 근육으로 단련된 몸매는 마흔 중반의 그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스리 테너’가 전성기에도 갖지 못한 피지컬이다. 오페라 극장에 여성 관객이 앞자리에 몰리는 이유다.

모차르트와 바그너, 이탈리아 베리스모 오페라가 주특기이고 독일 가곡인 리트에 특별한 시간과 공을 들인다. 소리를 내면 예상했던 음역의 한계까지 전혀 무리 없이 올라가는데다가 그 이상의 소리도 시원시원하게 뻗어가는 지속성이 파바로티의 상쾌함과는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낮지만 안정적인 바이브레이션에선 청년 시절 도밍고와 유사점을 찾는 애호가도 많다. ‘홀의 천장을 날릴 만한 파워’라는 리뷰가 정론지에 오르고, 바그너 악극을 올리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초청되면서 영웅적인 모델을 전문으로 하는 ‘헬덴테너’의 칭호도 자연스레 함께한다.

데뷔 초기엔 발성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성악 코치의 도움으로 힘을 빼고 부르는 법을 익히면서 “세상을 얻은 것 같다”고 했다. 오랜 조연 생활 끝에 2006년 뉴욕 메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센세이셔널한 성공이 지금의 카우프만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오랜 경력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이 ‘겸손’이다. 그는 “성공에 취해 자만한 가수들이 어떻게 무대 뒤로 사라졌는지 보면서 겸손을 체화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면서 “언젠가 내려가는 순간 제 2의 전성기가 시작된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가 밝힌 전성기가 바로 지금, 마흔과 쉰 사이다. 카우프만의 한정된 시간을 잡는 프로모터가 부를 얻는다. 2011년 지진을 겪은 일본에선 여러 클래식 공연이 취소된 중에도 카우프만의 공연 무산이 큰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해로 예정된 일본 공연도 갑작스런 부상으로 연기됐다가 6월 내한공연 직전 리트 공연으로 일본을 순회 중이다. 서울에서 오페라의 거성을 만나기까지 이제 일주일 남았다.


런던 글 한정호 클래식 칼럼니스트 imbreeze@naver.com, 사진 세나 SENA Clas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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