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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심상치 않은 북한, 당황스러운 남한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레이디 아스토어가 스탈린에게 물었다. ‘숙청과 처형을 언제 멈출 것이냐?’고. 스탈린이 대답했다. ‘더 이상 필요 없을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스탈린의 광기와 숙청이 시작된 것은 1934년. 그가 통치한 53년까지 소련 공산당의 최고권력 엘리트인 정치국원의 70% 이상이 처형됐다. 소련의 산업화와 군사력을 위해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어느 누구도 그냥 두지 않았다. 개인의 존엄 같은 것은 사치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의 공포정치는 결국 소련을 인간 ‘살육제방(slaughter bank)’으로 변모시켜 버렸다.

 지금 북한이 인간 살육제방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보도다. 스탈린의 망령을 떠올리는 숙청과 처형이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권력 2인자였던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것은 2013년 12월. 이제는 군 서열 2위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까지 숙청, 처형(?)했다는 보도다. 국정원의 발표에 의하면 올해에만 15명의 고위간부가 처형되었으며 김정은 집권 후 지난 3년간 처형된 고위인사는 70명에 이른다고 한다. 공포정치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왜 이런 공포정치가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거론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서른 살 젊은 지도자의 편집병적인 퍼스낼리티 탓으로 돌리는 견해가 적지 않아 보인다. 스탈린의 망령 때문인 듯하다.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가 말했다. 편집병에 사로잡힌 스탈린은 현실과 환상은 물론 적과 동지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은 방법은 하나,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무자비한 피의 숙청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김정은도 스탈린처럼 ‘더 이상 필요 없을 때까지’ 이런 피의 숙청을 계속하는 것은 아닌지 당황스럽고 우려스럽다.

 그러나 북한 역사의 악순환 과정을 보면 단순한 퍼스낼리티 차원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피의 숙청이 늘 ‘반당종파주의’와 밀접한 연관을 맺어 왔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아버지 때와 마찬가지로 김정은도 종파주의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듯 보인다. 김정은이 갑자기 물려받은 북한은 파산국가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파산국가를 살려낼 아이디어나 정책을 현실에 옮겨야 했다. 하지만 나타난 것은 종잡을 수 없이 변덕스러운 정책의 연속이었다. 숙청된 현영철이 ‘젊은 사람이 정치를 제대로 못한다’고 했다는 보도다. 김정은은 이것을 자신의 통치 권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북한 같은 공산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카리스마적 통치 권위다. 그런데 피의 숙청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이 카리스마가 제대로 빛을 발하고 있지 못하다는 방증인지도 모른다. 왜 그는 중요한 숙청 때마다 백두산을 찾고 있는 것일까. 백두혈통의 이데올로기적 정통성이 부식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한 탈북자의 말이 리얼하다. ‘남한에서 기독교 신자들이 죽을 때 성경책을 관에 넣어 주기를 원하듯이 북한에서는 죽을 때 김일성 어록을 넣어 주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북한에서 이런 사람을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라 했다.

 이런 상황 탓인지 우리 사회에서 북한 붕괴론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있다. 광기 어린 피의 숙청이 북한 체제의 막장 드라마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 급변 사태에 대한 대비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는 모양새다.

 물론 북한 사회에서 김정은의 통치에 대해 냉소와 회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스탈린 치하의 소련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서방의 입장에서 보면 소련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히틀러는 소련을 침공하면 스탈린 체제의 소련은 붕괴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소련 사람들이 결사항전으로 스탈린의 소련을 지켜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북한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숙청과 처형, 그리고 굶주림의 지옥 같다. 그래서 제재와 압박으로 좀 더 몰아붙이면 곧 붕괴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위시풀 싱킹이다. 왜냐하면 김정은에 대한 냉소와 회의가 대안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대안적 정치세력의 조직화로 나타나고 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옥 같은 나라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장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다. 이 때문에 선입견이나 위시풀 싱킹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피의 숙청이 계속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혹시 제재와 압박 일변도의 정책이 피의 숙청을 지속시키는 명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전략적으로 짚어 봐야 할 시점이다.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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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