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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그 팟' 보기 흉한 전선줄 뭉치는 내게 맡겨라

산다는 것은 전기를 쓰는 일이다. 전기가 끊겨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 현대인의 삶은 써대는 전기의 양으로 윤택함이 가늠된다.

모처럼 문명사적 진단과 상상을 곁들여본다. 공기와 물처럼 평소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전기는 무한정 공급될 수 있는 것일까. 하늘이 무너질 것을 염려하는 만큼 전기가 끊기는 상상은 쓸데없는 것일지 모른다. 적어도 내가 죽기 전까지는.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후손들은 골머리를 앓게 된다. 지구의 온갖 자원을 태워야만 생기는 전기다. 선조가 몽땅 태워버린 자원을 대체할 절실한 고민을 넘겨주어야 한다. 슬슬 미안해지기 시작한다.

뻔뻔하게도 전기를 많이 쓴다. 사용하고 있는 전기 제품을 세어 보았다. 컴퓨터와 주변기기, 조명과 공기청정기…내 책상 주위로 한정시켜도 스무 개가 넘는다. 그 바깥에도 그만큼이 있다. 갑작스런 반성이 든다. 나이 먹을수록 비우고 살아야 한다는 데, 주변 가득한 전기 제품은 어찌할꼬.

반성을 위한 반성은 필요 없다. 전기가 필요 없는 자연인으로 살면 그만이다. 하지만 당분간 자신이 없다. 전기를 써야만 먹고 살 수 있는 내 삶의 구조가 바뀔 조짐을 보이지 않는 탓이다.

컴퓨터 하드 디스크를 교체하기 위해 책상 밑 컴퓨터를 들췄다. 본체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멀티 탭의 전선이 드러났다. 정신이 산란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식의 표현을 하자면 “우동가락처럼 얽혀져 손댈 엄두가 나지 않는 뱀” 같다. 몇 년은 쌓였을 먼지와 책상 뒤로 떨어진 자잘한 잡동사니가 섞여있다. 그토록 찾던 카메라 렌즈의 필터와 나사도 여기서 나왔다. 잃어버렸다 생각했던 만년필도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발견됐다. 책상 뒤편 바닥은 평소 쓰던 사물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았다.

시커먼 전선, 뒷처리가 필요해

쓰고 있는 전기용품들의 디자인은 모두 봐 줄만하다. 예쁘지 않으면 팔리지 않을 테니 온 힘을 쏟았을 것이다. 감추고 싶은 이면의 진실을 바라봐야 한다. 생략할 수 없는 볼썽사나운 전원부의 처리다. 지금까지 봤던 제품 가운데 애플 정도가 그나마 신경 쓴 것 같다. 애플도 기껏 전선의 색깔과 전원 어댑터 디자인을 달리했을 뿐이다. 제 아무리 대단한 디자이너도 시커먼 전선의 처리까지 해결하진 못했다. 기막힌 미인이 시커먼 꼬리를 달고 다니는 상상을 해보라. 난 뒤태까지 깔끔하고 예쁜 미인이 좋다.

안전한 전기용량의 확보를 위한 전선의 굵기는 만만치 않다. 낮은 전압과 전류를 흘리는 스마트 기기의 전원선은 가는 대신 길다. 흰색과 검은 색 굵기가 다른 여러 전원선이 섞여있는 콘센트 주변은 복마전으로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일부러 보지 않는 한 눈을 감고 싶을 정도다.

이토록 정신없이 널려져 있는 전선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물건이 없다는 게 이상했다. 기껏 전선을 묶어주는 케이블 타이나 벨크로 천을 본 것이 전부다. 전선을 가지런하게 묶어 정리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형태가 다른 전원 플러그와 직결 방식의 전원 어댑터가 물려진 멀티 탭의 지저분함은 어쩔 것인가.

