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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길!] 구호자금의 1%라도 재난 대비에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
어느 동네에 갑자기 지진이 나서 집과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면, 누가 그 건물 더미에 갇힌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까? 당연히 멀리서 온 외국인 구조대가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다. 외부 단체가 수색과 구조의 골든타임인 재난 발생 일주일 안에 현장에 접근하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네팔만 보더라도 본국에서 구호팀을 꾸려 비행기로 카트만두까지 가는 데만 최소한 이틀은 걸릴 테고 장비가 많다면 공항 통과에도 무한정 시간이 걸릴 거다. 조그만 공항에 유엔과 비정부기구(NGO) 등 300여 개의 크고 작은 단체들이 수천 명의 긴급구호요원과 어마어마한 물자와 장비를 한꺼번에 보내고 있으니 그 공항이 얼마나 붐비고 일 처리가 얼마나 더딜지 불 보듯 뻔하다. 공항을 나와서도 길과 통신시설이 파괴된 지진 피해 지역까지 가는데 또 며칠이 소요될 터다. 최첨단 장비를 갖춘 국제 대원들이 이렇게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는 동안 간신히 살아남은 동네 사람들은 매우 열악한 장비로 수많은 사람을 살려내고 있는 거다.

 이런 현지 주민들이야말로 7.8 강도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자 수많은 목숨을 살린 이름 없는 영웅들이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 돕고 의지하며 온몸으로 어려운 상황과 맞서 싸우는 800여만 명의 이재민 역시 용감한 전사들이다.

 재난 발생 직후 월드비전의 현지 직원이 현장에서 이런 소식을 전했다. 지역 주민들은 아무 장비 없이 맨손으로 건물 더미를 걷어내 사람을 구하고 동네 가게에서는 물건 값을 전혀 올리지 않았으며 집을 잃고 부상당한 사람들을 위해 피해가 적은 집에서는 기꺼이 안방을 내준다고 말이다. 이런 소식이 내게는 하나도 신기하게 들리지 않았다. 지난 15년간 이란·파키스탄 등 수많은 지진 현장에서 흔하게 봤던 일이기 때문이다.

 재난민들의 노력만이 아니다. 네팔 정부도 재난 발생 초기부터 네팔 병력의 90%를 투입하며 구호에 총력을 기울였고 네팔 적십자나 지역 NGO들도 맹활약을 했다. 국제구호 혹은 인도적 지원 교과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재난 대응의 1차 책임은 재난지역 주민들과 그 해당 국가다. 다만 그 재난이 해당 국가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도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일 때 국제사회는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재난민들의 생명을 구하고 고통을 경감시키며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게 하며 구호 상황에서도 재난민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서 인도적 지원(humanitarian Assistance)이라 부르는 이 분야의 키워드는 지원(assistance)이다. 즉 국제사회는 재난 대응의 주인공이 아니라 보조 역할을 할 뿐이라는 거다.

 그런데 네팔 재난에 관한 국내외 기사를 살펴보면 주인공과 조연의 주객전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CNN이나 BBC 등 국제 언론은 이 주인공들을 무력하게 외부 도움이나 기다리는 사람들로 비추면서 유엔이나 국제 NGO 등 국제사회가 아니면 구호와 복구가 불가능한 것처럼 말하고 있질 않은가. 국내 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때문인지 대형 재난이 날 때마다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 텐트라도 치며 돕겠다는 사람이 꼭 있다. 며칠 전에도 산에 같이 다니는 친구가 나는 학교 공부 때문에 네팔에 못 가니 자기라도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정말로 갈 기세였다. 나는 체계화되고 전문화되어야만 효과적인 긴급구호를 할 수 있는 현장에서는 그런 개인적인 의지와 선한 마음이 도움은커녕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 직접 가는 대신 비행기 값과 체류비를 구호단체에 기부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주었다. (현장에서 이런 사람들을 ‘재난 구경꾼’이라고 부른다는 말까지는 차마 못했다.)

 물론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금과 물자, 숙련된 국제 인력들은 재난 구호와 복구에 크게 도움이 된다. 특히 네팔처럼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국제사회는 네팔의 긴급구호와 재난 복구에 20억 달러(약 2조1000억원)가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막대한 외부 지원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정도의 구호활동 기간과 함께 끝난다.

이들이 썰물처럼 나가버린 자리에 누가 남는가? 바로 현지 주민들이다. 내 경험과 배운 이론으로 볼 때 구호활동은 외부단체가 외부 자금과 인력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하다 끝나면 싹 빠지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현지인들과 의논하고 합의해서 해야 한다. 또한 당장 필요한 물, 식량, 보건 의료, 피난처를 지원하는 긴급구호와 더불어 현지인의 재난 대비를 위한 조기 경보시스템 구축, 주민 훈련 등 재난위험경감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네팔 대지진 총 소요 구호자금 20억 달러 중 1%만 이런 프로그램에 써도 대단히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지진 재난지역 주민들이 심폐소생술을 할 줄 알았다면, 맨손 대신 곡괭이를 사용했다면 훨씬 많은 사람을 건물 더미에서 살렸을 거예요.” 네팔 현지 직원의 이 한마디가 한 달째 귓가를 떠나지 않고 있다.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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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