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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뭐, 컵라면이 잡혀 갔다고?”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지난해 이맘때의 일이다. 웨이보나 웨이신(we chat) 등 중국의 모바일 공간에 알듯 모를 듯한 글들이 올라왔다. ‘캉스푸가 진열대에서 사라졌다(康師傅下架了)’는 제목의 단문들이었다. ‘확실하냐’고 되묻거나 ‘나도 소문 들었다’는 댓글이 주렁주렁 달리고 퍼나르기 속도가 빠른 걸 보면 핫 뉴스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좀 있다 다시 찾아보면 그런 글들은 이미 지워진 상태였다. 이런 수수께끼 같은 현상이 한동안 반복됐다.

 ‘캉스푸’는 중국에서 인스턴트 라면의 대명사로 통용되는 브랜드 명칭이다. ‘샤자(下架)’는 진열대에서 내려놓는다는 뜻인데 고위 관직에 있던 사람이 사법기관에 잡혀가는 등의 이유로 자취를 감춘 경우에 쓰이기도 한다. 캉스푸는 버젓이 수퍼에서 팔리고 있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중국인 친구가 빙긋이 웃으며 “‘캉’자를 봐도 떠오르는 게 없느냐”고 되물었다. 아뿔싸,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캉스푸는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을 가리키는 은어였다. 시중에 무성하던 저우의 체포설을 당국의 검열을 피해 표현한 것이다. 네티즌들이 저우의 실명을 ‘당당하게’ 쓸 수 있게 된 건 당국이 체포·조사 중이란 사실을 공식 발표한 뒤부터였다.

 ‘5월 35일’은 한때 중국의 인터넷 공간에만 존재하던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그레고리 역법을 무시하는 이 표현은 ‘6월 4일’이라 쓰면 인터넷에서 모조리 삭제되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1989년 천안문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날을 가리키는데 지금은 ‘5월 35일’도 삭제 대상에 포함됐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네티즌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암호가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6월이 가까워오면 정·사복 차림으로 천안문 광장 주변을 살피는 공안과 무장경찰들의 발걸음이 바빠지듯 인터넷 공간을 단속하는 당국의 감시망도 한층 강화된다. 아무나 글을 올릴 수 있는 인터넷이 이럴진대 당국의 검열을 거치는 중국 신문은 오죽하랴. 종이가 뚫어질 만큼 예리한 눈빛으로 행간을 읽어내지 못하면 진짜 뉴스를 놓치기 십상이다. 알아야 할 정보의 80%는 공개 자료에 이미 나와 있다는 정보기관의 금언도 중국에선 통하지 않는다.

 나는 일본에서도 특파원으로 일한 적이 있어 해외취재에 익숙하다고 자부하지만 중국은 취재환경이 판이하다. 중국의 권부 중난하이(中南海)는 물론 대부분의 중요 기관이 기자들의 접근 범위 밖에 있다. 아무리 개혁·개방을 해도 지하정당 시절부터 몸에 밴 공산당의 비밀주의는 변함이 없다. 기자회견에서 정부 당국자들이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속 시원히 확인해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자니 제대로 된 소식을 알아내려면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 귀를 쫑긋 세우고 부지런히 발품 팔며 내 눈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런데 가만, 이건 수습기자 시절부터 따갑게 들어온 철칙이 아니던가. 한동안 잊고 지내던 기자의 초심을 되살려 준 중국의 취재환경, 불평을 해야 할지 감사를 해야 할지….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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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