오랫동안 멀티 탭 주변의 어지러움은 보기 싫어도 참아야했다. 찾아보면 방법이 생길지 모른다. 한꺼번에 많은 플러그를 꽂을 수 있도록 6구의 일반용 대신 12구 멀티 탭을 구했다. 길이가 거의 70cm에 이른다. 방송용으로 사용되는 더 긴 24구 멀티 탭도 있다. 멀티 탭이 너무 길어지면 문제가 생긴다. 늘어난 길이만큼 본체와의 연결 거리가 짧아지는 탓이다. 편리를 위한 선택은 외려 불편했다. 메인 멀티 탭에서 분가시킨 6구 단위의 멀티 탭을 용도별 전원으로 구분시키게 된다. 이전보다 전선 주변은 깔끔해졌고 사용의 편리함도 나아졌다.

이것으로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매일 쓰는 스마트 폰과 수시로 충전하는 카메라 배터리는 눈에 잘 띄어야 한다. 책상 옆 보조 테이블이 제격이다. 가는 폭의 멀티 탭은 주렁주렁 달린 플러그와 어댑터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다. 이번엔 제멋대로 휘어지고 비틀어지는 멀티 탭을 가려야 했다. 보완을 위한 보완은 복잡함만 더했다. 쓸데없음의 쓸데 있음을 외치던 나도 쓸데없는 멀티 탭의 짜증이 짜증으로 바뀌었다.

시각적 불편함을 넉넉함으로 가리다

‘플러그 팟’의 발견은 오랜 불만을 해소시켰다. ‘나인 브리지’라는 국내의 중소기업에서 만든 수납형 멀티 탭이다. 보기 흉한 전선과 전원 아답터를 ‘플러그 팟’ 내부에 집어넣어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5.2리터의 용적은 웬만한 전원부를 담아도 넉넉할 만큼 여유가 있다. 다섯 개의 전기제품은 내부 콘센트에 꽂아 쓰면 된다. 외부로 드러난 한 개의 콘센트는 수시로 꼽았다 뺐다 해야하는 전기 제품을 쓰도록 설계했다. 상판엔 개별 스위치를 달아 필요한 기기를 작동시키면 된다.

‘플러그 팟’은 사람들이 느꼈을 불편을 흘려버리지 않았다. 누구라도 한 번쯤 떠올렸을 개선의 필요를 현실화시킨 것이다.

이와 비슷한 물건은 몇 회사들도 만들고 있다. 일본의 디자인 회사가 만든 제품들도 눈에 띈다. 물건을 받아들고 보니 ‘메이드인 코리아’가 분명히 찍혀있다. 기획과 생산 유통까지 함께하는 것이다. 솔직히 반가웠다. 순 국산의 신뢰가 이젠 자부심으로 다가온 덕분이다.

테이블 위에 얹어 놓은 ‘플러그 팟’은 매끈한 질감의 간결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지긋지긋했던 전선의 어지러움은 통속에 갇혔다. 기기는 오랜만에 뒷 꽁무니의 거북스러움을 벗어 던졌다.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간결한 디자인의 매력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느낌이다. 디자이너 또한 자신의 불편했던 체험을 녹여냈을 것이다.

기능을 대체하는 방법이란 여러 가지다. 기능을 품은 아름다움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직접 겪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원인의 이해가 형태로 드러났을 것이다. 이 제품은 2013년 ‘레드 닷’ 디자인상을 받았다. 어쩐지 뭔가 다르다는 느낌은 이유가 있었다.

‘플러그 팟’을 쓰면서 문제가 된다면 꽤 큰 부피다. 보기 싫은 전선을 가려준 대가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하나가 불거지는 게 사람 사는 일이다. 그래도 괜찮다. 충전하기 위해 상판에 올려놓은 스마트 폰은 눈에 잘 뜨인다. 평소 칠칠치 못해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을 때가 많았다. 이제 잊어버리지 않는다. 있을 곳은 ‘플러그 팟’위 뿐이니까.

윤광준

윤광준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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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