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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3명이 지어준 현수네 새집

새집 앞에 선 엄현수군(오른쪽)과 부모. 화재로 가재도구가 타 버려 집 안은 비어 있다. [박진호 기자]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띄운 채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방 안을 돌고 또 돌았다. 그러더니 조금은 어눌한 발음으로 말했다. “방이…생겨서…좋아.” 지난 15일 아직 도배 전인 새집에 와 본 지적장애 2급 엄현수(15)군의 반응이었다.

 엄군은 원래 강원도 홍천군 삼마치리 산골에서 부모, 큰아버지 부부와 함께 살았다. 함석 지붕을 한 오래된 농가에서였다. 욕실은 없고, 재래식 화장실은 집에서 20m쯤 떨어진 밭에 있었다. 부모와 큰아버지 부부 모두 1~2급 지적장애인이라 생활은 정부에서 주는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연금에 의존했다.

 지난해 10월 31일 저녁 집에 불이 났다. 화목보일러가 과열된 게 원인이었다. 6분 만에 소방차가 달려왔지만 이미 집은 거의 타 버린 상태였다.

 집이 없어진 엄군 가족은 처음 마을 노인회관에서 지내다 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들의 사정을 알게 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강원지역본부는 지난해 12월 29일 포털 다음의 모금 캠페인 사이트인 ‘희망해(hope.daum.net)’에 ‘화마(火魔)로 집 잃은 현수네 가족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사연을 올렸다.

 댓글이 달리면서 후원금이 쇄도했다. ‘작은 힘을 보탭니다’라며 1만원을 보낸 소방관, ‘덕원고 2-12 학생들의 정성입니다. 힘내시길 바랍니다’라며 5만원을 보낸 학생들도 있었다. 이름 없는 이들은 100원, 500원을 보냈다.

 올 2월 말까지 두 달간 이어진 모금에 7803명이 참여해 1408만원이 모였다. 지난해 말 홍천군 주민들이 모은 이웃사랑성금 3150만원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후원금을 더해 모두 6300만원을 장만했다. 그렇게 타버린 집터에 82.5㎡짜리 하얀 새집이 들어섰다. 설계는 지역 건축업자가 무료로 해줬다.

 도배·장판은 안 했지만 건물이 완성된 지난 15일 엄군 가족이 처음 집을 둘러봤다. 엄군이 자신의 방 안을 한없이 맴돌던 바로 그날이었다. 아버지 엄기환씨는 “무엇보다 깨끗하게 씻을 수 있는 욕실이 집 안에 있는 게 좋다”고 말했다. 엄군은 욕실 세면대 수도꼭지를 튼 뒤 물속에 손을 넣고 말했다. “어, 시원~해요.”

 엄군 가족들은 이달 말 새집에 들어간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가재도구가 하나도 없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이창수 강원지역본부장은 “엄군 가족은 지금 꼭 필요한 가구·집기와 냉장고 등을 살 형편이 아니다”며 “또 다른 도움의 손길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홍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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