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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으로] 영토 93㎡ ‘뒷마당보다 작은 나라’ … 공주 되고 싶은 딸 위해 만든 왕국

① 엔클라바 ‘세계 시민 헌장’ ② 리버랜드 ③ 북수단 왕국 국기를 배경으로 딸의 공주 즉위식을 거행한 히튼 ④ 발명가가 국가로 선포한 노스덤플링 섬 ⑤ 빙산공화국 국기를 꽂는 그린피스 대원들. [각 홈페이지]
“내 이상향은 누구에게도 착취당하지 않고 자급자족으로 사는 거야.”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남쪽으로 튀어!』에는 국가의 통치를 거부한 채 일본 남쪽 바닷가 이리오모테(西表島)에서 염소를 키우며 사는 가족이 나온다. 한국에서 영화로 리메이크된 『남쪽으로 튀어』 주인공들은 TV 수신료나 국민연금 납부도 거부한다. 이들은 간섭도 분쟁도 없는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런데 소설 속에 나올 법한 ‘초(超) 미니국가’는 실제로 존재한다. 지난 15일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는 발칸반도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경계선에 ‘엔클라바 왕국’이 세워졌다. 영토는 92.9㎡(약 28평)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뒷마당보다 작은 나라가 유럽에 탄생했다”고 보도했다.

 분쟁에 지친 폴란드 청년 피오트르 바브리진키에비치와 친구들이 “세금 걱정 없이 공부하고 인종·종교 분쟁 없는 나라를 만들자”며 뜻을 모았다. 엔클라바 헌장에는 “우리에겐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모두 자유인이다”고 되어 있다. 국민이 되겠다고 5000명이 인터넷(enclava.org)에 신청했고 137명이 자격을 얻었다.

 이처럼 개인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소형 국가를 ‘초소형 국가체(Micronation)’라 부른다. 국제법상으로 국가는 아니다. 현재 초소형 국가체는 70개 이상이 존재한다. 이들엔 국기·여권·우표·화폐·국가·법률이 있다. 이들은 기존 국가의 통치 방식에 반기를 들고 독립을 선언하거나 개인적인 바람을 이루려고 나라를 만든다. 주인 없는 땅을 선점해 국가로 선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영토 없이 인터넷상에서만 나라를 만들거나 우주에 자신의 나라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4월 13일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국경 근처 빈 벌판에는 리버랜드라는 국가가 생겼다. 두 나라가 서로 자국 영토라 다투다 24년간 임자 없는 땅이었던 7㎢(211만 평)를 영토로 삼았다. 체코의 반(反) 유로 정당인 ‘자유시민당’ 당원 비트 예들례카가 주인을 자처했다. 그는 “국민 주머니에서 돈을 빼앗는 정부가 불만스러웠다”며 설립 배경을 밝혔다. 국민이 되려면 ▶전과가 없을 것 ▶나치즘과 공산주의를 배격할 것 ▶타인의 생각과 사유재산 존중 등의 조건을 만족하면 된다. 홈페이지(liberland.org)를 개설하고 국민을 모집했는데 25만 명이나 신청했다. 공용 통화는 디지털 화폐인 비트코인, 에너지는 태양광 패널을 통해 자급자족한다.

 지난해 미국 버지니아주에 사는 세 아이의 아빠 예리미야 히튼은 공주가 되고 싶다는 딸 에밀리의 소원을 이뤄주려 초소형 국가를 만들었다. 아프리카 이집트와 수단 국경지대에 위치한 ‘비르 타윌’(아랍어로 ‘깊은 우물’이란 뜻)이란 곳을 찾아내 ‘북수단 왕국’으로 선포했다. 1902년 이래 소유주가 없는 상황이었다. 땅을 알아보는 데는 3000달러(약 327만원)가 들었다. 에밀리의 7번째 생일, 히튼은 아이들이 디자인한 깃발을 비르 타윌에 꽂았다. 친구들에게는 딸을 에밀리 공주로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메이저 영화사 월트디즈니컴퍼니가 ‘딸 바보’ 아빠의 스토리를 ‘북수단 왕국의 공주’라는 영화로 기획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세계 최초의 휴대형 인슐린 펌프와 로봇 의수, 전지형 휠체어 등을 발명해 ‘21세기의 에디슨’으로 불리는 미국인 발명가가 초소형 국가로 선포한 섬도 있다. 미국 코네티컷주 피셔스아일랜드에 있는 노스덤플링 아일랜드의 주인 딘 카멘은 섬에 풍력발전기를 설립하려다 불허되자 섬을 국가로 선포해 버렸다. 카멘은 절친한 사이인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동의를 얻어 장난스럽게 미국과 불가침 조약을 맺기도 했다.

