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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대화 닮은 바리오, 쿠바에 진실 퍼뜨리는 SNS



아바나의 밀집된 골목골목에는 바리오(barrio)라 불리는 독특한 이웃 공동체 문화가 있다. 쿠바인들은 차나 술을 따라놓고 몇 시간씩 대화를 즐긴다. 도심 공원에서, 바닷가에서, 카페에서, 건물 발코니에서 나는 많은 쿠바인들과 함께 오후를 보내며 무궁무진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한번 토론이 시작되면 친구의 친구, 사돈의 팔촌, 이웃의 이웃까지 자연스럽게 끼어들고 참여한다. 이웃 공동체가 만들어낸 ‘지식 파급’은 정보와 지식이 축적되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쿠바의 ‘아고라’라고 할 수 있다.

예술·문화·야구·역사·과학·종교와 같이 다양한 주제에 대한 쿠바인들의 토론은 지적 과시를 위한 ‘먹물’들의 논쟁이나 남을 설득하고 움직이려는 정치적 설전이 아닌,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교환에 가깝다. 선전과 선동에 신물이 나 있는 쿠바인들은 토론의 유익함을 알고 있다.

통제가 심한 경찰국가에 사는 쿠바인들은 정부나 제도보다는 서로를 믿고 의지한다. 언론을 신뢰하지 않기에, 매일같이 외신을 접할 수 있는 직장에 다니는 이들이 확인해주는 사실들만 믿는다. 그래서 쿠바인들에게 ‘진실’은 사회적 인맥으로 확인되고 동의된 것들에 가깝다. 쿠바에서 진짜 뉴스는 친하고 신뢰하는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퍼져나간다. 오후나 저녁의 ‘토론’은 쿠바인들의 SNS인 셈이다.

옆집의 다자토론은 누군가 틀어놓은 데쎄메 부에노(Descemer Bueno)의 배경 음악에 맞게 경쾌하게 약강5보격(고대 영시의 운율)의 연극 대사처럼 들려왔다. 바다를 바라보는 건물들에서는 어김없이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골목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찌그러진 냄비를 쳐서 펴고 있었으며, 잊을 만하면 남편에게 고함을 질러대는 여인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왔다. 아바나는 그렇게 리듬을 잃지 않는 도시였고, 쿠바는 음악이 멈추지 않는 나라였다.

쿠바의 공기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쿠바 음악은 BVSC(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 연주하는 쿠바 재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쿠바의 젊은이들은 아무도 BVSC를 듣지 않았고, 시가도 피우지 않았다. 살사(Salsa)를 즐겨 추는 친구들은 몇몇 봤지만, 관광 책자에 나오는 전형적인 쿠바인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 누구도 마르크스는 고사하고 공산주의에도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젊은이들이 쓰는 은어 중 ‘공산주의’라는 형용사는 속칭 ‘구리다’ 또는 ‘안 좋다’로 통한다.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멋지다’ 또는 ‘좋다’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민박집 아들 폐페는 음악에 조예가 깊고 쿠바 음악사에 박식했다. 그러나 그 역시 여느 쿠바 젊은이들처럼 쿠바 힙합과 레게톤(reggaeton)을 즐겨 들었다.

페페는 외국인들이 찾는 관광 클럽의 음악이 아닌 전통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나를 룸바(Rumba) 공연에 데려갔다. 룸바는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서정적이었다. 템포의 흐름이 시간을 엿가락처럼 휘어놓았다. 많은 민속 문화가 그렇듯 룸바 역시 애환과 풍자로 가득했고, 음악과 춤으로 보여주는 서사는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호소력이 강했다.

19세기 서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노예들을 중심으로 퍼진 이 독특한 음악과 춤의 기원은 요루바 전통의 산테리아 종교 행사와 맞물려서 제사와 의례에 가까운 형식을 띠고 있었다. 룸바의 원래 뜻은 ‘같이 모여서 춤추자’라고 한다. 타악기 위주의 룸바는 브라질의 삼바와 느낌이 비슷했지만, 진화 과정을 들어보니 미국 남부의 재즈와 더 유사했다. 비트가 강렬한 룸바는 오늘날 쿠바 음악의 밑거름이 됐다고 페페가 설명해주었다.

“쿠바의 음악은 ‘쿠바의 공기’라고 생각하면 돼요.”

“쿠바의 공기? 그 표현 참 멋지다. 쿠바는 공기가 아주 좋은 나라구나. 그런데 쿠바의 음악과 춤의 ‘원형’을 딱 하나만 집으라면 뭐가 있을까?”

“민속음악과 오리샤(Orisha) 춤이죠.”

오리샤는 요루바 종교의 신 중 하나다. 룸바처럼 민속음악 역시 오늘날 쿠바의 음악들과 일맥상통하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즉흥이다. 큰 테두리의 구성 안에서, 음악인들과 무용수들은 재즈 연주자들처럼 순간순간의 즉흥적인 연주와 안무를 통해 독창적인 느낌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공연이 시작되면 그들의 창의력은 마치 시원하게 틀어놓은 수돗물처럼 콸콸 쏟아져 나왔다.

“그냥 즐겨요. 그 어떤 걱정이나 생각 없이 음악과 몸이 흐르는 대로 움직이는 거죠.”

