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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매일 북한에 뭔가를 제의하라”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덩샤오핑(鄧小平)은 1984년 당시 분단된 독일의 미래에 대해 “큰 물살이 작은 강들을 몰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통일이 희망 섞인 낭만으로만 치부되던 시절, 통일이 멀지 않았음을 예측한 것이다. 반면 헬무트 콜 총리는 통일을 장기전이라고 봤다. 측근인 볼커 뤼헤(72) 기민당 의원 등과 모여 ‘통일 독일을 위한 10단계 방안’을 발표한 게 89년 11월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채 1년도 안 된 90년 10월 3일,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덩샤오핑의 예언이 맞았다.

 통일 후 92~98년 국방장관을 지낸 뤼헤 전 독일 국방장관은 지난 19일 태평양세기연구소(PCI, 이사장 스펜서 김)가 주최한 25주년 기념연설에서 “덩샤오핑이 말한 ‘큰 물살’은 모스크바였다”며 “독일 통일은 유럽 정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갑자기 왔다”고 말했다. 서독이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뤼헤 전 장관은 “언제 될지는 몰라도 꼭 이룬다는 일념으로 열린 마음(keep open)을 유지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에 이런 당부를 했다. “잘 안 되더라도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한다(do something). 대화 제의를 (북한이) 받지 않더라도 매일 뭔가를 제의하라. 보건 분야이든 대북 경협이든, 크건 작건 매 순간 대화의 문을 열어놓는 게 중요하다”고. 그는 통일을 이룬 ‘선배’로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대북 투자는 북한에 대한 투자가 아니다. ‘코리아(Korea)’에 대한 투자다” 등등.

 뤼헤 전 장관이 강조한 또 하나의 포인트는 동북아의 큰 틀에서 남북관계를 요리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한·일 관계 개선이 중요하다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45년 유럽이 ‘독일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못박았다면 독일 통일은 불가능했다”고도 했다. 덩샤오핑의 ‘큰 물살’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종종 독일과 비교되는 일본에 변화할 여지를 주며 남북관계를 관리·개선해야 한다는 뜻이다. 연륜 있는 정치인답게 ‘일본’이라는 단어는 적시하지 않았다. 정치인들에게도 메시지를 던졌다. “초당적 협조가 없이는 통일은 없다. 통일 후에도 초당적 협력이 있어야 성공한 국가 건설이 가능하다.” 연설을 듣는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 대사,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 공로명 전 외무장관, 정갑영 연세대 총장 등 300여 청중들의 표정은 진지하게 변해 갔다.

 25분에 걸친 흡입력 강한 연설은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의 회고록 『역사의 파편들』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며 끝났다. “한반도의 분단은 끝낼 수 있으며, 반드시 끝내야 하는 비극이다. 이는 악마화(demonization)가 대화로 바뀌고, 화해가 이뤄질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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