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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수출, 너마저 흔들리면

김광기
중앙일보시사미디어 본부장
저는 대한민국 수출입니다. 제 나이는 53세, 1962년생입니다. 수출입국의 꿈을 펼쳤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원년에 태어났지요. 당시 저는 1억 달러도 안 됐습니다. 세계 꼴찌권이었죠. 그렇게 작았던 녀석이 지난해 5700억 달러로 컸습니다. 약 6000배가 된 셈이죠. 저는 지금 세계 랭킹 7위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참 열심히 뛰어왔습니다. 국민 여러분은 “우리나라를 세계 14위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게 한 1등 공신이 바로 너야”라고 칭찬해 주십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우리 경제가 힘겨웠던 고비마다 이를 악물었습니다. 제가 자라면서 한국은 줄잡아 10차례의 큰 불황을 겪었는데, 그중 여덟 차례가 수출 덕분에 극복됐다고 경제학자들은 평가합니다. 외환위기가 대표적이죠. 성장의 내용도 좋아 대부분 일자리 창출과 소득 증대로 이어졌습니다. 부동산 붐에 기댔던 80년대 말과 카드 소비에 의존했던 2000년대 초가 예외인데, 두 번 다 심각한 거품의 후유증을 앓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국민 여러분, 죄송한 말씀 올립니다. 요즘 제 몸이 과거 같지 않습니다. 뛰기는커녕 걷기도 힘겹습니다. 올 1~4월 수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 줄었습니다. 5월 실적은 더 나빠질 것 같습니다. 물론 수출 감소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고전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내 증가세로 돌아섰지요. 그래서 이번에도 “유가 하락 등 외생 변수의 영향이 큰 거 아니야?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야”라고 낙관하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솔직히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무엇보다 중국 제품의 파워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바로 목덜미까지 따라왔거나 앞질러 가는 품목이 늘어 갑니다. 중국에 부품과 중간재를 팔아먹기도 갈수록 힘들어집니다. 일본은 또 어떻습니까. 아베노믹스에 따른 엔저 효과로 일본 제품이 날개를 달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국내 기업들은 공장을 계속 해외로 옮기고 있습니다. 자동차업계의 해외 생산비중이 50%에 달했고, 휴대전화는 80%를 넘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고육책이겠지만, 저로선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심정입니다.

 과거 일본 수출이 걸었던 길이 자꾸 떠오릅니다. 일본은 90년대 초반 가전과 기계·운수장비 등 주력 수출 제품의 경쟁력이 한국 등 후발국에 하나둘씩 따라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계속되는 엔화 강세와 기업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 등이 맞물리면서 수출은 급속히 기울었습니다. 빠른 고령화와 정치권 포퓰리즘, 노동시장 경직성과 구조조정 지연 등도 수출 경쟁력의 회복을 가로막았습니다. 지금의 우리 현실과 너무 비슷합니다.

 그래도 저는 신발끈을 고쳐 매고자 합니다. 제가 다시 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정부와 정치권·노동계 모두 현실을 직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본처럼 죽을 순 없다는 각오가 절실합니다. 우는 아이에게 사탕 한 개씩 물려주는 식의 정책자금 지원이나 외환시장 개입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90년대에 똑같이 고전했던 독일 수출의 부활을 참고할 만합니다. 독일은 노사정이 뭉쳐 임금 안정과 복지제도 개선,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러자 기업들은 투자와 혁신에 매진하며 세계 시장을 다시 석권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중국 등 후발국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우리만의 핵심 역량들을 선별해 중점 지원해 주십시오. 정규직 노조는 양보와 타협의 장으로 나와 주세요. 그게 국내 일자리를 지키는 길입니다. 정치권은 수도권에도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법을 고쳐 주십시오. 남북한 경제 교류를 금지한 ‘5·24 조치’를 해제하는 것도 수출 경쟁력을 높일 좋은 처방입니다. 원화 강세 문제는 일본처럼 외교력을 발휘해 푸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미국이 눈감아주지 않고는 환율을 방어하기 힘들다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 아닙니까.

 정부가 다음달에 ‘수출 활성화 종합대책’을 내놓는다고 합니다. 저의 이런 소망들이 담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제 동생, 내수 서비스산업 좀 빨리 키워 주세요. 제 어깨가 너무 무겁습니다.

김광기 중앙일보시사미디어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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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