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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들추고 추행했는데 … 무죄 판결한 법원

A씨(20·여)는 지난해 5월 남자친구와 함께 남자친구의 직장 동료인 강모(37)씨 집에서 술을 마시다 자고 가게 됐다. 남자친구와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는데 강씨가 들어왔다. 그는 A씨가 덮고 있던 이불을 들춘 뒤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엉덩이와 다리를 만지고 민감한 부분을 더듬었다. A씨는 난처한 상황이 벌어질까 걱정해 잠든 척하며 저항하지 않았다. 강씨는 A씨의 남자친구가 뒤척이자 바로 방에서 나갔다.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 이원형)는 “강씨의 행동을 유사강간이나 강제추행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고 20일 밝혔다. ▶A씨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물리적인 힘을 행사한 사실이 없고 ▶실제로 잠든 것이 아니어서 심신상실·항거불능 상태로 볼 수 없으며 ▶강씨가 A씨가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추행을 중단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검찰이 “기습적인 추행으로 저항할 시간이 없었다”고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 판결대로라면 현행법으로는 강씨를 처벌할 방법이 없다.

 최근 강제추행 등 성범죄 사건 판결을 놓고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합의에 의한 신체적 접촉’과 ‘강제추행’의 경계가 모호한 데다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법원이 강제추행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인정한다는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대법원이 최근 무죄를 확정한 조모(41)씨 사건이 대표적인 경우다. 조씨는 속옷 차림으로 신입 여직원(27)과 고스톱을 치다 벌칙으로 다리를 주무르게 하고 “더 위로, 다른 곳도 만지라”고 말한 혐의(강제추행)로 기소됐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음란한 행위이지만 강제추행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하급심 판결에서도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가 많다. ▶강제로 한 신체적 접촉으로 단정하기 어려우며 ▶피해자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거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할 정도의 행동은 아니라는 게 주요 판단 이유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5일 청소 중인 PC방 여종업원(22)의 골반 부위를 손가락으로 찌른 혐의로 기소된 박모(67)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성적으로 다소 민감한 부위이지만 이 행동을 신체의 자유와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동으로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김학자 변호사는 “법원이 강제추행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분명히 피해가 있는 경우에도 처벌하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된다”며 “판례가 크게 바뀌지 않는다면 강제추행 범위를 확대하는 처벌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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