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시론] 안중근의 동북아평화론 정신을 돌아보자

신봉길
외교안보연구소장
초대 한중일협력사무국(TCS)
사무총장
한·중·일 3국 관계와 동북아의 평화를 고민하는 지식인들의 논의는 19세기 말을 전후해서도 활발했다. 청의 외교관 황준헌은 『조선책략』을 통해 세력 균형의 비책을 제시했다. 일본 지식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탈아론’을 통해 일본이 동북아 국가가 아니라 서구국가로 행세할 것을 주장했다. 이어 한국의 독립운동가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을 통해 동북아 평화유지론을 폈다.



 #1. 1880년 6월 주일 청국 외교관 황준헌(黃遵憲)이 도쿄를 방문한 외교사절 김홍집에게 전달한 문건은 조선의 대외정책에 대한 조언이다. 조선책략(朝鮮策略)은 조선의 지정학을 ‘천하의 중앙에 위치’하며 ‘아시아의 요충’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동북아 최대의 위협을 러시아의 극동진출과 남하정책으로 분석했다. 조선이 첫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이에 대한 방책으로 친중(親中), 결일(結日), 연미(聯美)를 권했다. 우선 ‘중국과 관계를 더욱 긴밀히 하여’ ‘양국의 정의(情誼)가 한 집안과 같음을 세계가 알도록 할 것’을 권했다. 또 일본과는 ‘작은 의심을 버리고 큰 계획을 도모하여’ 결맹(結盟)할 것을 권했다. 그리고 미국을 ‘남의 영토를 탐내지 않고 억지로 남의 나라 정사(政事)에 간섭하지 않는 나라’라며 적극 수교할 것을 권했다. 한·중·일 3국과 미국 연합에 의한 대응책이다. 청의 입장에서 본 러시아 견제책이다. 일본의 야심을 너무 가볍게 본 것이 흠이다. 그러나 32세 젊은이의 국제정세를 보는 눈은 광활하다. 지금 봐도 대단한 통찰로 다가온다.



 #2. 그로부터 5년 뒤인 1885년 3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탈아론(脫亞論)’이 나왔다. 시사신보(時事新報)에 실은 사설이다. 게이오대학을 설립한 당대 일본 최고의 지식인인 후쿠자와는 이웃나라인 중국과 조선을 희망이 없는 나라들로 보았다. ‘서양문명의 개화의 흐름에 역행하여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 ‘수년 안에 멸망하여 분할될’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이러한 ‘나쁜 친구들의 개명(開明)을 기다려 아시아를 일으킬 시간이 없으므로 그 대열에서 벗어나 서양의 문명국과 함께 진퇴를 같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조선은 임오군란(1882년)과 갑신정변(1884년)이 일어나고, 수구파와 개화파가 다투면서 정세가 혼미할 때다. 청조 말 중국의 사정도 비슷했다. 탈아론은 그후 일본의 제국주의화로 나타났다. 먼저 개명해 아시아의 신흥 강국이 된 일본은 ‘나쁜 친구’들인 중국과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데 뛰어들었다. 일본의 ‘탈아’는 비극의 시작이었다.



 #3. 1909년 10월 조선의 애국지사 안중근은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 일본 총리를 하얼빈에서 암살했다. 이토 사살의 대의는 그가 동양평화를 해친 데 있었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그는 뤼순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 한·중·일 3국이 연대해 서양의 제국주의에 대항할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동북아의 통합을 통한 동양평화구축안을 제시했다. 전략적 요충지였던 뤼순에 3국 협력을 위한 상설기구 설치를 제의했다. 3국 공동은행 설립, 3국 공동 평화군 창설 등의 구상도 밝혔다. 유럽 통합론에 반세기는 앞서는 선구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그 뒤에 벌어진 상황 전개는 그의 꿈에 역행했다. 일본은 서구 제국주의 대열에 동참했다. 조선 병합에 이어 중국 분할에 뛰어들었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2011년 9월 한·중·일 3국은 정부 간 조약에 의해 한중일협력사무국(TCS)을 서울에 출범시켰다. ‘한중일협력 비전 2020’도 발표됐고 FTA 협상 개시도 선언됐다. 드디어 동북아도 EU와 같은 통합의 흐름을 탔다는 설익은 기대와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급부상에 의한 동북아에서의 세력전 탓일까? 동북아의 지형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화민족 부흥의 꿈’에 대해 아베 총리는 ‘정상국가’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과거 제국시절의 향수가 묻어난다. 박근혜 정부는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으로 대응하고 있다. 서로 협력을 통해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를 만들어 내려는 큰 구상이다. 아쉽게도 이러한 구상은 동북아의 역사의 벽에 부닥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중·일 3국 관계에 통합의 비전을 다시 점화해야 한다. 물리력의 통합이 아닌 3국 국민들 간의 마음의 통합이다. 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3국 상호 간의 통합과 포용의 리더십이 절실한 때다.



 이 시점에서 한국 외교의 당면과제는 한·중·일 3국 관계를 주도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다. 올해 안에 3국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해야 한다. 역사적인 대화해의 공동선언을 발표할 수 있으면 최선일 것이다. 한국은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외교적 역량과 지정학적 장점을 가지고 있다. 상설 사무국이 서울에 위치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한국의 적극적인 통합 리더십을 기대해 본다.



신봉길 외교안보연구소장 초대 한중일협력사무국(TCS) 사무총장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