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세상읽기] 국민연금 ‘세대 간 연대’는 ‘희망 고문’ 일 뿐

기자
김종윤 사진 김종윤
[일러스트=김회룡]


김종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국민연금에는 ‘세대 간 연대’라는 정신이 녹아 있다.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의 노후를 책임진다는 철학이다. 이런 정신에 기반한 연금 재정 운영이 ‘부과 방식’이다. 기금을 쌓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보험료를 거둬 은퇴자에게 연금을 주는 시스템이다. 돈 버는 젊은이들이 자신들을 낳고 키워 준 부모 세대를 봉양하는 식이라 ‘세대 간 연대’라는 말이 나왔다. 공적연금을 일찍 도입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부과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제도의 단점은 저출산·고령화가 심해질수록 연금제도가 위기에 빠진다는 점이다. 연금을 받는 고령자는 늘어나는데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가 줄면 방법은 하나다. 더 내야 한다. 청장년층이 소득의 20% 이상을 보험료로 내야 연금 지급이 가능해진다. 청년들의 반발이 터져나오는 건 당연하다. 미국·독일·캐나다 등 선진국 공적연금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다.



 부과 방식과 다른 운영 형태가 ‘적립 방식’이다. 이 방식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를 쌓아두고 운용해 연금을 지급한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적립 방식과 부과 방식이 혼합된 수정적립 방식을 채택했다. 가입자가 낸 보험료 일부를 연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를 기금으로 적립해 운용하고 있다. 이런 혼합 방식도 한계가 있다. 투자수익률이 떨어지고, 연금 수급자가 늘면서 결국 언젠가는 기금이 바닥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소득대체율 40%(40년 가입 기준으로 평균 소득의 40%를 받는다)에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는 체제를 유지해도 2060년이면 기금이 고갈된다. 연금 전문가들은 그 이후부터는 한국도 부과 방식으로 전환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본다. ‘세대 간 연대’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 논리, 틀리진 않았다. 문제는 여건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인구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다. 통계청 분석에 따르면 2014년에 12.7%이던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2060년이면 40.1%가 된다. 15~64세 인구 비율은 이 기간에 73.1%에서 49.7%로 준다. 2060년에 연금을 받아야 하는 인구와 연금 보험료를 내야 할 인구가 거의 비슷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부과 방식으로 연금제도가 변경되면 청장년층은 소득의 30% 정도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앞 세대는 덜 내고 더 받아갔다. 반면에 청년들에게는 보험료 폭탄이 떨어진다. 이건 도적질이다. 한국에서 세대 간 연대는 안 될 줄 뻔히 알면서도 희망을 움켜쥐고 고통을 짊어지는 ‘희망 고문’일 뿐이다.



 이런 문제점을 선진국은 이미 알았다. 이들도 인구 고령화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기금을 적립하고 있다. 처음에 부분적립 방식으로 공적연금을 도입한 미국은 수급자 수가 늘어 기금이 바닥나자 72년부터 부과 방식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83년에 거두는 보험료에 비해 나가는 보험급여가 많아지면서 다시 법을 개정해 기금을 적립하고 있다. 66년 부과 방식으로 출발한 캐나다의 소득비례연금도 97년 부분적립 방식으로 개혁했다(『실록 국민의 연금』).



결국 우리의 선택은 기금 고갈 시점을 최대한 늦추는 쪽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더 내거나, 덜 받아야’ 한다. 현재 국민연금의 1년치 지급률은 1%다. 40년 가입하면 소득대체율이 40%가 된다는 건 이 때문이다. 한국 샐러리맨들의 평균 근무기간은 25년 정도다. 실질 소득대체율이 25%에 그쳐 연금 수령액이 용돈 수준에 머무른다. 소득대체율을 더 낮추기 힘든 이유다. 남은 건 ‘더 내는 것’뿐이다.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지속 가능한 국민연금이 되려면 논의의 초점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보험료를 올려야 하는가에 맞춰져야 한다.



그런데 공무원연금 개혁을 논의하던 정치권이 뜬금없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상향 조정을 들고나와 혼란만 부추겼다. 표만 바라보는 정치인들의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연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많이 받으려면 그만큼 더 내야 한다. 이런 공감대는 국민연금 도입 초기부터 있었다. 88년 국민연금 도입 당시 소득대체율은 70%, 보험료율은 3%였다. 국민연금 체제의 안정적인 정착이 필요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덜 거두고 많이 퍼주는’ 방식이 불가피했다. 그렇다고 연금재정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다. 5년마다 보험료율을 3%포인트씩 올려 15%에 맞추기로 설계했다(서상목 전 보건복지부 장관 증언).



98년까지는 스케줄대로 보험료율을 착착 올렸다. 국민의 반발은 거의 없었다. 도입 초기라 가입자들의 부담이 크지 않았던 데다 정치적으로 이를 악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표에 눈먼 여야는 그 후부터 보험료를 올리자고 유권자들을 설득하지 않았다. 대신 연금 수급 연령을 늦추고(60→65세), 소득대체율만 낮췄다.



보험료율 9%는 ‘마의 숫자’가 아니다. 왜 9%인지 객관적·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저 국민의 부담을 늘려서는 안 된다는 구호만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에도 ‘저부담·저복지’에서 ‘중부담·중복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 최소한의 노후생활을 보장받고, 후세에 부담을 떠넘기지 않으려면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세대 간 연대’라는 턱도 없는 희망에 빠져 있는 건 고문을 자초하는 길이다.



김종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