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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생각지도]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맙시다

이훈범
논설위원
한 달 전 그리스 델포이 신전까지 들먹여가며 글을 썼었다. 신전 입구에 새겨있던 경구 “너 자신을 알라”를 우리네 공직 후보자들이 가슴에 새겼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자신을 냉정히 돌아보고 덧없는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말이었다. 공연히 나섰다 청문회에서 개망신하고, 쓸데없이 국력을 낭비하며, 백성들 열불 나게 만들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만 있어서는 이 땅의 벼슬자리가 모두 채워질 수가 없는 거였다. 공직 제안을 받은 사람 열의 아홉이 손사래 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짐작은 했었다. 그래도 찾아보면 왜 없겠나 했는데 아니었다. 정말 인물이 없는 거였다. 그래서 더 나을 것도 없는 사람으로 바꾸기 위해 먼 길을 돌고 돌아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야 알았다. 이 땅에 “너 자신을 알라”보다 더 급한 말이 따로 있다는 것을. 그것은 “너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라는 것임을.

 그런 눈으로 보니 이 땅에 자기 자신을 얕잡아 보는 인재들이 참으로 많아 안타깝다. 나중에 더 크고 더 귀하게 부름 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구차하게 행동해 스스로 하찮아지는 것이다. “눈앞에 이익이 있을 때 취하는 게 옳은지 따져본다(見利思義)”는 공자님 말씀은커녕 그저 보이는 대로 덥석덥석 물기 바쁘다. 마흔 나이가 되어 후회의 눈물을 쏟고 있는 왕년의 아이돌스타 유승준을 탓할 것도 못된다.

 더 크고 더 귀한 벼슬 길 앞에 선 우리의 총리 후보자도 딱 그렇지 않나 말이다. 그가 장관을 꿈꿨다면 변호사로 17개월 근무하면서 16억원의 수임료를 받는 짓은 하지 않았을 터다. 관행이라고 얘기한다면 지금도 장관(또는 그 이상의) 꿈을 간직한 채 변호사 개업도 안 하고 있는 인사들이 허무해진다. 청문회에서 문제가 됐지만 기부를 약속하고 그는 장관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던 거 같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 드리겠다”던 그였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건 말만큼 행동이 미치지 못했다. 기부한 돈이 1억3000만원 정도 된다는데 그 돈이 결코 작은 게 아니고, 더 이상의 기부를 강요할 수도 없지만 장관이 되기 위해 보여줬던 강력한 실행의지와는 거리가 꽤 있어 보인다. 미뤄보아 알겠다. 청와대 전화벨이 울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총리가 되는 건 꿈도 꾸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만약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었으면 좀 더 폼 나고 요란하게 뭔가 보여줬을 터다. 비슷한 상황이었던 앞서의 검찰 출신 총리 후보도 5억원 가까이 기부하고도 낙마하지 않았나. 종교나 이념 문제도 없었고 평판도 더 좋았는데 그랬다면 분명히 뭔가 학습효과가 있었어야 하지 않나 말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게 더 안타깝다. 그게 다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하찮게 몸을 굴리는 탓이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왜 그리 자신을 그토록 업신여기는지 모르겠다. 스스로 자부심이 있다면 부끄러운 쪽에 눈을 돌리지 않을 테고, 스스로 귀하게 여긴다면 조금 손해 보는 느낌이 들어도 후일의 명예를 기약할 텐데 말이다. 그 후일이란 게 생각보다 먼 때가 아닐 수 있음은, 그리고 그것이 분명 더 큰 이익이 됨은 이번에도 또 한번 여실히 입증됐다.

 우리네 공직 후보자들이여, 그대들은 지금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함부로 행동하지 말기를. 삼가는 마음으로 때를 기다려라. 알아주는 이 없을지 몰라 걱정이라면 당당하게 소문을 내라. 나는 이처럼 능력 있고 깨끗하다고 말이다. 견리사의보다 실천하기 쉬운 공자님 말씀이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인재가 은거하는 게 좋나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좋나요?”라는 제자 자공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팔아라, 팔아라. 나는 살 사람을 기다리겠다.(我待賈者也)” 단, 팔릴 물건을 만드는 게 먼저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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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