 세계 여행 안내서를 펴내는 론리 플래닛은 여행 정보서 『마이크로네이션』에서 각양각색의 국가를 소개한다. 1989년 뉴질랜드에 세워진 왕가모모나 공화국은 염소가 대통령으로서 통치했다. 빌리 검부트라는 이름의 염소는 다른 후보들의 표를 다 먹어 치워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염소는 18개월간 통치한 뒤 세상을 떠났다. 타이라는 이름의 푸들은 2003~2004년 대통령 재직 당시 하도 성질이 더러워 암살 위기를 겪었고 1년 만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가장 오래된 초소형 국가로는 954년부터 존재한 이탈리아의 공국(公國·군주의 작위가 공작인 나라) 세보르가가 꼽힌다. 1729년 사르데냐 왕국에 병합된 이래 세보르가는 인구 350명의 마을이었다. 그런데 63년 세보르가의 화훼농업협동조합장이던 조르조 카르보네가 공국으로 독립을 주장했고 본인이 조르조 1세로 즉위해 2009년 타계할 때까지 다스렸다.

 자유와 평화를 모토로 한 국가 건설 시도는 꾸준히 있었다. ‘리유니온’은 97년 브라질 법대생들에 의해 세워졌다. 국조(國鳥)는 도도새, 국가 대표 음료는 쑥 등을 원료로 한 술인 압생트다. 환경 보호를 위해 세운 곳도 있다. 지난해 칠레와 아르헨티나 사이 영토 분쟁이 이어지는 지역에 그린피스 운동가들이 세운 ‘서남극 대공국’이 대표적이다. 이 나라는 삼각형 모양의 빙하 나라로 2001년 트래비스 맥헨리가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세웠다. 실제 거주자는 없지만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300여 명이다.

 경찰도 자동차도 없는 히피들의 공화국(덴마크 코펜하겐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니아’), 구(球) 모양으로 집을 지으려다 거부당해 국가를 세워버린 오스트리아 빈의 ‘쿠겔무겔(공 모양의 언덕)공화국’ 등도 있다. 오는 7월 이탈리아 페루자에서는 제3회 초소형 국가체 콘퍼런스가 열린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다리오 포의 아들인 야코포 포가 자신이 세운 초소형 국가에서 주최하는 행사다.


[S BOX] 인구·영토·정부·외교력 … 4가지 요건 갖춰야 유엔 회원국

지구상에는 면적이 작아도 국제법상 국가로 인정받는 초소형 국가가 존재한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는 이탈리아에 위치한 바티칸 시국(0.44㎢)으로 경복궁의 1.3배 크기인 초미니 국가다. 인구는 약 900명이지만 가톨릭의 상징이자 국제법상 주체다. 1993년 유엔에 가입한 모나코 공국(1.5㎢) 역시 어엿한 국가다. 1927년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를, 1939년에는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내에 있는 또 다른 초미니 국가는 산마리노 공화국(61㎢)이다. 면적이 서울의 10분의 1이다. 산마리노 공화국은 4세기 종교 박해를 피해 도망친 석공(石工) 성 마리누스가 세웠다. 1992년 유엔에 가입했고 유네스코 회원국이다.

 초소형 국가가 유엔 회원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933년 나온 ‘국가의 권리의무에 관한 몬테비데오 권리 및 의무 공약’에 규정된 국가(statehood)의 요건은 다음 네 가지다. ▶지속적으로 거주하는 인구 ▶정의된 영토 ▶정부 ▶타 국가와 관계를 맺는 능력(외교력)이 그것이다. 유엔 총회에서 회원국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러시아·미국·영국·프랑스·중국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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