오리샤 춤을 환상적으로 추는 무용수 아말리아가 내게 말했다.

“즉흥 연주에 맞춰 추는 춤은 제가 처음 봐서 그런지 거의 완벽해 보였습니다.”

그녀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내가 칭찬했다.

“완벽? 완벽 같은 것은 추구하지 않아요. 맞고 틀리고는 없어요. 평소에 연습한 대로 노래와 ‘이야기’에 맞게 순간의 마음을 진실되게 표현하기 위해 집중할 뿐이에요.”

예술의 연마는 완벽을 위한 것이 아닌 완벽을 벗어나기 위한 훈련이라는 말이었다. 훌륭한 배우는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독창적인 예술가들은 독창성에 집착하지 않는다.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는 아말리아를 보며 쿠바의 ‘맑은 공기’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파케떼 세마날

쿠바의 지상파TV에서는 한국에서 무상으로 제공된 한국 드라마를 방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바나인들은 ‘파케떼 세마날(paquete semanal)’을 활용한다. 우리말로 하면 ‘주간 묶음’ 또는 ‘주간 소포’ 정도의 뜻이다. 아바나에는 대용량 외장 하드에 지난 일주일 간의 새로운 콘텐트를 다운받아주는 ‘야매’ 다운로더들이 있다. 해외 언론·책·스포츠·드라마·영화·음악·게임 등 고객의 기호와 필요에 따라 내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소액의 월 회비로 운영되는 이 ‘서비스’는 아바나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엔터테인먼트 겸 언론 ‘매체’다. 하지만 현지인들 말에 의하면, 쿠바의 정보당국에 의해 운영되고 암암리에 관리 통제되고 있다고 한다.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되지 않은 쿠바에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개념이 전무하다. 쿠바에서는 '아바타'가 북미에서 극장 상영 중이던 시기에 지상파TV에서 방영됐다. 당연히 해적판이었다. 그래서 쿠바의 유명한 음악인과 저자들은 멕시코 또는 스페인에서 계약을 맺고 작품을 발표한다.
그러나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쿠바는 천국에 가깝다. 쿠바에서는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에서부터 헤밍웨이와 가르시아 마르께스까지 모두 다 길거리 책방에서 종잇값 정도의 헐값에 팔린다.

그렇다고 쿠바에서 모든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세기 이상 일당독재를 유지한 나라는 검열이 심하다.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게 문맹 퇴치를 이룬 나라의 인민들은 읽고 쓰는 것을 엄하게 통제 받았다. 나의 이런 지적에 많은 쿠바인들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쿠바에서는 예술적 자유에 제한이 있죠. 그렇지만 자본주의에서도 검열이 있잖아요? 시장에서 팔릴지 고민해야 되는 작가들의 무의식적인 ‘자체 검열’이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지식 파급’

즉흥적인 예술과 반대로 아주 정교하고 계획된 예술이 있다. 아마 문학에서는 시와 극본이 그럴 것이다.

제도권 교육을 받지 못한 연기자 출신의 작가가 있었다. 그는 유명한 작가의 이야기 소재와 대사 기법을 모방하기로 동료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시대를 대표하는, 아니 문명을 대표하는 작가가 됐다. 그는 셰익스피어이다. 그가 쓴 극본의 줄거리 대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약강2보강 기법조차도 말로(Christopher Marlowe)가 먼저 사용한 스타일이었다. 셰익스피어가 표절꾼이었다는 역사적인 사실보다 더 의미 있는 점은 그가 살던 시대에는 표절할 만한 콘텐트가 많았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엄청난 경제적 부흥으로 문맹률이 급격히 줄고 있어 새로운 책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출판됐다. 그래서 역사상 처음으로 대학을 나오지 않은 이들도 책방에서 새 지식을 접할 수 있었다. 문화가 꽃피던 시기였고 예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극단이 경쟁적으로 생겨나고 있었다. 즉 그 시대의 런던은 창의적 아이디어가 넘쳐 흐르는 ‘지식 파급’의 도시였다.

그런 시대와 사회의 분위기를 조성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표현의 자유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예술가들에게 비판을 허용했다. 그래서 영국 극단들은 지배층과 정부에 대해 신랄하면서도 재치가 넘치는 풍자를 자유롭게 했다.

우리는 16세기 영국에 살고 있지 않다. 창의적인 혁신에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지적재산권이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익을 위해서, 또 인류를 위해서 이 권리는 적당한 수준에서 부분적으로 공유돼야 한다는 크리에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와 같은 주장이 몇 년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창의력이란 결국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다양한 자원들에서 교합을 찾아 합치고 연결시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고갈되는 자원도 소모되는 제품도 아닌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여럿이 공유할수록 진화하고 생산적으로 증폭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쿠바의 반정부 블로거 요아니 산체스(Yoani Sanchez)는 아바나에서 버젓하게 가정을 꾸리고 어린 아들을 키우며 잘 살고 있다. 많은 이들의 근거 없는 편견과 달리, 일당독재 체제인 쿠바에서도 표현의 자유는 어느 정도 보장돼 있다.

물은 흘러야 하고 공기는 맑아야 한다. 창조나 혁신은 정부의 지시나 구호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아이디어가 꽃피는 토양을 조성할 실력이 없다면, 최소한 창의력을 죽이는 환경을 만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정승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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