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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와 이별 아쉬워 말자, 삶의 혁신 과정이니까

직장이 바뀐다는 것은 이방인이 된다는 뜻이다. 처음 보는 얼굴들, 달라진 업무시간, 익숙지 않은 공간, 호칭마저 낯설다. 어느 날 나는 넥타이를 매고 있는 사람이 주변에 혼자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슬며시 넥타이를 풀어 버렸다. 내친김에 나도 ‘운도남’ 대열에 합류했다. 운동화를 신은 도시의 남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넥타이와 구두 대신 간편복 차림이다. 가르치는 과목이 실용학문이어서 가급적 학생들과 거리를 좁혀보자는 뜻이고, 그렇게 하면 혹시 ‘동족’으로 대접받을까하는 기대감도 없지는 않았다.

얼마 전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의 남편 장례식 사진을 보다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1700여 명의 조문객 가운데 단 한 명도 넥타이를 맨 사람이 없었다. 미국의 조문 관습에 비춰보면 무척 이례적인 광경이었다. 하버드 대학출신에다 미국 재무장관 비서실, 구글, 페이스북에 이르기까지 성공신화를 써내려간 그에게 남편이 러닝머신에서 넘어져 숨지는 황당한 사고가 일어났다. 그는 넥타이 없는 의식을 치르려는 취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데이브가 생전에 넥타이를 증오했기 때문에…”

데이브는 그의 남편이자 서베이몽키 CEO 데이비드 골드버그를 말한다. 나는 이 소식을 접하면서 2006년 뉴욕에서 치러진 위대한 예술가 백남준의 장례식 장면이 떠올랐다. 존 레넌의 부인 오노 요코를 비롯한 400명의 참석자들은 옆자리에 앉은 조문객의 넥타이를 자르는 깜짝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는 백남준이 1960년대 독일에서 작품 발표를 하다 갑자기 청중석에 있던 스승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잘라버렸던, 예술계의 일대 사건을 재현한 것이다. 백남준에게 그 넥타이 퍼포먼스는 스승을 모독한 것이 아니라 한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의미였다.

본고장 유럽서도 탈넥타이 가속화

백남준의 영향 때문인지 베를린에는 특이한 규칙을 가진 클럽이 있었다. 중년층이 주요 고객인 이 클럽에서 남자들은 넥타이를 착용해야 하는 것이 첫 번째 규칙이다. 파트너 선택 권한은 오로지 여성에게만 주어졌다. 마음에 든 남성을 발견하면 가위로 넥타이를 자르기만 하면 되었고, 그 남성은 무조건 춤 파트너가 되어야 하는 게 두 번째 규칙이었다. 덕분에 이 클럽은 여성 손님들로 호황이었다.

유럽 넥타이 문화의 역사는 350년이 넘는다. 크로아티아 군인이 한 것에서 발단이 되어 프랑스 루이 14세 때 본격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 유럽에서조차 탈(脫)넥타이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빠른 곳이 독일이다. 1990년대 중반 처음으로 독일에 가게 되었을 때 내 눈에 인상적으로 비친 것은 아우토반이나 벤츠 자동차가 아니라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는 일선 공무원들의 차림새였다. 독일이라고 하면 규율과 제복을 상상하고 있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미 ‘68 학생혁명’ 이후 넥타이는 격식과 질서, 억압과 숨막힘을 상징하고 있었던 것이다. 독일 넥타이와 실크산업의 중심지 크레펠트에서는 30년 전에 40여 개나 되던 넥타이 제조업체가 현재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나마도 아웃소싱 생산방식이다.

넥타이 기피현상이 가장 두드러진 곳은 스타트업이 활성화된 미국 실리콘밸리일 것이다. 10년 전 IT혁명에 관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그곳을 방문했을 때, 인터뷰 대상 가운데 단 한 명도 넥타이를 맨 사람은 없었다. 예의상 넥타이를 매고 있던 내가 오히려 이단자였다. 단색 정장차림으로 유명한 일본조차 2005년부터 ‘쿨 비즈니스(Cool biz)’라고 하여 여름철에는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넥타이 기피현상의 세계화라고나 할까.

기득권과 권위의 상징에서 과감히 벗어나자

어떤 자료에 따르면 넥타이를 매는 방식이 18가지나 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좌우 대칭으로 넥타이를 굵게 묶는 것을 가리켜 풀 윈저 노트(Full Windsor Knot)라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윈저는 미국인 이혼녀 심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한 세기의 로맨티스트 영국의 윈저 공을 말한다. 그는 개성 있는 패션 감각으로도 주목받았다. 종종 멋진 넥타이를 매고 공식석상에 나타났는데, 이는 기득권 포기와 탈권위의 상징으로 여겨져 환호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 넥타이가 기득권과 권위의 상징이 되었으니 역사의 패러독스다.

넥타이는 목(neck)에 묶는다(tie)는 의미다. 여자가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넥타이를 선물하는 것은 ‘넌 내 거야’라는 메타포다. 반면 직장인에게 넥타이는 생명줄이다. 취업 준비생은 넥타이 인생에 합류하길 학수고대하지만, 정작 직장에 들어가서는 하루빨리 이 사슬을 풀고 싶어한다. 넥타이는 어느덧 노예의 사슬이 된 것이다.

넥타이를 볼 때마다 나는 로마시대의 검투사가 떠오른다. 자유와 부를 얻기 위해 생명을 건 결투를 했던 검투사처럼 현대인들도 매일 보이지 않는 전투를 해야 한다. 검투사에게 몸을 보호할 창이 있다면 현대판 검투사에게 그것은 넥타이다. 몸을 의탁할 조직을 말한다. 젊을수록 자유로운 분위기의 직장을 선호하지만, 그런 직장일수록 ‘장점이 곧 단점’이라는 것도 알아야한다. 자유에 엄정한 책임이 따라오고 철저한 성과주의가 수반된다. 자유직업, 지식유목민, 멋진 말이긴 하지만, 자유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남다른 기술, 차별화된 콘텐츠, 전문지식 같은 무기가 없다면 그냥 넥타이를 매고 있는 편이 낫다. 적의 공격 한방에 인생이 훅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의 고통 외면하고 흉내만 내서야

넥타이를 푼다는 것은 결국 자기혁신이 아닐까. 검정색 터틀넥 스웨터와 청바지를 입었다고 해서 스티브 잡스가 아니듯이 후드 티셔츠를 걸쳤다고 페이스북의 저커버그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기업과 리더들이 혁신의 고통은 외면하고 겉만 흉내 낸다. 혁신 없는 넥타이 풀기는 일회성 쇼일 뿐이다.

누구나 언젠가는 넥타이를 풀어야 한다. 퇴근 후 넥타이를 푸는 것처럼, 퇴직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넥타이를 벗는 일이다. 잠시 퇴근했다고 마음을 편하게 먹었으면 좋겠다. 내가 풀어두었던 넥타이를 다시 맨 것은 1년 반이 지나서였다. 수퍼시니어란 결국 넥타이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관능적인 날씨다. 괜히 넥타이와 싸우지 말고 이 계절 즐겨보았으면 좋겠다. 자기학대보다 더 나쁜 것은 없을 테니까.

손관승 세한대 교수(전 iMB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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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