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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 직장 업무인 여자

저자: 김려령 출판사: 창비 가격: 1만2000원
‘마지막 밤이다. 남편은 적당히 친절했고, 적당히 거리를 두었다. 이런 남편만 만나면 직장생활 참 편하겠다.’

첫 문장에서 ‘쿨한 이혼’을 떠올렸다면 상상력의 부재다. 스물아홉 살 노인지는 말 그대로 결혼이 곧 직장 생활인 여자다. 결혼정보업체의 비밀 자회사에 입사한 그는 ‘조금 다른 혼인을 원하는’ 회원들의 ‘기간제 아내’로 일한다. 계약 결혼의 제안을 수락하면 1~2년간의 ‘현장 출장’을 떠나며(2번까지 거부할 수 있다), 계약이 만료될 땐 슬리퍼·칫솔 같은 ‘결혼의 찌꺼기’를 모두 버리고 갖고 왔던 트렁크를 다시 싼다. 유일하게 챙기는 결혼 반지가 이미 다섯 개나 된다.

이야기의 설정은 당연히 황당하다. 두 남자를 모두 남편으로 두고 싶어하던 발칙한 아내 인아(『아내가 결혼했다』)를 뛰어 넘는다. 그런 계약이(혹은 사업이) 가능한 것인가, 고급 성매매 아닌가, 그러다 애라도 생기면, 정말 정 떼고 헤어질 수 있어 등등의 삐딱함이 안 생길 수가 없다.

이를 잠재우는 건 김려령이라는 이름 석 자다. 그가 누구인가.『완득이』『우아한 거짓말』로 대표되는 작가의 전작은 세상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반하는 시선을 담아냈다. 외국인 노동자나 장애인, 결손가정 아이들도 얼마든지 유쾌하고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완득이』), 편모·편부 가정이 아니라 문제적 가정이 트러블 메이커를 만든다는 걸((『우아한 거짓말』) 보란듯이 이야기했다.

그러면서도 핏대를 세우지 않았다. 마치 두 어깨를 살짝 들어올리며 ‘이러면 안 돼?’라는 것처럼.

그러니 계약 결혼 역시 마찬가지다. 배우자를 임대하는 세상이 말도 안 된다고 하기 전에, 대체 왜 필요한 건지를 따져 묻는다. 인지는 ‘사랑, 그거 안 해도 좋으니까 가만히 있는 사람 건드리지나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연애 냉소주의자다. “애인은 있니?” “연애는 왜 안 하니?” 같은 말은 그에게는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무책임한 폭력이다. 정작 그가 사랑에 빠졌을 때 어땠는가. 동성애자에서 자신을 만나 양성애자로 변한 남자친구를 두고 엄마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 더 더럽다”는 말로 이별의 결정타를 날린다.

‘이것이라 분명한’ 이성 결혼이라고 딱히 나은 건 없다. 말 끝마다 자식들 때문에 산다며 이혼을 회피하는 부모나 스무 살에 부모가 되어 그 나이에 누려야 할 것들을 놓친 옆집 오빠네 부부나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차라리 ‘젊은 오빠’의 물건을 팔아 주며 남 눈치 안 보고 사는 옆집 할머니가 낫다. 그 와중에 인지의 회사 선배는 왜 배우자 임대 사업이 생겨날 수 있는가를 말해준다.

“법적 결혼을 하면 사는 것보다 헤어지는 게 더 복잡하고 피곤하거든. 상대한테 치명적인 실수가 없으면 순탄하게 끝낼 수가 없어. 하지만, 같이 사는 사람이 싫은데 더 큰 이유가 있나. 만나고 헤어지는 것에 자유롭고 싶은 거야.”

인지도 관습적 결혼의 빈틈을 공감하는 바다. “사랑을 어떻게 몇 개의 틀로 단정할까. 인간이 한 오백 년 살았으면, 그러면 남들처럼만 살다 죽는 일은 없을 텐데. 철회하고 방향을 틀 시간이 부족하다.”

허나 그의 결혼이라는 업무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계약 남편은 10년 전 그를 도운 뜻깊은 인연으로 밝혀지며 비로소 몸이 절정으로 교감하고, 여고시절부터 단짝친구로만 알던 시정은 우정을 넘어서는 사랑을 고백해 온다. 작가가 하고픈 이야기는 어쩌면 지금부터가 아닌가 싶다. 이것은 어떤 사랑일까. 그는 이제 진짜 결혼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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