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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왕세자, 아일랜드 독립운동 상징과 ‘역사적 악수’

영국 찰스 왕세자(왼쪽)가 19일(현지시간) 아일랜드 골웨이의 국립 아일랜드대에서 아일랜드 민족주의 정당인 신페인당의 게리 애덤스 당수를 만나 손을 잡았다. 아일랜드에서 36년 전 찰스 왕세자의 부친인 필립공의 외삼촌 루이스 마운트배튼 백작이 아일랜드공화군(IRA)의 테러로 숨졌다. [골웨이 AP=뉴시스]

IRA 테러에 희생된 마운트배튼경.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아일랜드의 신페인당 당수인 게리 애덤스와 19일 악수했다. 이날부터 시작된 찰스 왕세자의 4일간의 아일랜드 방문 일정 중 하나다.

 둘의 만남은 길지 않았다. 정치인들이 모여 10여 분간 환담하는 자리에서 인사한 정도였다. 12초에 불과했다. 그러나 영국에선 “역사적 악수”라고 평가한다.

 둘이 정치적으로 양극단에 선 인물들이어서다. 찰스 왕세자는 왕위계승자로 연합왕국의 상징이다. 게리 애덤스는 연합왕국을 무너뜨리려는 독립주의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독립주의자들의 군사조직이자 테러조직인 IRA(아일랜드공화국군)의 일원이었다는 설이 끊이질 않는다. IRA의 정치조직인 신페인당의 당수이기도 하다.

 여기에 왕실의 개인적 불행까지 얽혀 있다. 1949년 아일랜드의 독립 이후에도 북아일랜드가 영국 잔류를 결정하자 IRA가 영국 곳곳에서 테러를 벌였다. 그 와중인 1979년 아일랜드 북쪽의 바닷가에서 어선이 폭발했다. IRA가 설치한 폭탄이 터졌다. 이로 인해 어선에 타고 있던 루이스 마운트배튼(79) 경과 손자(14)가 숨졌다. 마운트배튼경의 아들과 며느리, 또 다른 손자도 크게 다쳤다.

 영국 왕실로선 충격이었다. 마운트배튼 경이 필립공의 외삼촌이어서만은 아니었다. 그는 1939년 엘리자베스 2세가 부군인 필립 공과 처음 만나는 자리를 마련한 인물이었다. 찰스 왕세자에겐 인생의 멘토, 할아버지나 진배없었다. 찰스 왕세자가 마운트배튼 경의 손녀와 결혼하려고 했을 정도였다. 찰스 왕세자는 이후 “너무나도 소중한 이를 잃는 슬픔을 경험했다”고 말하곤 했다.

 당시 신페인당 부당수였던 게리 애덤스는 이렇게 말했다. “IRA가 처형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IRA가 마운트배튼에게 한 일은 그가 다른 이들에게 한 일을 돌려준 게다. (해군으로서 양차 대전에 참전한) 그의 전쟁 경험을 감안하면 전쟁 상황 중인 아일랜드에서 죽은 것에 대해 크게 불만이 있지도 않을 게다. IRA는 목적을 달성했다. 아일랜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했다.” 왕실로선 억장이 무너질 발언이었다.

 그러나 98년 북아일랜드 평화 협정안이 가결됐고 99년 북아일랜드자치정부가 설립됐다. 2001년엔 IRA가 무장해제를 선언했다. 길게 보면 아일랜드 독립을 둘러싼 수백 년, 짧게 보면 북아일랜드에서의 수십 년간의 분쟁 해결의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왕실도 서서히 닫혔던 마음을 풀기 시작했다. 2012년 엘리자베스 2세가 북아일랜드를 방문했을 때 IRA 부사령관 출신으로 북아일랜드자치정부 부수반인 마틴 맥기니스와 악수했다. 그로부터 3년 만에 찰스 왕세자가 게리 애덤스와 악수한 것이다.

 영국에선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가디언은 “영국 군주제를 상징하는 인물과 공화국주의자 간의 집단적 화해를 위한 용기 있는 행동”(가디언)이고 했다. “찰스가 피묻은 손과 악수했다”(데일리 메일)는 목소리는 작았다. 애덤스 자신은 찰스 왕세자와 만난 이후 “오늘날 화해는 상징적일 뿐만 아니라 미래로 향하자는 면에서 실질적 단계”라며 “전쟁은 끝났다”고 했다.

 찰스 왕세자는 20일 36년 전 마운트배튼 경이 숨진 어촌 마을을 찾았다. 더타임스는 “누구도 사과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 그러기엔 멀리 있다는 걸 안다”고 전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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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