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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view &] 론스타와의 악연에서 배울 점

정경민
경제부장
막장 드라마에나 등장할 법한 질긴 악연이다. 1조3800억원을 들여 5조원 넘는 차익을 남기고도 5조원을 더 내놓으라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건 론스타 이야기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저리 가라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소송이 벌어지고 있는 무대는 국내가 아니다. 미국 수도 워싱턴의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다. 론스타의 홈그라운드다. 희극에서처럼 ‘살은 베되 피는 내지 말라’는 명판결을 내려줄 재판관이라도 나오면 모를까 소송 전망이 밝지 않은 까닭이다.



 론스타의 주장은 두 가지다. 하나는 외환은행과 스타홀딩스 등 빌딩 매각 차익에 한국 정부가 매긴 세금이 부당하다는 거다. 론스타는 한국에 투자하기 전부터 절세 묘안을 짰다. 미국 텍사스 본사가 아니라 벨기에에 세운 ‘LSF-KEB’란 서류상 회사를 통해 외환은행과 국내 빌딩을 사들였다. 한국과 벨기에가 맺은 투자보장협정을 이용해 세금을 적게 내자는 계산이었다. 한국 정부는 “LSF-KEB가 서류에만 존재하는 허깨비일 뿐 투자는 미국 본사가 관장한 만큼 과세가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그나마 한국 정부가 비벼볼 언덕이 있다면 바로 이 대목이다. 그러나 이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네덜란드 자회사가 론스타와 똑 같은 제2의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을 제기했다. 유사한 사례가 속출할 우려가 현실이 됐다.



 다른 하나는 매각 지연으로 인한 손해를 보상하라는 거다. 론스타는 2007년 9월 외환은행을 5조9376억원에 팔기로 HSBC와 합의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승인을 1년 이상 미뤄 계약이 파기됐고 결국 하나금융지주에 2조원이나 싸게 팔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한국 정부는 당시 외환은행 헐값 매각과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 재판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승인해줄 수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이런 주장은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될 공산이 크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을 한국 정부가 제기하는 건 누워서 침 뱉기나 다름없다. 헐값 매각 의혹은 한국 대법원이 무죄로 결론 냈다. 자국 법원조차 근거 없다고 판결한 걸 승인 지연의 명분으로 삼는 게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그나마 외환카드 주가 조작은 유죄로 판결이 났지만 이 역시 외환카드를 외환은행과 싸게 합병하려던 작전이었을 뿐 외환은행 매각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다. 더욱이 외환은행을 사겠다고 나선 작자는 HSBC였다. 국제 돈놀이꾼 대신 세계적 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버선발로 뛰어나가 모셔와도 성이 안 찰 판이었는데 되레 승인을 미뤘다니? 하물며 HSBC가 외환은행 인수를 발표한 건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된 ‘리먼브라더스 부도’ 1년 전이었다. 론스타가 ‘먹튀’하는 꼴은 볼 수 없다며 달러 싸 들고 찾아온 HSBC를 내쫓은 셈이니 외국인 재판관 눈엔 불가사의로 비칠 게 뻔하다.



 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교훈을 얻는다면 보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 여론은 여전히 ‘먹튀’ 트라우마에 갇혀있다. 배 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정서법은 국내 기업엔 몰라도 외국 기업엔 안 통한다. 불편하지만 냉엄한 이 현실을 망각하면 한국 정부는 언제든 새로운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의 제물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애초 론스타를 불러들인 건 다름아닌 외환은행 자신이다. 2003년 외환은행이 매물로 나왔을 때 국내 은행들은 손사래를 쳤다. 현대·대우건설과 하이닉스 부실에 카드 대란까지 덮쳤기 때문이다. 98년 외환위기 때 떠안은 부실은행 수습에도 허덕대던 국내 은행들로선 외환은행까지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돈 못 갚으면 살 1파운드를 베어준다는 ‘신체포기각서’를 샤일록에게 써준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의 신세가 딱 외환은행이었다.



 한데 외환은행은 아픈 과거에서 교훈을 얻었나. 경쟁은행들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생존 전쟁에 뛰어들었다. 한데 외환은행은 아직 하나은행과의 합병을 둘러싼 집안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 파출소 피하려다 경찰서 만나는 우를 다시 범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경민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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