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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론스타, 이젠 놔주자

이정재
논설위원
한결같았다. “알면 다쳐.”

 두 달여 전부터 나는 ‘론스타의 망령’과 가끔 마주쳤다. K모·C모 장관, 금융 당국과 금융권의 핵심 간부 K모와 또 다른 K모…. 지금 워싱턴에서 론스타 중재재판의 증인으로 참석 중인 이들과 함께였다. 론스타는 우리 정부를 상대로 5조원이 넘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어떻게 될까” 물으면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밝지 않다는 뜻이다. 100% 이기는 길은 없어 보인다. 1%만 져도 크게 상처를 입는 건 한국 정부다.

 한 달 전쯤 한 모임, C장관이 한숨 끝에 한 한마디가 찡하다. “이젠 놔줘야 한다. 론스타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서.”

 돌이켜 보면 참 질긴 악연이었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했다. 뒷날 불법이다, 특혜다 온갖 궤언이 난무했지만 당시엔 아무도 외환은행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건 진실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정태 당시 국민은행장은 사석에서 “금융 당국이 외환은행 인수를 강요한다. 부실을 떠안기려는 거다. 그랬다간 국민은행도 같이 망한다”며 분개했다. 하이닉스와 대우건설, 두 거대한 부실채권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이 참 요지경이었다. 누가 알았으랴. 불과 2년 뒤 반도체·건설 업종이 큰 호황으로 돌아서면서 두 부실채권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줄은. 또 그 수익을 고스란히 론스타가 챙기게 될 줄을.

 론스타 트라우마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가 먹튀 논란. 론스타가 2006년 KB금융에 외환은행을 판 게 빌미였다. 투자한 돈의 두 배, 4조원 넘게 남길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배 아픈 시민단체·정치권이 먼저 소리쳤다. “전형적인 먹튀다. 막아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한민국엔 얼마나 많은 먹튀 트라우마가 있었던가. 은행부터 광산까지 헐값 매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때다. 당장 급해 씨감자를 헐값에 팔았지만 두고두고 배가 아팠던 터다. 이젠 빚 갚고 살 만해졌으니, 더는 안 된다고 소리치고 싶었던 때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총대를 멨다. 노무현 대통령이 론스타 돈을 받아 선거를 치렀다며 국정조사를 주장하기도 했다. 결과는 알다시피다. 검찰이 2년간 정부를 쑥대밭을 만들며 샅샅이 뒤졌지만 그런 돈은 없었다. 근거 없는 비방과 의혹에 휘둘려 호들갑 떤 나라 꼴만 우습게 됐다.

 둘째는 변양호신드롬. “책임질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외환은행 매각을 주도했던 변양호 당시 재정경제부 국장이 죄 없이 300일 옥살이를 하는 광경을 본 공무원들은 그때부터 이 말을 가슴에 새겼다. ‘복지부동’ ‘시키는 것만 한다’는 ‘변양호 키드’들이 속출했다. 공직 사회는 급속히 생기를 잃기 시작했다.

 셋째, 투자자·국가(ISD)소송.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계기로 미국의 무차별 소송이 이어지며, 소송에 지면 실리는 물론 정책 결정권까지 잃을 것이란 공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첫 시험대가 이번 론스타의 ISD 소송이다. 결과에 따라 후유증이 클 것이다. 벌써 소송을 받아준 공무원을 색출해 단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판이다.

 따져보자. 우리가 손가락질하는 중국과 도대체 뭐가 다른가. 요즘 중국은 외국 기업의 과실 송금을 막고, 철수할 때는 보조금 받은 것도 토하게 한다. 아쉬울 땐 온갖 특혜로 유혹하더니 배 부른 지금은 ‘언제 그랬느냐’는 식이다. 그 바람에 먹을 것 없어진 한국 기업이 ‘야반도주’하듯 몰래 중국에서 탈출하기 시작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내가 남의 나라 가서 벌어오면 애국이요 로맨스고, 남이 내 나라에서 벌어가면 불륜이요 ‘먹튀’인가. 물론 론스타가 괘씸한 건 사실이다. 국내 재판에서 패하자 ISD까지 갔다. 잔뜩 벌고도 만족을 모른다. 혼쭐을 내주고 싶지만 거기까지다. 론스타 때문에 우리끼리 또 치고받아선 안 된다.

 가슴 대신 머리를 열자. 우리는 세계에서 FTA를 가장 많이 맺은 나라, 사방을 열어젖힌 나라다. 주지 않으면 받을 수도 없다. 그런 나라가 아직도 먹튀 망령에 사로잡혀 있어서야 되겠나.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젠 론스타를 놔주자. 쿨~하게.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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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