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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주석은 문혁 때 함께 고생한 단짝 … 능력 알았지만 국가 지도자 될 줄 몰랐다

중국 바둑의 영웅 녜웨이핑은 요즘도 자신의 바둑 도장에서 후진을 지도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녜 9단이 중국기원 대국실에서 바둑을 두며 반상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은 89년 응창기배 대회에서 녜 9단을 누르고 우승한 조훈현 9단이 귀국 후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장면.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중앙포토]


국내 바둑 팬에겐 ‘섭위평’이란 한글 발음으로 더 잘 알려진 녜웨이핑(<8076>衛平·63) 9단. 1980년대 세계 바둑계를 평정했던 그는 지금도 중국에선 살아있는 전설이다. 개혁개방에 따른 바둑 해금과 함께 혜성처럼 국제 기단에 등장한 그는 당시 중국 바둑을 얕보던 일본의 고수들을 줄줄이 격파해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한껏 세운 영웅이었다. 최근엔 시진핑(習近平·62) 국가주석과의 오랜 친분이 알려져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뚝심 좋은 승부사 기질로 직장암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있는 그를 20일 오후 중국 기원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바둑 철학에서 시작해 시 주석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중국의 바둑 영웅 녜웨이핑 9단
지난해 직장암 수술 후 회복 단계
최근 인터넷 대국서 조훈현 이겨



 - 요즘도 바둑을 두나.



 “건강 때문에 자제했는데 지난해 수술 뒤 회복 단계에 들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조훈현(62) 9단과 인터넷으로 한 수 겨뤄 이겼다.”



 - 한국과 중국·일본 세 나라 기사들의 기풍을 비교하면.



 “한국 바둑은 공격적이고 격렬하다. 한마디로 전투력이 세다. 반면 일본 바둑은 온화하면서 끈질기다. 중국은 세력 바둑인데 균형을 중시하고 판세를 길게 본다. 중국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즉 상대방이 스스로 굴복하게 만드는 걸 상책으로 여긴다. 『손자병법』에도 나오지 않나.”



 - 세 나라 민족성을 얘기하는 것처럼 들린다.



 “기여기인(棋如其人)이란 말이 있다. 바둑 스타일은 사람의 성격이나 인품과 같다는 말이다. 가령 두터운 바둑을 두는 사람은 온후한 성격이랄까, 뭐 그런 식이다. 바둑을 두면 대화를 안 해도 상대방을 알 게 된다. 그래서 수담(手談)이라고 한다.”



 - 가장 잊을 수 없는 상대는.



 “단연 조훈현이다.”(녜 9단은 1989년 제1회 응창기배 세계대회 결승 대국 때의 비화를 공개했다. 이 대국은 만화 ‘미생’에도 나온다. 당시 두 사람의 전력이나 2승 1패로 앞서고 있던 기세로 볼 때 녜 9단의 우승은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그런데 싱가포르에서 열린 막판 두 대국에서 녜 9단은 무너졌다. 조 9단의 쾌거였지만, 녜 9단이 왜 패착을 뒀는지는 당시 참관했던 한국기원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수수께끼였다. 패전의 여파였는지 녜 9단은 그 길로 내리막을 걸었다. 그 때부터 한국 바둑의 전성기가 10여년 이어졌다.)



 “당시 비행기가 경유지인 방콕에 착륙했는데 나는 싱가포르에 다 온 줄 알고 내렸다. 출입국 심사장에 가서야 뒤늦게 깨달았는데 말도 안 통하는 상황에서 다음 비행기 잡느라 무지 고생했다. 온몸이 땀투성이가 된 채 다시 비행기에 올랐는데 에어컨이 너무 세 바로 감기에 걸려버렸다. 대국 날에는 체온이 40도까지 올라갔다. 후반까지 내가 다 이긴 바둑이었는데 잠깐 아찔해서 평소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실수를 했다. 그 날 그 일이 없었으면 내가 3승1패로 우승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안타깝다.”



 - 바둑을 잘 두기 위해선 승부 근성이 제일 중요한가.



 “당연히 그렇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전체를 꿰뚫어 보는 눈과 길게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또 지력(智力) 싸움인 동시에 체력 싸움이다.”



 - 그렇다면 정치인의 자질과 비슷하지 않나.



 “그렇다. 바둑 고수가 정치를 잘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내 친구 시진핑은 바둑 실력은 잘 모르겠지만 정치는 잘 하고 있다. 오랜 경험을 쌓아서 그럴 것이다. 시 주석은 학창 시절엔 바둑을 두지 않았는데 나중에 배웠다. 이창호의 열혈 팬이라고 말했다.”



 - 시 주석과는 수십 년 지기인데.



 “문화대혁명 때 청소년기를 함께 보냈다. 과학자였던 내 부친이나 혁명 원로인 그의 부친 모두 타도(打倒·반혁명 분자로 몰려 실각됐다는 뜻)됐다. 실각한 공군 간부 아들 류웨이핑(劉衛平)과 함께 산핑(三平·이름에 平이 들어가는 세 사람)으로 불렸다. 처지가 비슷한데다 공부 부담이 없던 시절이어서 같이 어울려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꿈 많은 청소년기였지만 하루 하루 배불리 먹는 게 어려운 처지여서 장래 희망 따위는 서로 얘기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시진핑은 성격이 호방하고 개방적이었다. 또 그가 능력 있는 학생이란 걸 알아봤다. 나중에 정·관계로 나가는 걸 보고 어디 성장(省長) 정도는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국가 지도자가 될 줄은 전혀 생각 못했다.”



 - 성인이 돼서도 만났나.



 “젊은 시절 시 주석이 허베이(河北)에 근무할 때는 주말마다 베이징으로 와서 함께 축구 구경을 다녔다. 그가 지방을 옮겨 다닐 때마다 찾아가서 만났다. 부인 펑리위안(彭麗媛)과도 잘 안다. 나의 전처가 펑의 동료였다. 하지만 지금은 주석을 만나지 않는다. 국가 대사에 바쁜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 친구의 도리라 생각한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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